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 폭락의 의미

삼성전자 주가가 견고한 펀더멘털(기초 체력)에도 4일 동안 약 10% 급락했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을 두고 전문가들은 실적에
대한 불안보다 한국에 비우호적인 자금 시장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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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 금요일이던 지난 7일 국내 주식 시장에 큰 혼란이 찾아왔다.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에만 6.18% 폭락한 것이다. 당일 시장에는 별다른 악재가 없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했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5% 넘게 떨어진 횟수는 총 23번이다. 대부분은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불거지거나 실적 ‘쇼크’가 나타나는 등 주가 하락의 이유가 확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장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주가가 폭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증시는 미국, 일본 등 올 들어 상승 랠리를 이어온 선진 증시와 커플링(동조화) 기대로 오히려 강세를 점치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발견된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일부 나오긴 했지만 긍정적 분위기가 훨씬 우세했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는 제품 가격 상승으로 올해 최대 실적이 나올 것이란 분석까지 나왔다. 국내 대다수 증권사는 주가가 상승할 여력이 20~50% 정도 있다고 보고 200만 원 안팎으로 목표 주가를 제시 중이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나흘 동안 약 10%나 급락했다.


나흘 동안 삼성전자 1조5000억 매도
직접적인 주가 폭락의 이유는 외국인의 투매성 매물이었다. 6%대의 하락률을 보인 지난 7일 외국인이 순매도한 삼성전자 주식은 45만5719주로 8년 8개월 만에 최대치였다. 금액으로는 6600억 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다음 거래일인 10일 2300억 원, 11일 3200억 원, 12일 2500억 원 등 나흘 동안 외국인이 매도한 물량은 모두 1조5000억 원에 육박했다. 외국인이 내던진 삼성전자 주식을 기관과 개인이 받아냈지만 주가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국인 매도는 JP모건의 부정적 보고서가 나온 뒤 본격화됐다. JP모건은 갤럭시S4의 판매가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종전 210만 원에서 190만 원으로 내렸다. 이 보고서 하나가 외국인의 투매성 매물을 모두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그동안 긍정 일색이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부문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계열사 삼성증권조차 갤럭시S4의 올해 판매량 전망치를 종전 8800만 대에서 7300만 대로 17% 낮췄다.

하지만 갤럭시S4의 판매량 전망치 조정만으로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비록 갤럭시S4가 기대했던 것만큼 안 팔릴 가능성이 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각의 차이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JP모건이 당초 기대를 너무 높게 잡았다. 갤럭시S4는 별 문제 없다”고 강변했다. 시장에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가 눈높이를 좀 낮춘 걸 갖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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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도 목표 주가를 낮추긴 했지만 투자 의견은 여전히 ‘매수’다. 낮아진 목표 주가 190만 원은 6월 12일 삼성전자의 주가(138만5000 원) 대비 37% 상승 여력이 있다. 현재 주가가 비싸니까 팔아야 한다는 식의 매도 의견은 아니었던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 또한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다. 주가 폭락 사태 이후 목표 주가나 투자 의견을 낮춘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2분기 실적에 대한 믿음,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굳건한 지위, 반도체 부문의 실적 개선 등 큰 틀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우려는 비단 최근 얘기도 아니다. 작년 애플 주가가 고점을 찍고 내려갈 때부터 이미 제기됐던 내용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전망이 불투명할 때는 숫자를 봐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펀더멘털이 훼손됐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금, 한국 등 신흥시장서 빠지나
삼성전자 주가 하락의 원인을 단순히 회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우호적이지 않은 최근 자금 시장 동향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지난 5월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미국의 양적완화(QE)가 종료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미국 경제가 휘청일 때 긴급하게 돈을 풀어 살려놨는데 경제가 이제 제 궤도에 들어섰으니 풀린 돈을 걷어 들일 차례란 얘기가 돌았다. 유동성의 힘으로 주식, 채권 등 자산 가격이 잔뜩 오른 상황에서 미국이 돈줄을 조이면 금융시장은 충격을 받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경제지표가 안 좋게 나오면 시장이 환호하고 좋게 나오면 오히려 실망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제지표가 안 좋아야 양적완화가 지속될 수 있으니 계속 안 좋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글로벌 채권 시장이 먼저 반응해 금리가 올랐고(채권 가격은 하락), 이게 주식시장까지 번져 미국, 일본 등 올해 상승 랠리를 이어갔던 증시도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도 빠져 나가는 조짐이다. 한국 관련 글로벌 펀드 중 가장 덩치가 큰 ‘아이셰어(iShrares) 신흥시장 펀드(EEM)’는 주간 단위로 5월 마지막 주 7억9800만 달러(약 8800억 원)가 유출됐다. 그다음 주인 6월 첫째 주에는 21억8600만 달러(약 2조4000억 원)가 추가로 빠져 나갔다. 이 펀드의 운용 자산은 약 400억 달러로 한국 투자 비중은 14.8%다.

벤치마크 지수 변경으로 올 상반기 내내 10조 원에 육박하는 한국 주식을 파는 중인 뱅가드에 이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까지 매물을 쏟아놓을 여지가 생긴 것이다. 블랙록은 이미 채권 시장에서 신흥국 관련 물량을 줄이는 중이라 주식 매물도 대거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 이후 공모펀드가 특정 종목에 자산의 10% 이상 배분할 수 없게 한 ‘10% 룰’도 도마에 올랐다. 외국인이 대규모 투매를 할 때 기관, 특히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10% 룰’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KOSPI] 실적보다 비우호적인 자금 시장 탓… ‘10% 룰’ 다시 도마에
주가 폭락 사태 이후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나 투자 의견을 낮춘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2분기 실적에 대한 믿음,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굳건한 지위, 반도체 부문의 실적 개선 등 큰 틀에서 변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공모펀드는 아무리 좋은 종목이 있어도 10%까지만 살 수 있다. 시장 내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10%를 넘는 종목은 예외적으로 시가총액 비중만큼 살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예외적인 경우인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안팎이므로, 약 20%까지 사는 게 가능하다. 100억 원짜리 공모펀드라면 약 20억 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내 주요 운용사들의 간판 펀드는 이 비중을 거의 다 채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주가가 폭락해도 추가로 살 여지가 거의 없다. 비중을 조금 남겨둔 펀드 정도만 추가로 샀을 뿐이다. 기관이 ‘방어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 규정 때문이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0% 룰은 한 종목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방지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하자고 만든 것인데, 규정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