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문화, 강남 스타일의 탄생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버버리 코트의 유행은 일명 떡볶이 코트로 불리며 강남의 중고등학생의 국민 코트였다. 1990년대 후반 화이트 스타킹에 페라가모를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인 바라 슈즈와 바라 헤어밴드는 강남 여성들의 국민 옷차림이었으며 참한 이대생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사실. 지금으로 보면 청담동 며느리 룩의 원조 옷차림이었던 것이다.
강남이 명품 문화의 근원지로 떠오르는 데 있어 일조한 것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갤러리아 백화점이다. 1990년 9월 기존 한양쇼핑센터 영동점에서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새롭게 개점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켰고 이는 곧 강남 부유층들의 쇼핑 아지트가 됐다. 그리고 강남은 부유층이 사는, 흔히 돈 많은 부자들의 동네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1994년 청담동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단독 매장이 들어서면서 청담동 명품 거리의 시초를 알렸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강남 명품족들은 똑같은 가방, 신발 등에 싫증을 내기 시작함에 따라 명품 브랜드들은 단독 매장에 더욱 신경쓰기 시작했다. 프라이빗한 쇼핑이 가능토록 VIP 룸을 따로 마련하고 VIP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며 그들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와 명품, 연예인과 명품
명품이 극도로 사치스러움의 대명사로 떠오른 건 바로 1990년대 후반 정치적 사건과 연관돼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부터다. 명품은 정치적 뇌물로 종종 이용됐고 명품이 얽힌 정치적 사건들은 결국 대중에게 사건의 본질보다 명품만 기억하는 효과를 낳았다. 1996년 린다 김 로비 사건은 무엇보다도 일명 린다 김 선글라스가 회자되며 에스까다를 남겼고, 1999년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의 옷 로비 의혹 사건은 페라가모,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때 베르사체 슈트 역시 이슈화되면서 명품 브랜드로서 확실히 이름을 알렸다. 2007년 신정아 사건 때는 에르메스와 반클리프 아펠이 새롭게 떠올랐고, 2011년 신정아 4001 출판기념회에서는 생 로랑(YSL) 백이 품절 효과를 낳기도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회갑 선물로 받았다는 1억 원 상당의 피아제 시계가 2009년 알려지면서 항간에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홍보의 기회’라고 할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확 올라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물론, 1999년 범죄자 신창원의 미쏘니나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녀와 신정환이 입었던 다소 생소했던 몽클레어 패딩은 대중에게 패딩계의 샤넬이라 불리며 싹쓸이 현상을 보였던 웃지 못할 사건 중 하나다. 2000년대 스타들이 협찬 받아 착용한 명품들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대중에게 스타와 같은 명품을 공유하는 대리만족 소비 형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명품 업계는 서로 앞다투어 유명 연예인을 모시기 위해 의상이나 소품 협찬뿐 아니라 협찬비 일명 거마비를 줘서까지 스타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6년 명품 사기 사건인 빈센트 앤 코의 사기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다. 싸구려 시계를 ‘100년 전통 스위스 명품 시계’로 둔갑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이 인기 연예인을 활용한 스타 마케팅이었고 이는 곧 스타가 착용하는 명품 브랜드로 둔갑했던 것이다.
브랜드의 변화, 그리고 소비자의 변화
2000년대 중반 들어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 명품관이 형성되고 명품 중고숍 및 대여숍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된장녀, 된장남이라는 못된 신조어가 또 하나 추가돼 고가의 명품만을 고집하는 대중에게 일침을 가했으며 명품 중고숍과 명품 렌탈숍은 결국 명품이란 욕망에 사로잡힌 대중의 잘못된 소비 형태의 결과물만을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 첫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스피디백은 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는 백이란 뜻으로 3초백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고, 2007년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명품이라는 뜻의 맥럭셔리, 명품 중에 명품인 초고가 명품이라는 위버 럭셔리라는 신조어가 생기면서 진정한 명품으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진화하고 있다. 2013년 현재, 명품 업계는 남성들의 명품 소비가 늘어나면서 남성을 위한 명품 시장이 커지고 있는 추세다. 백화점 내에 남성을 위한 남성 전용 명품관을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전용 편집숍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업종 역시 패션 브랜드들 위주에서 초고가 시계 브랜드들로 바뀌고 있다. 또한 사치를 부추긴다는 명품 브랜드들은 ‘우리 브랜드는 사치품이 아니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듯 너도 나도 중저가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리미티드 에디션을 탄생시키고 있다. 어찌 됐건 그 중저가 브랜드는 명품 브랜드를 등에 업고 이를 이용해 착한 가격에 명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꽤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제 명품 브랜드들은 기부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일수록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 명품이 소비자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명품을 선택하는 시대가 됨에 따라 브랜드 네임만을 좇아가는 것이 아닌 명품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양정원 기자 neir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