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손미나
손미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한 마디 건넸을 뿐이었다. 그는 팟캐스트 진행, 강연, 여행 서적 쓰기, 운동, 어학부터 최근에는 국내 최초 여행 콘서트 준비까지 전국 방방곡곡 아니 세계를 무대 삼아 10여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활동들의 밑바탕에는 여행이 있다. 여행작가로 전향한 지 8년, 올 초에 스스로 제정했다는 그의 ‘두 번째 스무 살’은 놀랍도록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팟캐스트·출간·강의…살인적 일정에도 ‘행복’
속사포 랩을 하듯 근황을 털어놓는 손미나의 만면에 ‘행복’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하루를 보내지만 힘들다기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요즘이다. 모두 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타이틀을 포기했지만 결국 그의 열정은 강의, 여행, 방송 모두를 가져다 주었다.
오히려 아나운서 시절보다 더 바쁜 듯한데요.
“맞아요. 멀티 플레이어로 뛰고 있죠. 예상치 못하게 팟캐스트 ‘손미나의 여행사전’이 너무 큰 인기를 얻고 있어 얼떨떨해요. 유럽 여행기 녹음한 걸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소박하게 시작했는데 일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구성작가도 따로 있고 매거진도 만들죠. 패널도 직접 섭외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요. 프랑스 여행기를 쓴 책도 초고가 완성돼 7월 초에는 나올 것 같고요. 하루에 1~2군데꼴로 전국적으로 강의도 다니죠. 최고경영자(CEO), 청년, 대학생, 주부 등 대상도 다양해요. 내용도 삶을 디자인하는 법, 여행 관련 조언, 라틴 문학 강좌, 외국어 잘하는 법 등이고요. 스케줄 양으로 봐서는 아이돌이고 구성으로 봐선 전국노래자랑이 아닌가요.(웃음) 그 외에 이렇게 틈틈이 인터뷰도 해요. 체력을 유지하려면 운동은 필수예요. 얼마 전에 헬스클럽에서 킥복싱을 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꼭 한번 제대로 도전해보려고요.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아 몸도 마음도 젊어지려 애쓰는 중입니다.”
‘두 번째 스무 살’이라니 무슨 의미인가요.
“올해로 마흔두 살이 됐어요. 사실 외국을 자주 다니다 보니 나이에 둔감해지는데 한국에서는 체감하게 되죠. 신체적 나이와는 별개로 저의 정신적 나이를 스무 살 시절로 되돌리고 싶었어요. 스스로 세뇌하는 중이죠. ‘마음은 스무 살이다’라고. 하하.”
바쁠 것 같은데 무척 즐거워 보여요. 남다른 도전 DNA가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셨죠. 넌 유치원 때부터 바빴다고.(웃음) ‘열심 DNA’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어요. 두 분은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고 꾸지람하지 않는 대신 자유와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지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이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요. ‘욕심 많을 것 같다’고도 하지만 정작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내진 않아요.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억지로 참아내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더라고요.”
여행을 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나 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11년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쓰면서 주변의 많은 것을 관찰하게 됐어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작은 사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쏟았죠. 사람을 만나더라도 상대에게 집중하는 습관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시선을 두다 보니 나를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체로 소중하고 감사할 일이죠. 고통과 시련 모두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알게 됐고요. 그러니 살아 있는 게 축복이더군요. 누구에게나 유한한 인생인데 어찌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있겠어요.” 6월엔 콘서트마스터로 변신, 별난 유럽 여행 선보여
‘도전의 아이콘’인 그는 또 한 번 최초 타이틀을 단다. 6월 13일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첫 여행 콘서트 ‘로맨스 인 유럽’을 열고 콘서트마스터 ‘낭만가’ 손미나로 관객과 만나는 것. 여행 수첩과 카메라 속에 꼼꼼히 기록한 유럽을 무대 위로 불러내 영화, 클래식 음악, 춤과 버무린다. 그는 “객석에 앉아만 있어도 프랑스 파리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기분을 느끼도록 해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최초로 ‘여행 콘서트’를 열잖아요.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나요.
“유럽 여행에 음악의 옷을 입혀 색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던 차에 예술의 전당 측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늘 꿈꾸던 것을 직접 실현하려니 정말 좋았죠. 준비가 돼있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 꾸려보고 싶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어요.”
