민영화 앞둔 우리금융그룹

지난 9월 김장학 광주은행장이 취임하면서 이순우호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취임 2개월여 만에 이뤄진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보면 이 회장의 최측근이 전면 배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영화를 위해 갈 길 바쁜 우리금융그룹 CEO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NEW LEADERS] 상업은행·성균관대 인맥 ‘날개를 달다’
지난 8월 30일 광주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김장학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을 광주은행장에 내정했다. 전날 경남은행장,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카드, 우리아비바생명의 사장을 내정한 데 이은 인사였다. 이로써 우리금융그룹 계열 사장단의 진용이 갖춰졌다.

이번 인사에 대해 금융권의 첫 반응은 ‘의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광주은행장을 비롯해 우리카드, 우리아비바생명의 사장 1순위로 거론되던 인사들이 대거 탈락했기 때문이다. 정부 인사 검증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최측근이 사장단에 대거 포진해 있다. 강원 우리카드 사장은 이 회장과 같은 성균관대, 상업은행 출신이며, 김장학 광주은행장 역시 상업은행 후배다. 이 회장 취임 후 대폭 축소된 우리금융지주 임원 중 2명의 부사장 가운데 김승규 부사장이 성균관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NEW LEADERS] 상업은행·성균관대 인맥 ‘날개를 달다’
이 회장 취임 3개월여 만에 사장단이 꾸려지면서 우리금융그룹은 발걸음이 바빠졌다. 우리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그룹 계열사들의 민영화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계열사들은 어떻게 민영화의 길을 걸을까. 계열사 CEO들의 면면을 통해 험난한 민영화의 길을 짐작해본다.


현장 경영의 종결자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현장 경영의 종결자로 통한다. 아침 7시 중요 사항에 대한 결재가 끝나면 바로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영업 현장으로 달려간다. 저녁 늦게까지 숨 돌릴 겨를 없는 강행군이다. 심한 날에는 저녁 식사 약속을 세 번 이상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긴급 현안을 보고해야 하는데 자리에 없어 발을 구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현장을 찾아 고객들을 일일이 만나 인사하기를 즐겨하는 그는 고객에 따라 네 종류의 명함을 쓴다. 일반 명함, 고객을 위한 명함, 가톨릭 식 명함, 장애우를 위한 점자 명함 등이 그것이다. 90도 인사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얼리어답터이기도 한 그는 PC나 휴대전화도 잘 다룬다. 이를 그는 젊은 직원들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술은 두주불사형이다. 아무리 많이 마셔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경주가 고향인 이 회장은 1950년에 출생해 대구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상업은행에 입행해 2011년 3월 은행장에 취임할 때까지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이 회장은 처음부터 ‘은행장이 될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은행을 다니지는 않았다고 한다. 학창시절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에서 번번이 떨어져 결국 성균관대 법대로 갔고, 법대 졸업생이면서 사시 낙방이라는 쓰디쓴 잔을 마시고서야 은행원이 됐다.

이런 이유로 평소 말수가 적었던 본인에게 “그렇게 찡그리고 있을 거면 여기 있지 말고 나가라”는 선배의 따끔한 질책을 듣고서야 매일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했다. 그런 후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업무도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은행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 직후 초대 인사부장을 맡아 조직 융화에 밑거름을 마련했고 2002년에는 기업금융단장으로 당시 LG카드 구조조정 실무를 진두지휘했다.

2004년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과 수석 부행장을 역임하고 2011년 3월 내부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은행장에 취임했다. 올 5월 23일 이팔성 전 회장에 이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 말단 은행원에서 은행장을 거쳐 지주회사 회장까지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이 회장은 유명 배우인 제임스 딘이 한 말 중에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현재 처한 현실이 어렵더라도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 등산처럼 지금 내디딘 발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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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회장의 최측근
김장학 광주은행장

