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받은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주) 회장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주) 회장이 2013년 ‘제22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한국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인득 벽산 창업주의 3남인 김 회장은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하는 한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 현대미술관회 부회장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 4일 시상식에 앞서 르네상스 서울 호텔에서 김 회장을 만나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DILETTANTE] “음악과 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입니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주) 회장은 1973년 한국슬레트를 시작으로 건설업에 몸담았다. 건설인으로서 김 회장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한국 시장보다 말레이시아, 중동 등 해외 시장 개척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도로 공사 등 해외 공사를 수주하며 도급 순위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경영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97년 (주)인희의 구조조정을 맡아 2년 반 동안 부채를 정리하고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또한 워크아웃 위기에 있던 벽산엔지니어링을 맡아 법정관리 해제는 물론, 현재 국내 엔지니어링 부분 선두 업체로 성장시켰다.

2007년부터는 해외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 현재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5대륙 12개국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짧은 해외 개척 기간에도 폐기물 소각시설 설계관리·수송관로 분야 등 환경 분야와 송변전 감리·전력구 감리 등 전기 분야, 장거리 관로 설계 분야, 열병합 발전설비 설계의 플랜트 분야 등 국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또한 ‘바르게, 다르게, 다같이’를 경영이념으로 회사 순익의 5%를 사회에 기부할 뿐 아니라 탈북 대학생 인턴십, 탈북 대학생 멘토링, 장애인 고용, 전 직원 봉사활동제, 열악한 음악단체 후원 등 차별화된 봉사 활동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임직원들에게는 복지 혜택을 주는 헬스키퍼실을 회사 내에서 운영하고 있다.



세계가 사랑하는 세종솔로이스츠 산파 역할
문화예술 후원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기업인으로서 김 회장은 문화예술에 막중한 사명감과 의무감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의 후원으로 탄생한 ‘세종솔로이스츠’는 짧은 역사에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서 ‘최고 수준의 현악 오케스트라’로, 런던타임스에서는 ‘놀랄 만큼 뛰어난 앙상블, 빛나는 명연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세종솔로이스츠의 특별 후원인으로 시작해 미국 법인 이사, 한국 사단법인 창립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세종솔로이스츠 단원에게 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어 젊은 아티스트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현재 세종솔로이스츠의 악장인 천웬황 바이올리니스트가 1683년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로, 단원인 조성원 바이올리니스트가 1758년산 J. B. 과다니니로 연주하고 있다.

‘미술’ 분야에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벽산엔지니어링의 본사 5개 층에 많은 미술작품을 전시해 임직원이 회사 내에서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하며 임직원들의 창조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김 회장은 또한 리움미술관의 홍라희 관장, 이건산업의 박영주 회장, 일신방직의 김영호 회장 등과 함께 조직한 현대미술관회의 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하며 미술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2010년 5월 김 회장은 그간의 후원을 발판삼아 ‘벽산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 벽산문화재단은 각종 문화예술 단체의 지원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발전과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DILETTANTE] “음악과 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입니다”
항상 보타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타이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거의 대부분 보타이를 맵니다. 건설업을 하는 데다 인상이 강해요. 배우라면 아무거나 입어도 멋있어 보이겠지만 저는 그게 안 되잖아요. 나이도 먹었고요. 좀 더 멋스럽게 나이 들어 보이려고 보타이를 매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성질이 급하고 못됐습니다. 한동안 파이프 담배를 피웠는데 담배를 꾹꾹 누르면서 분을 삭이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성격은 잘 변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문화로 눈을 돌리신 겁니까. 일종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요.
“그렇다기보다 문화예술에 지원하게 된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조금만 건강을 관리하면 아흔 살까지는 산다고 하잖아요. 제가 해방둥이라 2년 있으면 일흔 살이 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어떻게 하면 멋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멋있게 나이 드신 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분들을 보니까 봉사 활동은 기본이고 문화예술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그게 참 좋아 보였어요. 그분들을 따라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집니다. 선진국들을 따라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된 것 아닙니까.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몽블랑은 전 세계 12개국에서 후원자상을 주는데, 한국도 3년 전부터 대상국에 든 거죠.”



세계적인 CEO 모임에서 문화예술 후원 배워


[DILETTANTE] “음악과 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살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주변에 멋있게 나이 드신 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분들을 보니까 봉사 활동은 기본이고 문화예술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 롤모델이었습니까.
“국제적으로 다양한 최고경영자(CEO) 모임이 있는데, 제가 몸담은 모임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모임인데, 1986년에 가입해 벌써 30년 넘게 몸담고 있습니다. 1년에 몇 번씩 만나 공부하고 친분도 쌓는 모임입니다. 얼마 전 작고한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도 동료 회원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외국 CEO들도 많은데, 다들 참 열심히 사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롤모델이 된 거죠.”

그림에 대한 조예도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회사에 전시된 그림만 수백여 점이 넘는다죠.
“이것저것 합치면 1000여 점은 될 겁니다. 그림 컬렉션은 1985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흔히 그렇듯이 시작은 판화였습니다. 작품이 제법 모이면서 비영리 화랑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 때 접기는 했지만요. 지금은 아내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갤러리를 운영해온 사람입니다.”

재혼까지 그림이 중매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키아프 조직위원으로 있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당시 아내는 키아프 운영위원이었거든요. 마음에 들어서 옆구리 꼭꼭 찔러서 만나게 됐죠. 그림이 제게는 취미생활이고, 아내에게는 업이잖아요. 이야기가 잘 통했죠. 처제도 피아노를 해서 집안이 예술에 해박했어요. 그런 이유로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죠.”

그림을 놓고 의견 마찰은 없으셨나요.
“우리 집 모토가 ‘작은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예요. 그 덕에 2년 반 동안 잘 꾸려나가고 있어요. 그림은 서로 보는 각도가 달라요. 아내는 다시 팔 자신이 있는 것을 고르지만, 저는 사무실에 걸어두면 좋겠다 싶은 걸 고르거든요.”

요즘 한국 젊은 작가들 중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한국에서는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한국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좋습니다. 젊은 나이에 빛을 보는 작가들도 많거든요. 예전 작가들과 달라 요즘 작가들은 해외 아트페어에 나가서 먼저 이름을 알립니다. 그런 다음 한국에 금의환향하는 거죠. 동남아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친구들이 단체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사려고 올 때도 많습니다. 중국 빼고는 홍콩, 대만, 싱가포르 작가 중에 신통한 작가가 거의 없거든요. 일본 작가들도 한국만 못하고요.”

일찍부터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해오셨는데요, 일흔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제게 음악과 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입니다.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디 가서 아는 체도 좀 하고요. 뉴욕에서 세종 솔로이스츠가 연주하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친구들까지 다 옵니다. 그 친구들이 오면 수표 한 장씩 써 주고 갑니다. 후원이 일상화된 거죠. 그럴 때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문화예술 분야 후원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팁을 주신다면.
“일단 저한테 술 한 잔 사라고 하세요.(웃음) 그 자리에서 그간의 노하우를 다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나이에도 무척 바쁘게 삽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연주회가 있고, 전시회도 잦거든요. 여행도 좀 다녀야 하고요. 이만큼 풍성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화예술은 인생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사업에도 도움을 줍니다. 저는 메세나(mecenat) 성공 사례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저를 멘토로 불러주시면 제 얘길 들려드리겠습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