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 경주힐튼호텔 대표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넷.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타이틀을 달기엔 젊어도 너무 젊은 나이다. 게다가 부산을 기반으로 한 튼실한 중견기업 오너의 2세라는 사실까지 보태지면 은수저 물고 태어나 정해진 대로 대표에 오른 운 좋은 사람이라는 편견이 생기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나 조영준 경주힐튼호텔 대표를 만든 8할은 발로 뛰며 쌓은 현장 경험과 전략 덕분이었다. 물론 자수성가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DNA도 함께.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그곳에 최근 또 하나의 이슈가 생겼다. 경주아트선재미술관이 우양미술관으로 재개관하면서 열리는 개관 기념전에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는 것.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 전시는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데,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액을 기록한 박수근의 ‘빨래터’를 비롯해 ‘볼 기회가 흔치 않은’ 작품들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구나 대형 미술관들이 서울로 집중되는 상황에 지방에서 열린 대형 전시라는 점도 조명을 받는 이유다.이번 전시와 함께 미술관의 재개관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는 바로 조영준 경주힐튼호텔 대표다. 지난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은닉 재산으로 검찰에 압류돼 있던 베스트리드리미티드(옛 대우개발)의 주식 90.72%를 낙찰 받은 우양수산의 창업자 조효식 회장이 조 대표의 부친으로, 공매 참여 의사 결정에서부터 낙찰까지 전 과정을 조 대표가 직접 했다. 경주힐튼호텔과 경주아트선재센터를 직접 소유하고 있었던 베스트리드리미티드는 경남 양산시 에이원골프클럽(GC)과 경남 거제시 드비치GC, 경기도 포천시 아도니스컨트리클럽(CC)의 상당 지분을 갖고 있는 실질적인 지주사이기도 하다.
호텔 사업 도전, 미술관 연계한 아트 경영
인수 이후 지난해 10월 경주힐튼호텔 대표로 취임한 조 대표는 “인수 당시에는 미술관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희자 관장이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인수하고 살펴보니 하나하나 가치가 있더군요. 문제는 운영이었어요.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1년에 한두 번 기획 전시를 하고 나머지는 35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 위주로 전시를 했다는데 그나마도 ‘대우 사태’ 이후로는 제대로 된 기획 전시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살려보자 했더니 반대로 직원들이 되겠냐며 말리는 겁니다. 지인들을 통해 전문가들을 접촉했고 결국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박수근과 이중섭으로 교집합이 생기더군요. 작품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운 좋게도 소장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진짜 문제는 비용이었다. 손익 계산을 해본 결과 1만7000명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를 넘을 수 있었던 것. 전시 기간 총 86일 동안 하루 평균 200명이 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과연 가능할지가 미지수였다.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지만 주중이 고민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주말에는 하루 500여 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찾고 있는 것.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교육적인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에 대해서도 사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생겨났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었던 조 대표는 재개관을 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애착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디까지 미술관은 호텔 사업의 연장선에서 벌인 일이다.
“우리의 주된 사업은 호텔이에요. 미술관이 호응을 얻으면서 호텔에도 연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죠. 미술품을 보러온 관람객이 호텔의 고객이 되기도 하고, 숙박과 미술관 관람, 그리고 도록 제공 등을 패키지로 엮은 상품도 반응이 좋아요.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수치상 가시적인 효과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경주힐튼호텔의 대표로 취임하기 전 이미 우양수산의 계열사인 고려에너지를 직접 세우고 대표를 맡아왔던 그였지만, 호텔 사업은 낯선 도전이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조 대표에게 도전은 신나는 모험이었다. 취임 후 그는 먼저 객실과 뷔페, 로비라운지 등을 최신식으로 리노베이션했다. 오래전 지어진 노후한 시설을 보완하는 차원이기도 했지만, 보다 리조트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또 하나, 무조건 최고가 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지역적 특성에 맞는 호텔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리노베이션에 반영됐다.
그러나 일을 즐기는 조 대표에게도 호텔 사업은 분명 힘든 지점이 있었다. 조 대표는 그 부분에 대해 “생각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더라”고 말했다.
“막상 경영에 나서고 보니 제가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 입장에서 생각할 때와 너무 다른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324개의 객실이 주말에 만실이 되면 투숙한 손님들만 700~800명이에요. 집에 손님이 3~4명만 와도 어머니들이 뒷수발하기 힘들어하는데, 그 많은 고객들의 뒷수발을 든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인 거죠.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이 하룻밤 편안히 쉬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보람이 있어요.”
투자 및 경매 경험 다수, 치밀한 전략으로 승부
조 대표가 젊은 나이에도 사업 수완을 발휘하는 건 현장 경험에서 비롯한 치밀한 전략 때문이다. 경주힐튼호텔 등을 인수할 때도 호텔 길 건너편에 설립 중인 경주컨벤션센터가 완공됐을 때 얻게 될 이점들을 투자 이유에 넣은 그였다. 주중엔 고객이 많지 않다는 약점이 컨벤션센터와 함께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무엇보다 조 대표의 전략과 분석이 제대로 통했던 건 바로 베스트리드리미티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였다. 2008년 초 베스트리드리미티드가 공매에 나왔을 때 가격은 2080억 원. 4회까지 유찰된 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중단됐다가 지난해 다시 재감정가 2040억 원에 매물로 나온 뒤 여섯 차례 유찰 끝에 결국 우양수산이 최초 감정가의 45% 수준인 923억 원에 낙찰을 받았다.
