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심리적 이상 징후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병명’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증상이 한 가지로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병리적 접근과 함께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에 따른 철학적 카운슬링을 제공하는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주요 상담 사례를 정리했다.
[현대인 정신 건강 보고서] 하루에도 몇 번씩 미칠 듯 답답·불안… “이런 저, 공황장애인가요?”
1. 심리적 회피 반응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

Q.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 B씨.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며 정신과를 찾았다. 조그만 걱정이라도 떠오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불안하다. 또 혼자서 잠을 잘 수 없게 됐는데, 본인도 귀신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Dr.’s 진단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비즈니스, 감성의 뇌를 주로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이 온 것 같다.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은 우리 뇌 심부에 있는 ‘감성 뇌’의 피로 증상이다. 감성 뇌가 피로에 빠지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3대 증상이 있다. 수면 중추가 감성의 뇌에 있으므로 수면의 질이 나빠진다. 잠을 자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며 자꾸 깨다 보니 개운하지 않다. 둘째, 건망증이 심해진다. 뇌에 피로가 오면 뇌세포는 죽지 않아도 기능이 떨어져 건망증이 오게 된다. 기억력에 가장 중요한 집중력 센터도 감성의 뇌에 존재한다. 셋째는 짜증이 늘어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화가 울컥 울컥 치민다. 본인도, 주변에서도 성격이 나빠졌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성격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감성의 뇌에 피로가 쌓여 주변 자극에 대한 감성 예민도가 증가해 작은 일에도 강하게 반응하도록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의 2단계 합병증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많으며 모두 정리하고 조용한 곳에 내려가 쉬고 싶다면 심리적 회피 반응이 온 것이다.



Dr.’s 솔루션
‘스트레스성 뇌 피로’를 느낄 때는 감성적인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방법이다. 감성의 뇌는 자연 혹은 사람과 교감할 때 행복의 이완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젊어서 노는 것’은 100세 시대에 효과적인 뇌 건강 증진을 위해 지켜야 할 라이프스타일 처방. 삶의 에너지의 최소 30%는 스트레스를 날릴 나만의 놀이를 찾는 것에 투자하자. 예술, 스포츠, 멋진 자연 모두 좋다.
[현대인 정신 건강 보고서] 하루에도 몇 번씩 미칠 듯 답답·불안… “이런 저, 공황장애인가요?”
2.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MUS’

Q. 50대 남성이 발기부전을 고민하고 있다. 흔한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이뤘고 가정적으로도 특별히 문제가 없는 평범한 가장이다. 큰 대학병원의 비뇨기과를 찾아도,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 봐도, 여러 민간요법도 소용이 없었다. 더 답답한 것은 그 이유조차 모른다는 것. 그는 자신의 남성성이 나아지지 않을까 봐 두렵다.



Dr.’s 진단
이런 저런 신체적 증상은 있는데 각종 검사를 해도 딱히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MUS (Medically Unexplained Symptoms)’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이다. MUS의 원인 중 상당수가 우리 마음이 담겨 있는 뇌의 심리학적, 생물학적 피로와 연관 있다. 마음의 괴로움, 뇌의 피로에서 기인한다. 소화불량, 어지러움증, 이명, 감기 증상, 만성 기침 등 갖가지 MUS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MUS와 같은 기능적 증상의 치료에 있어 증상의 소멸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가 증상에 대한 환자의 인지적, 정서적 반응이다. 증상 자체보다는 증상에 대한 불안, 공포 정서 반응,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과 같은 인지 반응이 삶의 질에 더 영향을 미친다.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때, 그것이 쌓여 감성 스트레스 시스템에 과부하를 만들고 여러 생물학적 반응을 거쳐 신체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의 ‘화’가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명 ‘화병’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여성 못지않게 남성에게서도 많이 나타난다.



