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불안·우울 ‘자본주의 합병증’, 스트레스 가장 큰 적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 문제로는 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사람을 괴롭히는 감정은 크게 ‘불안’과 ‘우울’ 스펙트럼으로 볼 수 있어요. 강박증이나 공황장애가 불안 스펙트럼에 해당하고, 우울증과 조울증 등이 우울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신적 문제는 불안, 우울, 불면, 강박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결국 스트레스 반응이에요. 좋은 스트레스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현대인에게는 나쁜 스트레스만 작동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언제부턴가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이슈가 사회를 뒤덮은 느낌입니다. 정신적으로 평온하지 못한 사람들이 왜 이토록 늘었나요.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굉장히 열심히 살도록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지속경영, 무한경쟁, 글로벌 비즈니스 이런 것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무서운 말들입니까. 쉬지도 못하고 24시간 돌아간다는 말이지요. 여기에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 스트레스들을 고스란히 100세까지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몸은 못하겠다고 난리인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니 문제가 생기지요.”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런 증상이 많아진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인데요.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구조는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나은 환경일지 몰라도 완벽한 것은 아니거든요. 경쟁은 심하고 안정성은 낮으니 여기서 ‘자본주의 합병증’이 나타납니다. 특히 연예인들은 ‘자본주의 합병증’에 가장 취약한데, 가령 잘나가던 스타도 하루아침에 댓글 하나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릴 수 있잖아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도 마찬가지죠. 일분일초를 다투며 실적을 평가받아야 해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여유가 없으니 휴식이나 취미생활도 갖지 못하지요. 많이 버는데도 마음이 헛헛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셀 수 없어요.”
사회적인 영향도 있지만 개개인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울증은 모범생들이 주로 많이 걸립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 가운데는 중년 여성들이 많은데, 아내와 엄마로 성실히 살아온 분들이 나중에 허망함을 느끼지요. 자식, 남편 자랑하는 중년 여성들은 오히려 속이 허한 경우가 많아요. 그 순간은 우월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게 나의 성취가 아니거든요. 그 밖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야 된다’는 강박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피곤해요. 착한 여자 증후군, 강한 남자 증후군, 모범생 증후군이 전형적이죠. 게다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해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모든 정신적인 아픔의 밑바탕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있어요. 인간은 혼자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통장에 잔고가 많이 쌓여도 행복하지 않은 건 이런 이유예요. 먼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해요. 주변에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정신과 오는 길에 이미 치유…‘마음의 호소’ 들어라
‘힐링’ 열풍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보십니까.
“사람들이 힐링을 외치는 건 우리의 마음과 뇌가 지치니까 ‘도와줘’ 하는 소리예요. 더 이상 힐링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거죠. 사람들이 마음의 소리를 듣고, 해소하고자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유가 됐다고 봐요. 최근 캠핑 열풍이나 불경기에도 해외여행객 수요가 늘고 있는 점 역시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최근 TV에 한 연예인이 나와서 ‘정신 검진’을 받았다고 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 역시 멘탈 관리를 위한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병원마다 각각 스트레스 검사 시스템이 있는데, 설문지 검사, 피 검사, 심장 뛰고 변하는 비율 측정 등 정교한 진단으로 종합적인 내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합니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의 경우 완치는 힘들어도 증상 조절이 가능하고 상담 및 약물 치료도 큰 도움이 되죠. 무엇보다 정신과 오는 길에 이미 ‘마음의 병’ 절반은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마음에 투자하는 거니까요. 주관적으로 느끼는 ‘멘붕’이란 호소도 의미 있는 신호로 볼 수 있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신 건강을 위한 처방을 내려주세요.
“일주일에 한 번 따뜻한 만남을 갖고 취미생활을 즐기세요. 하루에 10분 운동할 시간도 없는 사람은 없어요. 다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죠. 하루에 15분은 걸으며 사색할 것을 권합니다. 광합성은 스트레스를 더는 데 큰 힘이 되거든요.”
스트레스(stress) 란
스트레스의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스트레스의 생리적 반응을 연구하면서 스트레스 결과에 따른 반응을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압력이라는 의미의 ‘스트레스(stres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흥미와 수행력을 높인다. 좋은 스트레스는 자극이 되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긍정적인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는데 학문적 용어로는 ‘유쾌 스트레스’라고 한다. 나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적 반응을 하는 것으로 ‘불쾌 스트레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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