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 겸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요즘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털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과 유망 벤처기업을 찾느라 분주하다. 특히 이웃한 중국은 우리 경제와 워낙 밀접한 데다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있어서 최근 강조하는 벤처 시장이 어떤지 또 상호 협력과 시너지 방안은 없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다 국영기업 중심인데, 가장 자본주의적인 벤처 시장이 활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러나 중국은 본래 장사 기질과 도전적 베팅 문화가 강한 나라다. 그런 만큼 지난 30년간 고속 성장을 일군 한 축이라 생각될 정도로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시장이 발달해 있다. 벤처캐피털회사들이 벤처 기업에 투자한 후 선전거래소의 중소기업판 또는 창업판에 상장했을 때 투자수익률은 단순 배수(multiples)로 평균 7~8배에 이른다.중국은 기준은 다소 상이하나 벤처기업 수가 약 43만 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회사 수가 2200여 개로 우리나라의 16배와 20배다. 벤처펀드 결성액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빠른 성장을 해왔다. 벤처 펀드 투자액도 작년에 28조 원으로 우리나라 1조4000억 원의 20배다. 우리가 정부 투자에 많이 의존하는 것과 달리 연금기금, 기업, 국부펀드 등 다양한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또 개방화에 따라 중국 소재 해외 벤처캐피털들도 많아서 전체 벤처캐피털회사 수의 25%인 500여 개나 된다.
벤처캐피탈 회사 수 2000개 넘어
그럼 이처럼 중국 벤처 시장이 단기간에 급속히 클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네 가지를 든다. 첫째, 누가 뭐라 해도 회수 시 높은 투자수익률이다. 예컨대 벤처캐피털회사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후 선전거래소의 중소기업판 또는 창업판에 상장했을 때 투자수익률은 단순 배수(multiples)로 평균 7~8배에 이른다. 좋아도 3~4배인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이다. 둘째, 과감한 글로벌 전략이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서 벤처캐피털 시장 초기부터 해외 유수의 벤처캐피털을 유치하고 합작사를 유도했다. 해외 벤처캐피털들의 투자가 총 벤처 투자의 70%나 되고, 인민폐(RMB) 외에 달러 표시 투자도 활발할 정도로 글로벌화돼 있다. 셋째는 투자 후의 회수 수단이 다양한 점을 들 수 있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인수·합병(M&A) 시장이 활발하진 않지만, 기업공개(IPO) 시장은 상당히 다양하다. 상하이와 선전거래소뿐 아니라 홍콩, 미국의 나스닥, 싱가포르의 사스닥 시장도 활용한다. 게다가 선전거래소에는 벤처기업의 전용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판과 창업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투자 생태계가 활발하고 선순환이 잘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엔젤 투자 제도의 적극 적인 활용이다. 우리도 작년부터 본격 엔젤 투자자 양성에 노력하고 있는데, 제도화된 정책 시행은 중국이 오히려 빠른 셈이다. 중국의 엔젤 투자 제도는 정부 자금과의 주식 매칭 투자뿐 아니라 은행대출과 연계한 패키지 투자 상품, 메자닌(mezzanine) 등으로 우리보다 다양하다. 또 엔젤 투자자는 성공한 기업가 또는 창업가와 대기업 임원,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은 전문가의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 엔젤들이 가입하는 엔젤투자클럽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청년실업, 잠재성장률의 지속 하락 등으로 지난 2~3년간 벤처 활성화를 강조해왔다. 특히 새 정부 들어 창조경제의 기치하에 지난 5월 15일에는 종합적인 벤처창업 선순환 대책을 발표했다.
반 보 또는 한 보 앞선 기술력에 매출 전파력이 빠른 수익모델이면 플랫폼이 넓은 중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새 정부가 제시한 종합대책에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는데, 특히 창업 활성화를 위한 엔젤 투자 제도 지원과 벤처기업 간 시너지를 위한 M&A 활성화 방안이 특징적이다. 엔젤로 투자할 경우 소득공제 한도를 5000만 원까지 늘린 것은 세금 대신 엔젤 투자를 유도하는 것으로 엔젤 투자자를 늘릴 수 있는 획기적 조치로 향후 벤처 창업이 대단히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M&A는 그동안 매수·매도자 간의 가치평가 갭과 세금 전가로 딜 체결이 어려웠는데, 이번 기술형 M&A 세금 감면이라는 전향적 조치로 업계에선 상당한 M&A 촉진을 기대하고 있다. 또 중간 회수 시장인 코넥스 시장 개설도 투자의 조기 선순환 체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한·중 FTA를 앞둔 벤처 협력 방안
그러면 한·중 FTA를 앞두고 어떠한 한·중 벤처 시장의 협력 방안이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우선 역량 있고 믿을 만한 우리나라와 중국 벤처캐피털의 공동 펀드를 통한 합작 방안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선 어려운 수익모델도 중국의 어떤 성(省)에선 맹렬한 매출을 올리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경우 공동 펀드로 우리나라 해당 벤처에 투자한 후 중국 기업과 합작을 통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
둘째, 한국과 중국의 법과 시장 관행이 달라 사업 협력이 어려울 수 있다. 이땐 양국 정부 차원에서 양해각서(MOU)를 맺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 신뢰 구축과 민간의 사업 협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중국도 새 정부 들어 시장 개방과 벤처 창업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벤처 글로벌 창업 전략의 일환으로 양국의 벤처 창업 기업 또는 엔젤 투자자 간의 교류와 협력도 좋은 방안이다. 일부에서는 창업하자마자 글로벌로 나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국내외 시장이 표준화돼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모바일, 게임 등의 산업은 창업부터 글로벌로 갈 필요가 있다. 특히 반 보 또는 한 보 앞선 기술력에 매출 전파력이 빠른 수익모델이면 플랫폼이 넓은 중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미 게임산업은 중국의 벤처 1세대로 중국 인터넷 게임 산업의 리더인 탕쉰그룹 등과 협력이 활발하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시장규모는 중국에 비해 작지만 시장 반응이 빨라서 세계에서도 아주 좋은 테스트마켓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익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 후 레버리지가 큰 중국과의 조인트벤처, M&A 등을 통해 양국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제까지 주로 자국 시장에 집중하던 중국의 민간 벤처캐피털, 사모펀드들도 점차 해외, 특히 지리적 접근성과 문화적 공통 기반을 갖고 있는 아시아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향후 이러한 노력을 더욱 확산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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