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금리 1% 시대가 도래하며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0.1%라도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쪽으로 자금 이동이 빨라지는 이른바 ‘금리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금융시장의 지형까지 바꿔버리는 초저금리가 퇴직연금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과연 퇴직연금 가입자, 특히 확정급여(DB)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저금리로부터 안전한 무풍지대에 있는 것일까.
[RETIREMENT PENSION] 저금리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선 DB형 퇴직연금
‘예금 금리 1%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5월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로 인하하면서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2.2%에서 1.95%로 떨어진 것이다.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한 달 전인 4월 중 정기예금 금리의 분포를 보면 연 3%대가 14%, 연 2%대는 84.5%, 연 1%대는 1.5%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됨에 따라 1%대 정기예금의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바야흐로 ‘예금 금리 1%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일로만 여겨지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금리가 초저금리를 기록하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0.1%라도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쪽으로 자금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 한때 찬밥으로 냉대를 받던 청약통장이 재테크 수단으로 재조명을 받으며 부상한 것은 초저금리 시대의 또 다른 양상이다. 지난 4월 한 달간 청약통장 신규 가입자 수는 약 57만5000명이었는데, 이는 1월부터 3월까지 월평균 신규 가입자 수 4만5000명의 1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청약통장이 주택청약이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이탈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을 받는 것은 2년 이상 유지하면 연 4%의 금리를 주기 때문이다. 초저금리가 빚어낸 청약통장의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금리 수준에 대해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지난 4월 ‘금리 티핑 포인트’라 칭한 바 있다. 금리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예금 금리 1% 시대와 퇴직연금
금융시장의 지형까지 바꿔버리는 초저금리가 퇴직연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동안 퇴직연금은 금융시장의 일반적 흐름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 게 사실이다.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에 제시하는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가 정기예금 금리보다 무려 2.61%포인트나 높았다. 이후 퇴직연금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가 떨어지긴 했지만 2012년에도 여전히 0.69%포인트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기현상은 완전 경쟁을 넘어 과도한 경쟁으로 치달은 퇴직연금 시장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과연 퇴직연금 가입자, 특히 DB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저금리로부터 안전한 무풍지대에 있는 것일까. 시장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받고 있으니 여전히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일까. 일반 예금 가입자들이 볼 때 퇴직연금 가입자는 혜택을 보고 있음에 분명하다. 과연 그럴까. 퇴직연금의 특성을 감안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이유를 코스피200 기업이 2011년과 2012년 두 해 동안 퇴직연금을 운영해온 결과를 가지고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코스피200 기업 중 3월 결산 법인과 확정기여(DC)형을 운영 중인 기업 등을 제외한 12월 결산 법인 가운데 DB형 퇴직연금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178개였다. 이들 178개 기업의 퇴직급여 채무는 2012년 한 해 동안 2011년 대비 약 5조 원이 증가한 29조8000억 원이었다. 반면에 퇴직연금 사외 적립 자산은 3조 원 늘어난 18조 원이었다. 채무와 자산 모두 약 20%씩 증가했기 때문에 사외 적립 비율, 즉 갚아야 할 채무 대비 사외 적립 자산의 비율은 약 60% 정도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요구하는 최소 적립 비율인 60%를 충족하고 있다. 이는 DB형 퇴직연금이 저금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사외 적립 비율의 분포를 살펴보자. 2012년에 최소 적립 기준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117개로 65.7%에 불과하다. 나머지 34.3%(61개사)는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2011년보다 2012년에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는 점이다.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118개에서 115개로 줄어든 반면에 미달하는 기업은 60개에서 63개로 늘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사외 적립 비율은 두 해가 같더라도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이 3곳이나 늘었다는 점은 저금리의 영향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금리 하락은 퇴직연금 운영 기업에 부담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DB형 퇴직연금이 기업의 손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조사 대상 178개 기업의 당기순익은 51조 원이었다. 그런데 퇴직연금과 관련해 손익계산서에 비용으로 잡힌 금액은 당기순익의 8.2%에 해당하는 4조2000억 원이었다. 2012년에 당기순익은 49조 원으로 줄어든 반면에 퇴직연금 관련 비용은 4조8000억 원으로 늘어나 당기순익의 9.7%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손익계산서에 반영되는 퇴직연금 관련 비용이 늘어난 것은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

저금리가 기업의 재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재무상태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재무상태표에는 퇴직급여부채라는 계정이 차변에 기록되는데, 이 퇴직급여부채는 확정급여 채무에서 사외 적립 자산을 공제한 금액이다. 확정급여 채무는 미래에 지급해야 할 퇴직 부채를 할인율로 할인한 금액이므로 할인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할인율은 금리 동향에 따라 변한다. 즉 금리가 떨어지면 할인율은 인하되고, 이 결과 퇴직급여 채무는 늘어나게 된다. 차변의 부채가 늘어나면 대변의 자산과 자본을 늘려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자산을 늘리는 방법은 퇴직연금 부담금을 더 많이 납입하는 것이며, 자본을 늘리는 방법은 영업이익에서 잉여금으로 더 많은 돈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배당 재원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금리 인하에 따른 할인율 하락은 퇴직급여부채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부담금 증액이나 배당 재원 축소라는 부담을 기업에 지우게 되는 것이다.


금리 하락으로부터 DB형의 운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적립금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금리 하락은 여러 경로를 통해 DB형 퇴직연금을 운영 중인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B형 퇴직연금을 운영 중인 기업이 금리 하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DB형의 적립금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2012년 말 현재 DB형 적립금의 약 98%가 금리 하락에 민감한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하락으로부터 DB형의 운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적립금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즉 원리금 보장형 일변도의 운용 패턴을 원리금 보장형과 실적 배당형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기업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다.
[RETIREMENT PENSION] 저금리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선 DB형 퇴직연금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일러스트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