광주은행장에 취임한 김장학 행장은 이 회장의 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 행장은 1955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전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에 우리은행의 전신인 옛 상업은행에 입행해 U뱅킹사업단장, 중소기업고객본부 부행장 등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인사를 단행해 우리금융 임원 18명 중 16명을 내보냈다. 지주사 부사장은 5명에서 3명으로 줄이고 그중 한 자리에 상업은행 라인으로 분류되는 김장학 당시 우리은행 부행장을 임명했다.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에 임명된 지 석 달 만에 다시 광주은행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이 같은 점 때문에 김 사장은 광주은행장 후보로 경합한 조억헌 광주은행 부행장에 비해 이 회장과의 소통이 원활할 것으로 점쳐진다. 원활한 소통으로 광주은행을 수월하게 민영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노조의 반대 속에 취임 4일 만에 취임식을 가진 김 행장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조직의 효율성 제고와 민영화 추진을 위해 본부 조직 개편과 함께 부행장 및 본부장 등 임원급 인사를 전격 실시한 것이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업부제를 전략집중형 조직 체제로 개편하고, 기존 10개 본부 33개 부서 4개 팀을 7개 본부 25개 부서 1개 팀으로 대폭 슬림화한 것이다. 특히 임원급 인사의 물갈이 폭이 컸다. 본부장급 이상 임원 18명 가운데 9명의 사표가 처리됐고, 4명은 부행장보로 승진했다. 앞서 취임사에서 김 행장은 “효율적이고 강력한 조직 체제로의 재편, 조직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인사정책 혁신”을 강조했다.

한편 김 행장과 함께 우리금융지주 김승규 부사장이 광주은행 비상임이사로 선임됐다. 김 부사장은 이 회장과 같은 성균관대 출신으로 우리은행 집행부행장, 우리신용정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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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민영화 위한 적임자
박영빈 경남은행장

우리금융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은 지난 6월 이 회장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새로 부임하는 회장에게 재신임을 물은 것이다. 박영빈 경남은행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8월 이 회장의 재신임을 받았다.

경남은행을 둘러싼 환경을 감안했을 때 박 은행장의 유임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같은 계열 지방 은행인 광주은행이 송기진 행장의 사임 뒤 행장추천위원회를 가동한 것과 달리, 경남은행은 행장추천위원회 개최 계획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당시 “분리 매각 방안을 놓고 말이 많지만 올해 안에 경남은행이 분리 매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행장이 교체될 경우 원활한 민영화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유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예상대로 박 행장은 올해 민영화를 성사시켜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은행장으로 박 행장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연세대 법대 출신인 그는 한국개발금융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한미은행을 거쳐 2004년 경남은행 부행장에 올랐다. 2007년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전무,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0년 우리금융지주 전무와 경남은행장 직무대행을 거쳐 2011년 3년 임기의 경남은행장에 취임했다.

‘고객 신뢰 1등 은행’이란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한 박 은행장의 경영 활동은 뚜렷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취임 직전 2010년 12월 총자산 24조6171억 원, 누적 당기순이익 1443억 원이던 경영 실적이 2013년 6월 현재 각각 34조4050억 원, 981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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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간 한 우물 판 사내 맏형
김원규 우리투자증권 사장

4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투자증권은 우리금융그룹의 비은행 부문의 핵심 계열사다. 금융투자 업계 총자산 1위, 자본금 2위의 증권사이기도 하다. 1969년 한보증권으로 출발해 LG증권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가 2005년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이 합병하면서 우리투자증권으로 거듭났다.

경북대 경영학과 출신의 김원규 사장은 1985년 LG투자증권에 입사하며 증권 업계에 입문했다. LG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한 후 지역본부장을 두루 경험한 후 WM사업부 대표, 홀세일사업부 대표, 전무를 거쳐 올 7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김 사장이 차기 CEO로 내정된 후 우리투자증권 내부에서는 “전직원 3000명 가운데 신임 사장과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000명쯤 될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오직 한 회사에 몸을 담은 탓도 있지만, 회사 내에서 맏형 역할을 해온 그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사장은 이런 인간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전문성과 카리스마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1985년 입사 이래 평사원부터 사장이 되기까지 28년간 영업으로 단련된 전문성, 내부 출신으로서 조직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꿰뚫고 원칙을 중시하며 업무 추진에 있어 카리스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실제로 김 사장은 취임 이후 기업 가치 제고와 민영화 등 시급한 경영 상황을 고려해 나흘 만에 신속한 조직 개편과 임원 20% 감축을 단행했다. 잠실신천지점, 청량리지점, 용산지점, 신목동지점, 남청주지점, 용인지점, 해운대지점, 경주지점 등 8개 지점을 영업 환경이 우수한 지점과 통합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수익력 강화와 조직효율화를 추진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본부를 폐지하고 해외사업 부문의 내실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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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상업은행 출신의 이순우맨
강원 우리카드 사장