사실 좀 생소한데 어떤 걸 보여줄 건가요.
“예술의 전당 하면 어렵고 딱딱한 공간이잖아요. 저는 좀 더 편하고 재밌게 퓨전의 느낌이 나는 콘서트를 만들려고요. 여행 가서 찍은 개인적인 사진들을 많이 보여주고요, 여행기를 영화와도 접목시킬 거예요. 영화 ‘레미제라블’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원작가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고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엮어보려고요. 기타 연주, 현악 중주, 플라멩코(스페인 전통 춤)까지. 기대하셔도 좋아요.”
말만 들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네요. 손미나 씨의 춤은 볼 수 없습니까.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안 돼요. 하지만 춤에 관심이 많아요. 플라멩코를 직접 배워봤는데 정말 많은 체력을 요하더군요. ‘세계의 춤’에 관한 여행기도 쓸 예정이에요. 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도구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내년에 또 콘서트를 하면 그땐 정말 제가 춤을 추려고요.”
‘낭만가’라는 타이틀이 정말 잘 어울려요. 직접 붙였나요.
“저도 참 마음에 들어요. 직접 붙인 건 아니고요. 낭만이라는 단어는 아주 특별해요. 저는 낭만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가 프랑스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파리가 늘 햇살 찬란하고 경쾌하다면 낭만적이지 않을 거예요. 때로는 우수에 차 있고 시크하면서도 심오한 철학과 문학이 있죠. 미완의 아름다움. 그래서 인생과도 닮았죠.”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추진력이 지금의 나 만들어
잘나가던 아나운서가 전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여행가가 되고,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손미나는 국민적 동경의 대상이 됐다. 여대생들이 뽑은 ‘닮고 싶은 여성’ 1위에 선정되는가 하면, 직장인들은 이상적인 삶을 사는 그에게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낸다.
최근엔 프랑스에 머물렀잖아요.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금까지의 여행은 적을 두고 돌아다니는 형태였어요. 어딘가를 집처럼 느끼면서 여행을 하죠. 주 근거지는 파리였고, 여행할 때는 호텔보다 민박(B&B)이나 아예 집을 빌려서 다녔죠.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은 자기 집을 여행객에게 개방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격도 저렴하고. 때로는 그 집주인과 친구가 되죠. 멋지지 않나요. 또 여행지를 선정해 놓지 않고 발이 닿는 대로 떠나는 편이에요. 이번엔 또 어떤 보물 같은 장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설레죠.”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보헤미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음먹은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요.
“생각을 바꾸면 돼요. 저도 아나운서 시절에는 코피가 날 정도로 일을 해놓고도 눈치를 보면서 휴가를 갔어요. 하지만 자신의 삶에 원칙을 세우고 욕심을 버리면 가능해요. 사람들이 바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놓칠까 봐서죠. 특히 돈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손미나같이 여행하고 싶다’에서 그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과감히 포기하세요. 그리고 추진하세요.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방송 둘 다 할 수 있게 됐지요.”
어떤 것을 포기했나요.
“당시 주말 9시 뉴스 앵커에서 하차하고 유학을 떠난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었어요. 주변에서도 모두 말렸죠.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미쳤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좀 더 머물렀으면 평일 9시 뉴스 앵커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내 인생에서 메인 앵커 자리는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었어요. 욕심은 났지만 과감히 접었죠. 일본 작가 무리카미 하루키가 ‘마흔 살 전에 모든 걸 버리고 떠나라’고 했잖아요. 저는 행복을 찾아서 떠났어요.”
연애나 결혼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듯 사랑도 마찬가지죠. 주변에서 결혼 적령기로 고민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해줍니다. 프랑스에서는 나이 많은 여자를 오히려 멋있다고 말해요. 이혼한 여성도 섹시하다고 생각하죠. 중요한 건 결혼이란 제도보다는 사랑 그 자체죠.”
앞으로, 아니 당장 1년 후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하고 또 변해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두 번째 스무 살’을 알차게 보낼 겁니다. 인위적으로 육체적인 노화를 막고 싶진 않고요. 다만 나의 영혼과 가슴은 계속 젊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인류학 공부도 해보려고요. 지금은 아니고 할머니 때 인류학 박사 학위를 따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 중이에요.” 이윤경 기자 ramji@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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