Dr.’s 솔루션
‘세련된 화병’ MUS는 변화구 세상이 만든 감성의 병이다. 슬픔을 슬프다 이야기하고 억울한 것을 억울하다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일부 나아진다. 너무 모범적으로 살아왔다면 세상에 적당히 직구를 날려주고, 또 상대방이 거친 직구를 던지더라도 너그러이 받아주는 관용이 필요하다.
[현대인 정신 건강 보고서] 하루에도 몇 번씩 미칠 듯 답답·불안… “이런 저, 공황장애인가요?”
3. 밑도 끝도 없는 공포 ‘공황발작’

Q. 33세 워킹맘이 병원을 찾았다. 외근이 잦아 운전할 일이 많은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남산터널을 통과하는데 터널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지며 식은땀이 나는 것이 아닌가.‘이러다가 죽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에 공포마저 몰려왔다. 이후로 운전하기가 겁난다.



Dr.’s 진단
공황(恐惶)의 사전적 의미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공포로 갑자기 생기는 심리적 불안 상태’다. 갑자기 심리적 공황이 찾아오는 것을 ‘공황발작’이라 하고 영어로는 패닉 어택(panic attack)이라 한다. 과도한 불안 증상이 갑자기 오는 것으로 앤자이어티 어택(anxiety attack)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공황장애는 공황발작의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공황장애는 불안의 문제다. 과도한 불안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갉아 먹는다. 생각으로 마음을 조정하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고 스스로의 나약함에 자책하게 된다.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어도 불안이 엄습하면 내 소중한 성취의 콘텐트를 즐길 수 없게 되는 이치다. 공황장애 같은 불안 증상은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오히려 발생하기 쉽다. 자신의 감성적 욕구를 뒤로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희생적으로 에너지를 제공하던 감성 시스템이 보상 없이 끝없이 희생만 요구당할 때 자명종을 울리는 데 이것이 ‘패닉’이다.



Dr.’s 솔루션
패닉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아닌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몸에 힘을 빼야 타인의 도움을 받기 수월해진다. 생존을 위한 과도한 불안 시스템은 주변을 믿지 못하게 한다.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동반되며, 실제 신체 반응까지 일어나는 불안인 패닉은 ‘이대로는 더 못 살겠다’는 마음의 강력한 SOS 구조 신호다. 패닉의 경험은 또 다른 패닉 증상을 유발하기에 심리요법과 더불어 약을 충분히 써서 패닉 증상을 없애는 것이 일차적인 치료법이다.



4. 불안 시그널에 대한 반응 ‘불면증’

Q. 40대 초반 전업 주부는 얼마 전 북한의 핵 위협이 한창 이슈일 당시 사춘기 아들에게 문자를 받았다. 아들은 “엄마, 전쟁 나면 어떡하지”라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불안한 것도 아닌데 잠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리고 간신히 잠이 들어도 계속 깨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Dr.’s 진단
갑작스러운 불면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뇌는 잠을 잘 자야만 개운하게 깨어 있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숙면을 취할 수 없다면 그나마 깨어 있는 시간마저 잠든 것처럼 멍하게 지나가 버린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잠을 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뇌가 있는 힘을 다해 깨어 있으려 하기 때문. 마치 전쟁 현장에 있는 군인이 생존을 위해 며칠 밤을 지새우며 자신을 향해 오는 적을 감시하는 것처럼 뇌가 과잉으로 각성된 상태다. 살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는 우리의 뇌가 거꾸로 불면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는 아이러니가 현대인의 불면증이다. 불면증은 불안 시그널에 대한 반응이다. 생존에 대한 불안이 느껴지기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우리 뇌의 감성 시스템이 주변을 평화 상태로 인식한다면 뇌는 오프 상태가 되고 수면이란 휴식에 들어간다.



Dr.’s 솔루션
불면증 치료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 편히 먹어’, ‘일찍 누워 잠을 청해 보자’ 같은 말로는 불면이 악화될 수 있다. 오히려 ‘오늘 난 잠을 자지 않겠어, 나의 소중한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낼 거야’ 같은 역설적 접근이 불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잠이 오지 않을 때 20분 이상 잠자리에 누워 있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거실이나 다른 장소에서 책을 읽는다든가 자극적인 TV보다는 음악과 독서를 할 때 우리 몸과 뇌는 이완된다. 다시 잠이 오려고 하면 그때 잠자리에 가서 누워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