2013년 9월 2일 취임한 강원 우리카드 사장은 이 회장의 최측근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강 사장은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성균관대를 졸업했고 우리은행 전신인 옛 상업은행 출신이다. 나이로는 1950년생인 이 회장보다 6년 후배지만 상업은행 입행은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상업은행에 입행한 후 평생을 우리은행에서 보낸 것도 이 회장과 닮은 점이다.

우리카드 사장 취임 두 달간 강 사장은 CEO 공백을 최소화하고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 직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한편 우리카드의 시장점유율 증대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강 사장은 추석 연휴 직후 대전 소재 카드금융센터 내 콜센터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콜센터를 가장 먼저 찾은 이유는 영업 부서 중 콜센터를 가장 힘든 부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산 소재 카드금융센터와 신도림 카드발급센터, 성수동 콜센터를 깜짝 방문해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는 등 현장 스킨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본사 영업부 담당 직원들과 등산 자리를 마련해 격의 없이 영업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기도 했다.

조직 안정뿐만 아니라 우리카드의 덩치 키우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 사장은 취임식에서 “소매금융의 첨병인 우리카드가 우리금융의 위상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전문성 강화가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만큼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적극 대응함은 물론 전업 카드사로 시장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확고히 다져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1등 카드’라는 우리카드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대표 상품 출시, 강한 마케팅 조직 육성 및 수익구조 개선 등을 강조했다.
[NEW LEADERS] 상업은행·성균관대 인맥 ‘날개를 달다’
‘소주번개’로 유명한 소탈한 인품
김병효 우리아비바생명 사장

김병효 우리아비바생명 사장 또한 우리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은행원 출신이다. 1956년생인 김 사장은 경동고와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1981년 우리은행(옛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2002년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후 압구정지점장, 외환센터장 등을 지냈고, 2011년 부행장으로 승진한 후 글로벌사업본부장, 경영기획본부장, HR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사장의 첫 번째 소임도 다른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기업 가치를 높여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것이다. 취임 약 2주 만에 6본부 3지역단 23부 5파트로 이루어져 있던 기존 조직을 6본부 18부 3팀으로 슬림화하는 개편을 단행한 것은 그 일환이다. 이는 그동안 민영화, 매각 등의 이슈로 어수선하고 해이해진 조직 분위기 쇄신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사장은 우리은행 부행장 시절 ‘소주번개’를 주도하며 직원들과 격이 없이 소통하는 리더로 유명했다. 예를 들면 아이가 1명인 직원, 층별로 제일 출입구 가까운 곳에 앉은 직원, 뿔테 안경을 쓴 직원 등 그날그날 다른 새롭고 재미있는 주제로 5~6명씩을 모아 하는 번개모임을 즐겨했다. 메뉴는 부담 없이 삼겹살, 파전, 탕수육 등으로 하며 소주나 막걸리 등도 곁들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더했다. 다만 직원들의 술자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모임은 무조건 1차만 하고 9시 전에 마친다는 원칙을 세웠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한 그의 노력은 우리아비바생명 취임 이후에도 계속돼 벌써 수차례 평직원들과 즉석 만남을 가졌다. 사원급 직원들과의 첫 번째 번개모임에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 이후 김 사장은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감탄하며 은행원이 아닌 보험인으로서 시작된 인생의 후반전에 다시 한 번 열정적인 승부를 걸어보자고 다짐하게 됐다고 한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