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반 스테이크하우스

스테이크는 숙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명품’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0.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에서 숙성되는 스테이크에 우리는 감히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숙련된 장인이 영혼을 담아 구워낸 오리지널 미국식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곳, ‘헛간’이라는 뜻의 ‘더 반 스테이크하우스’는 알고 보니, 명품 숍이었다.
[GOURMET REPORT] 격이 다른 숙성 ‘짐승남’, 스테이크에 칼질하다
서울 청담동 ‘더 반 스테이크하우스’ 한편에 놓인 이색적인 에이징 셀러. 고백하건대, 그 속에 바싹 마르고 거뭇거뭇한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를 보고 ‘과연 먹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유리문을 나온 암석 같은 고기 덩어리가 셰프의 섬세한 칼질에 의해 곱고 선명한 마블링을 드러냈을 때,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브로일러(broiler)에서 육즙을 대방출하며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우매함을 책망했다. 묵직하면서도 차진 식감, 진하면서도 고소한 풍미…. 아, 정통 스테이크란 바로 이런 맛이구나!


공기에 수분 증발 ‘드라이 에이징’ 풍미·식감 모두 잡아
드라이 에이징(dry-aging)은 고기를 공기 중에 노출한 상태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육류 숙성 방식이다. 18세기 동유럽에서 돼지고기를 소금에 재워 바닷바람에 말린 뒤 구이를 해먹던 방식에서 유래했다. 습도, 통풍, 온도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한 상태에서 평균 21일 동안 건조 숙성시켜 고기 맛을 응축시키면서도 육질을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식이다. 숙성 기간이나 조건을 달리해 그때그때 맛을 변주할 수 있어 수백 가지 레시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더 반 스테이크하우스의 명물, 고기 숙성고 ‘에이징 셀러’.
더 반 스테이크하우스의 명물, 고기 숙성고 ‘에이징 셀러’.
미국에서는 스테이크 하우스마다 독자적인 에이징 셀러를 보유할 정도로 드라이 에이징이 프리미엄 스테이크를 만드는 완벽한 숙성 방법으로 인식되지만, 국내에서는 ‘더 반’을 비롯해 다섯 곳이 유일하다. 관리가 어렵고 고가이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더 반 스테이크하우스의 박영호 셰프는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는 2010년 전문점들이 생기며 국내에 소개됐다”며 “이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 마니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드라이 에이징으로 덩어리째 숙성한 스테이크는 거친 소의 질감과 촉촉한 육즙을 동시에 잡아 그 풍미와 식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암석 같은 외관과 달리 선명한 마블링을 자랑하는 ‘반전’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
암석 같은 외관과 달리 선명한 마블링을 자랑하는 ‘반전’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
한 요리가 주는 극명하게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이라…. 박 셰프의 비유가 기가 막히다. 일반 숙성 방식의 웨트 에이징(wet-aging) 스테이크가 상큼하고 싱싱한 포도라면,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는 농도 짙은 건포도의 느낌이라는 것.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의 묵직한 맛은 흡사 ‘야성미 넘치는 짐승남’과 같은 거친 매력을 풍기기 때문에 한번 맛보면 절대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짐승남을 길러내기 위해 여성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박 셰프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니 스테이크 맛이 훨씬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육즙을 잡는 또 하나의 비법은 브로일러다. ‘더 반’은 다른 레스토랑과 달리 넙적하고 큼지막하게 썬 고기를 브로일러에서 굽는데, 고기 전체에 열을 가해줘 스테이크가 타거나 딱딱해지지 않고 노릇노릇하며 무엇보다 촉촉함을 간직한다.


소스·채소 올리지 않고 스테이크로만 승부…썰어먹는 즐거움
박 셰프는 브로일러에서 꺼낸 커다란 스테이크를 통째로 흰 접시에 담아냈다. 여기에 소스를 끼얹거나 여타 가니시(garnish·요리에 곁들여지는 각종 채소 등 장식)를 올리지 않는데, 스테이크 자체로 묵직한 존재감을 지니기 때문이리라. 그 덕분에 손님들은 스테이크에만 미각을 집중할 수 있고, 덩어리 고기를 ‘칼질’하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고기를 썰지 않고 덩어리째로 먹는 것 역시 미국 개척시대의 정신이 반영된 문화라고 하니, 이곳에서는 맛, 분위기는 물론 정서까지 제대로 된 미국식을 즐길 수 있다.
브로일러에서 구워지고 있는 스테이크.
브로일러에서 구워지고 있는 스테이크.
주문은 1인당이 아니라 그램(g)으로 받는데, 두 명이 오면 400~600g 정도가 적당하다. 연하고 부드러운 부위를 추구하면 안심, 씹는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지방 분포가 넓은 꽃등심이나 채끝을 추천한다. 특히 포터하우스(porterhouse: 뼈를 중심으로 등심과 안심 두 부위가 있는 스테이크)는 한정된 양만 나오는 부위인 만큼 인기가 좋아 반드시 예약 주문해야 한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단짝인 와인이 빠질 수 없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남성미 넘치는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에는 묵직한 보디감을 자랑하는 레드 와인 ‘피노 누아’나 ‘카베르네 소비뇽’이 잘 어울린다. 여름에는 차가운 샴페인을 곁들여도 좋다.

단, 마초 스테이크와 나쁜 여자처럼 톡 쏘는 와인이 입 속에서 벌이는 ‘밀당’을 감당하는 건 먹는 사람의 몫이다.


Information
위치 서울 강남구 청담동 83-12 1층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0시
가격대 꽃등심, 티본, 포터하우스, 찹 스테이크 g당 2만 원 후반부터,
사이드 1만2000원부터
문의 02-547-6633, www.thebarnsteak.com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