“제가 원래 그쪽에 관심이 많아요. 취미가 경매·공매 사이트 뒤지고 다른 회사 장부 보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처음 공매에 나왔을 때만 해도 관심만 있었어요. 그러다 매물에서 사라지면서 저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또 사이트를 보다 보니 공고가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쩐지 그때는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별 반대가 없었는데 어머니는 생각도 하지 말라며 극구 말리셨죠. 지금도 아버지와 저는 궁합이 잘 맞는 편이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제 편이 돼주신 덕분에 참여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조 대표는 인수 주간사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다. 검찰, 은행, 자산관리공사 등으로 뛰어다녔고 혹시 경쟁자는 없는지 있다면 누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를 싸매고 연구했다. 베팅 당일에는 치밀한 전략과 경쟁자 따돌리기 작전으로 단독 입찰해 낙찰에 성공했다. “우리의 주된 사업은 호텔이에요.미술관이 호응을 얻으면서 호텔에도 연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죠. 미술품을 보러온 관람객이 호텔의 고객이 되기도 하고, 숙박과 미술관 관람, 그리고 도록 제공 등을 패키지로 엮은 상품도 반응이 좋아요.”
사실 조 대표는 그 이전에도 지분 투자나 경매 및 공매 경험이 많아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고 있었다. 웹젠에 경영권 분쟁이 붙었을 때 백기사로 참여한 적이 있었고, 코스닥 상장사인 우경(당시 우경철강)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2대 주주로 참여한 뒤 차익을 실현한 적도 있다.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한 엠씨넥스에 상장 이전에 투자하기도 했고, 이 외에도 여러 부동산 등을 경매로 낙찰받은 경험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대 초반 시작한 주식투자에서도 그는 성과가 대단했다.
“어머니에게 3000만 원을 빌려 처음 주식을 했는데, 당시 하이닉스 반도체가 200~250원 할 때였어요. 그때 주식으로 정말 많이 벌었어요. 그때부터 돈 버는 놀이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사실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얘기도 바로 돈 얘기고요.”
인터뷰에 동석한 문정식 상무는 “조 대표가 시장을 읽을 줄 아는 탁월한 감각을 가졌다”고 평했다. 거기엔 어느 정도 사업가인 부친의 영향도 있을 터였다.
젊은 CEO의 탁월한 시장 감각도 성공 요인
조 대표의 부친인 조효식 회장은 해양대를 졸업한 후 1등 항해사로 배를 타다 1976년 사업을 시작했다. 한 번 항해를 나가면 2~3년씩 가족들을 볼 수 없었던 게 이유였다. 처음 시작한 사업체가 바로 방위산업체인 고려화공. 배를 탔던 경험으로 배 안의 신호탄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잘만 하면 잘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잘나가는 직업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사업은 성공했고 번창했다. 이후 우양수산, 우양냉장 등을 잇달아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알짜 중견기업으로 거듭났다.
조 대표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20대 초반부터 철저히, 그것도 아주 혹독하게 경영 수업을 받았다. 경남 고성에 있던 고려화공 공장 말단으로 시작해 현장 수업을 강하게 받은 것. 그러나 당시에도 그는 힘들다기보다는 동료들과 퇴근 후에 소주 한 잔 하는 재미를 더 즐겼다. 그런 경험들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된 건 당연한 일. 그는 지난 4월부터 고려화공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 대표는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시작한 고려에너지의 대표이기도 하다. 석유 유통을 하는 고려에너지도 그가 발로 뛰며 얻은 경험으로 확신을 갖고 시작한 일. 그러나 혹 이른 나이에 기업의 CEO 역할을 한다는 게 부담은 아닐까.
“주변에서는 제 겉만 보고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하기도 하지만, 어느 자리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나름의 부담감, 책임감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지금은 힘들어도 나이 들어서 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 힘들고 바쁜 걸 즐기는 편이에요. 물론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 나이 많은 직원들을 대할 때나 대표로서 발언을 해야 할 때는 어색한 것도 있어요. 그게 단점인 반면 빨리 판단하고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다는 건 장점입니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CEO에게 경영철학을 묻는 건 그에게도 독자에게도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조 대표의 수많은 경험들을 들으니 꼭 묻고 싶어졌다. 대답은 역시 나이답지 않았다. “망하면 안 된다는 게 철칙이에요. 부동산에 기반, 업력이 오래된 회사가 투자 대상인 데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경주힐튼호텔도 그랬고요.”
선한 인상에 내뱉는 말마다 자신감에 넘치고 당찬 조 대표는 어쩌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CEO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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