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에 따른 우리 사회의 변화(上)
단테는 ‘신곡’에서 중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인생 여정의 한복판, 그 캄캄한 숲속에서 감각을 되찾았을 때 난 바른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테가 살아간 중세기에는 40세 전후를 중년기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50대부터 중년기에 포함된다. 한국의 50대는 그만큼 치열한 인생역정을 겪으며 길고 두터운 중년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50대의 힘들고 서글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인생 보고서가 나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쓴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송 교수는 이 책에서 정년 연장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한국의 50대가 처한 현실을 바꿔나가야 하는 과제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4월 말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정년 60세가 의무화됐다. 법률 개정에 따라 공공기관 및 근로자 300명 이상의 사업장은 2016년부터, 300인 미만의 모든 사업장은 2017년부터 정년 의무화 법안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무엇보다 소득 공백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정년 연장으로 노후 소득이 증가하면 제2인생을 충실하고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도 더욱 늘게 된다. 노후에 필요한 소득이 확보되면 은퇴 후 여가 활동과 사회참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은퇴 후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사회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급속한 고령 인력의 증가에도 활력이 넘치는 사회로 바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면서 전체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근로 기간 연장으로 공적연금 제도 기능 및 역할 커져
근로 기간 연장으로 공적연금 제도의 기능과 역할도 더욱 커지게 됐다. 근로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가 늘어날 것이며, 국민연금 가입자가 증가하면 보험료 납입 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납입한 보험료가 늘어나면 60세 이후의 1인당 연금 수령액이 증가하면서 노후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사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일찍부터 공적·사적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노후 소득 기반을 튼튼히 정비해 왔다. 또한 단계적인 정년 연장과 고용 확보 조치 등을 통해 고령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고령자 세대는 공적연금 소득이 노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고, 풍요롭게 노후를 보내는 은퇴자들도 많다. 실제로 2009년 현재 일본 고령자 세대의 가구당 평균 소득은 297만 엔이며, 공적연금에서 받는 평균 연금액은 210만 엔으로 전체 소득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국민 4명 중 1명이 연금을 수령하는 등 공적연금은 고령자의 노후 생활을 지탱하는 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생 이벤트가 집중된 50대 후반기와 60대 전반기의 계획표를 작성해보면 장래의 인생 계획이 가시화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반면, 한국의 은퇴자들은 공적연금에서 나오는 연금액만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정년 연장으로 근로 기간이 늘어나면 60대 이후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수령액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뒤로 미뤄왔던 국내외 여행이나 각종 취미활동 등을 활발하게 하려면 공적연금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의료비와 치매 같은 질환으로 인한 장기 간병비 또한 가계에 예상치 못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홀로 남게 될 배우자의 삶까지 생각한다면 공적연금만으로는 충분한 노후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올해부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1세로 단계적으로 연장되기 시작해 2033년부터는 65세로 늦춰질 예정이다. 정년 연장으로 50대 근로자의 소득 공백 기간이 줄어든다 한들 60대 전반기부터는 소득공백기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정년 연장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근로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전보다 안정된 고용 확보 장치가 마련되는 등 노후 준비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고령 인력 증가에 따른 경영 지출 압박이 커지고, 다양한 세대의 인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특히,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정년 연장은 인건비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법률 개정에서는 60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동시에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허용했다. 근로자의 일하는 기간은 늘리되, 임금 조정을 통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인 것이다.
60대 전반기 계획표 작성, 장래 인생 계획 세워야
이미 60세로 정년을 연장한 국내 일부 기업이나 일본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일정 시점, 예를 들면 만 55세부터 퇴직 시점까지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기업 또는 개인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줄어든 임금은 퇴직연금 수령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50대를 넘어선 어느 시점부터는 지금보다 임금 수준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50대는 주택대출금 상환,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 노후 자금 준비라는 이른바 ‘인생의 3대 지출 부담’이 가장 큰 시기이므로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정년 시점인 60세를 기준으로 전후 5년 동안의 환경 변화와 인생 이벤트를 고려해 치밀한 은퇴 설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상되는 소득 흐름, 주택담보대출금의 잔여 금액, 연금 수급 연령과 예상 금액, 자녀 교육비 지출 규모, 자녀의 결혼 예상 연령과 지원 방법 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인생 이벤트가 집중된 50대 후반기와 60대 전반기의 계획표를 작성해보면 장래의 인생 계획이 가시화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연 단위로 발생할 이벤트와 예상 소득, 각 이벤트에 소요되는 비용, 퇴직 후 소득 공백 기간의 소득 확보 대책, 60대에 받을 수 있는 연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앞으로의 30년을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다.
20대가 자신의 인생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준비를 하듯이, 50대는 제2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준비해야 한다. 50대의 연장선상에 60대가 있고, 60대의 연장선상에서 70, 80대가 있다.
이형종 삼성생명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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