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나른한 목소리로 “김창완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그에게서 친근한 옆집 아저씨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민한 누군가는 무대에서 보여주는 지독한 열정이, 연기에 내재된 날카로움과 서늘함이 또 다른 김창완의 색깔임을 감지하고 있었을 터. 상상했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마주앉아 상상했던 것과 다른 대화를 나누며 느낀, 일종의 예상 가능한 배신감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진짜 그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김창완이라는 이름 앞에 무슨 다른 수식어가 필요할까. 음악적으로든 연기로든 혹은 이제 수많은 청취자들에게는 습관이나 다름없는 일상이 돼버린 라디오 디제이(DJ)로든 그 충만한 존재감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 모두는 일정 부분 그에게 진 ‘빚’이 있다는 것. 산울림의 노래엔 감성을 빚졌고, 연기엔 감동을 빚졌고, 매일 아침 2시간씩 위로를 빚지고 있으니 말이다.

장르야 어찌됐던 일맥상통하는 이미지를 뒤로하고 올 여름 스릴러 영화 ‘닥터’의 주연으로 분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변신’ 혹은 ‘재발견’이라고 표현한 극한의 악역 연기는 사실 그간 보여줬던 서늘한 연기의 확장 측면에서 ‘예상 가능한 발견’이었지만, 스릴러와 김창완이라는 조합 자체가 낯설고도 신선했다. ‘닥터’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성형외과 최고의 권위자인 최인범(김창완 분)이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숨겨진 사이코패스 본능을 터뜨리며 주변에 복수하는 내용으로 ‘올가미’, ‘세이 예스’, ‘실종’ 등 한국형 스릴러로 호평을 받았던 김성홍 감독의 5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사실 복잡 미묘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뭐랄까 안 그래도 간간이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들이 보도되는 현실적 상황이 떠올라 불편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모두의 예상과 기대대로 김창완의 연기는 빛났다. 더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혹은 선량한 웃음을 띤 채 살인을 저지르는 그가 그래서 더 공포였다. 처음부터 주연으로 김창완을 염두에 두었다는 김 감독의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함께 연기한 신인 연기자들이 김창완 때문에 한 번씩은 가위에 눌려봤다는 고백을 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상영이 막 끝난 후 마주앉은 그는 스크린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것 같은 웃음을 지은 채 물었다. “나 안 무서워요?”



“내 안의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영화와 달리 대화가 훈훈하게(?) 시작된 덕분에 용기를 내 솔직하게 말했다.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고. 그런데 돌아온 그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어휴, 보지 마세요.” 그런 걸 왜 보느냐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스릴러, 좋아하시나요.
“저는 절대 안 봐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예를 들자면 ‘사운드 오브 뮤직’, ‘빠삐용’ 같은 영화들이에요. 로맨틱코미디 같은 장르도 별로 안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옛날 흑백영화들을 좋아해요.”

그런데 스릴러를 하셨으니….
“그러니 말이에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요. 그래서 정말로 하기 싫었어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집어던졌죠. ‘돈 들여 뭐 이런 영화를 만드나’, ‘뭐 하러 고생해서 촬영하나’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스스로 나의 그런 태도에 너무 놀란 겁니다. 남들이 1년 넘게 작업한 시나리오를 몇 분 안에 집어던진 이 거부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 하는 궁금함에 다시 집어 들었죠. 편견을 깨보고 싶었고, 더불어 저의 심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 셈이에요.”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으셨어요.
“잡았죠. 호랑이보다 더 큰 걸 잡았어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어린 시절 ‘대장 브리바’를 보러 가던 그때의 나,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사흘을 시름시름 앓았던 청춘의 아픔, 배우 도금봉이 나오는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면서 오줌 지리던 시절, 그런 순수했던 시절의 영화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설레고 행복했던 그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이번 작업은 바로 그 초심을 지켜내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순수해지는 느낌이 들었죠.”

이번 영화에 대한 소감은 어떠세요. 여러 측면에서 여느 때와는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이렇게까지 외부에서 제게 부담을 주는 줄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실은 그런 것도 유쾌한 경험이고 또 영화의 현실을 일부 체험하는 것이기도 해요. 그동안 늘 소비자로서만 혹은 관객으로서만 영화를 바라봤고, 또 배우의 입장이라고 해도 작품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서 ‘나는 배우인데 투자와 무슨 상관이야’ 했다면, 배우라는 게 그런 것들로부터 아주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이번 영화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설레고 행복했던 그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어요. 그 초심을 지켜내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순수해지는 느낌이 들었죠.”



주연으로서 부담감이 컸던 거군요.
“사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줄 몰랐어요. 주연의 책임이란 게 이처럼 막중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간의 모든 선배 주연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웃음)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서의 주연은 보이지 않는 데 있어요. 숨겨진 공포죠. 그 숨겨진 공포라는 건 어찌 보면 제가 가지고 있었던, 이 영화를 해도 되는가 하는 거부감도 그중 일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보통 육체적으로 위해를 가해서 공포를 표현하지만, 그런 공포만이 아니라 스스로 갇혀 있다는 것, 혹은 ‘나는 왜 이 팔자로 살아야 해?’라는 자기 인생에 대한 분노 그런 것들도 공포의 다른 모습인 거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영화 속 최인범의 손끝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늘 겪고 있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대의 불안함에 비하면 과장된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이 말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최인범의 살인은 우리 현대의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해요.”

상대 배우들이 모두 신인이라 그로 인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오히려 너무 좋았어요. 어린 친구들이지만 다들 열정적이어서 참 예쁘더라고요. 사실 일을 하다 보면 괜히 끌리는 사람이 있고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경우엔 그 어색함을 감추고 함께 연기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죠.”

피 튀기는 장면이 숱한데요, 촬영 후 후유증은 없었나요.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촬영 현장에서나 촬영 후에도 마음이 편했어요. 크리에이티브가 있으니 몸이 달뜨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오히려 김 감독이 ‘레디 액션’을 해놓고는 피 튀기는 장면에서는 눈도 못 뜨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는 정말 4차원이었어요. 산울림 앨범 재킷에 있는 제 그림을 보고 어떤 화가가 ‘아홉 살 이후 수평 성장한 사람의 그림’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김 감독은 여섯 살 이후 수평 성장한 사람이라니까요.(웃음)”

누군가는 ‘김창완의 미친 연기’라고까지 표현한 걸 봤어요. 스스로는 연기에 얼마나 만족하셨나요.
“그렇게 표현한 분은 아마도 굉장히 예민한 눈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간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는 푹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반대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는 공포 자체를 희화화하려는 ‘목적’을 가지니 정말 디테일한 것들을 고민하게 되고 영화와 캐릭터에 빠지게 되더군요. 영화를 보다 보면 아마 제가 몰래 숨겨놓은 코믹 코드를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스릴러에서 코믹 코드라니, 의도가 뭔가요.
“리얼리티를 살려서 하면 할수록 관객하고 멀어질 것만 같았어요. 살인 장면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그 상황 자체가 무섭잖아요.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고 판타지였으면 좋겠는데 영화에선 또 그게 현실이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이 상황을 희화화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감독님 몰래 중간 중간 코믹을 넣었는데 몇 개는 걸리기도 하고 몇 개는 넘어가기도 했죠.”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자유로운 영혼? 세상사 무관심한 염세주의자죠”
영화 ‘닥터’는 그렇게 김창완이란 배우의 역사를 또 한 페이지 장식했다. 역사는 현재가 아닌 훗날 평가될 터. 그러나 1977년 형제 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한 그의 지난 역사를 감히 평가해보건대 화려함 그 자체다. ‘가수 겸 배우’라는 타이틀처럼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간 연기 경력도 벌써 25년이 넘어 필모그래피만 40여 편이 넘는다. 어린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산울림의 노래들이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터. 그뿐이랴. 최근에는 동시 작가로도 등단하는 등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니 나이가 들수록 더 ‘이름값’ 단단히 하는 그다.



굉장히 많은 일을 하시죠.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건강이겠죠. 제가 체력 하나는 정말 끝내줘요. 여전히 매일 아침 자전거도 타고, 오토바이도 타요.”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여러 타이틀 중에서도 일의 순위가 있지 않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일은 순서대로 스케줄대로 할 뿐이에요. 사실 제가 이렇게까지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건 모든 일을 프로젝트가 아닌 일상으로 처리해서 그런 거예요. 밥 먹듯이 노래하고 세수하듯이 연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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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자유롭게 살 것 같다고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주 규칙적으로 살죠.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 할 정도로요.”



그럼 일상에 큰 자극이 없다는 건데요.

“저는 그런 자극을 싫어해요. 일상이 흐트러지는 걸 못 견디고 많이 벗어나지도 못하죠. 누군가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자유롭게 살 것 같다고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주 규칙적으로 살죠.”

그래도 가끔 탈출 욕구가 있을 텐데요.
“저는 그런 걸 못 느끼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주 답답해하죠.(웃음) 직업적으로 이런 성향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일만 하면 되니까. 관심사도 별로 없고 어디 가는 것도 싫어해요.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도 타기 시작하면 그게 곧 운동이고 자유이기 때문이에요. 수영장 가는 것도 싫어하는 걸요. 옷 갈아입는 게 싫어서.”

염세주의자 같아요.
“저는 진짜 염세주의자예요. 한동안은 잊고 살았는데 한창 록을 하던 시절엔 늘 그랬어요. 발랄한 노래를 하니 실제로도 그런 것 같지만 뼛속까지 허무주의잡니다.”
[CELEBRITY] 김창완, 스크린 첫 주연,또 다른 나를 만나다
화제를 돌려야 할 것 같아요. 최근에 산울림으로 돈을 못 벌었다는 발언이 이슈가 됐어요. 뜻밖이더라고요.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예요.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그걸 안다는 게 중요하죠. 많은 음악 지망생들이 있는데, 산울림이 가진 문화적 유산이나 자산,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 등을 생각했을 때 지금 아이들이 꿈꾸는 것 이상의 존재죠. 그런데 그건 돈이나 상업적 성공이 만들어낸 게 아니에요. 어떤 가치를 좇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럼 이번 영화가 흥행하면 돈 좀 버시는 건가요.
“어휴, 이 영화로 돈이 안 될 건 뻔한 일이고 다만 혹시라도 영화가 잘 돼서 단 한 편이라도 영화가 더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국내 영화든 외국 영화든 훌륭한 예술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하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이 너무 단 것, 장사가 잘 되는 영화에는 한없이 애정과 돈을 갖다 바치면서 정말 영화적으로 소중한 것들에 대해선 관심도 잠깐인 것 아닌가 싶어요. ‘닥터’는 예술영화도 아니고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요즘 같은 블록버스터가 대세인 시기에 그 순수한 의도와 시도를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학점’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인생 수업, 연기 수업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무서운 이야기2’의 이수혁 등 꽃미남들하고 경쟁하시네요.
“진짜 경쟁 상대는 같은 날 개봉하는 ‘월드워 Z’의 브래드 피트죠. 음악 무대에 가면 소녀시대랑 경쟁하고, 영화에선 브래드 피트랑 경쟁하고, 너무 힘들어요.(웃음) 그런데 이왕 붙을 거면 그렇게 세게 붙는 게 낫죠, 안 그래요?”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