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김동엽, 인생 선후배의 토킹 어바웃

[Interview]
이근후+김동엽, 인생 선후배의 토킹 어바웃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한 선행학습법


40대와 60대가 바라보는 ‘나이 듦’이란 각각 자신이 처한 입장 차에 따라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차이를 막론하고 거부할 수 없는 것 하나는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준비에서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자타공인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 전문가 2인이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근후, 김동엽-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한 선행학습법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요즘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인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다. 70대 후반인 그는 제목 그대로 평생을 통해 즐거운 삶을 추구했다.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 넘기고 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면서도 늘 유쾌함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정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삶을 사는 이 교수는 그 자체로 ‘스마트 에이징’의 교본이다. 그런가 하면 40대의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경험에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인 셈이다. 오랫동안 은퇴 설계 전문가의 타이틀을 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해온 그는 최근 저서 ‘스마트 에이징’을 내고 즐겁고 똑똑하게 나이 드는 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모였으니 대화의 깊이는 짐작하고도 남을 터. 같은 지향점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유익함을 넘어 깨달음마저 주었다.



스마트 에이징을 바라보는 세대별 관점 차

◆머니 두 분의 저서를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점에서 ‘스마트 에이징’을 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근후 나는 크게 정신적인 부분과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봤어요. 정신과 의사로 오랫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나이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도 갈등도 다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그 말은 결국 특정 나이에서 습득된 방법을 통해 일생을 고수한다는 건 너무 힘들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엄청나게 빠른 변화의 시대예요. 따라서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더라도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죠. 물론 인간이란 살아남으려고 하는 본능은 있는데 기술이 없지요. 그 기술은 나면서부터 터득하는 건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가족관계에서 자꾸만 노인이 소외되는 문제예요. 왜 그럴까 고민해보니 노인에게 거추장스러운 방해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죠. 여기서도 적응과 변화가 필요해요. 지금은 정보사회고 정보사회의 주권은 젊은 세대니, 노인들도 정보사회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겁니다.

◆김동엽 저는 금융기관에서 16년 이상 일했는데 특히 은퇴 관련 일을 하며 과거와 지금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했어요. 베이비붐 세대만 해도, 나이 들어가면서 다급함은 있는데 준비는 안 돼 있고 그래서 좌절하는 이들이 많죠. 그래서 변화한 부분을 짚어보고 싶었어요. 먼저 돈 문제에 대해선 예전엔 무조건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진 돈을 어떻게 잘 찾아 쓰느냐에 관심이 더 많아요. 그다음으로는 관계의 문제예요. 줄곧 돈 문제만 고민을 해왔는데 은퇴 후 막상 어려움이 발생하는 건 ‘관계’ 부분더라고요. 직업을 상실한다는 게 단순히 돈벌이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상황까지 초래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일차적 관계인 가족이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사실 이상적 가족관계가 흐트러져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죠. 이처럼 상황이 변했으니 이 지점에서 인생 디자인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이근후, 김동엽-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한 선행학습법
◆머니 한때는 웰 에이징(well aging)이란 말이 트렌드였습니다. 웰 에이징과 스마트 에이징의 차이가 뭘까요.

◆이근후 글쎄요, 학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지 깊게 고민해보진 않았는데 다만 최근 가족아카데미 차원에서 여성가족부에 스마트 에이징에 관한 사회교육을 신청하면서 ‘스마트(smart)’에 대해 나름 정의를 해봤어요. 먼저 ‘S’는 심플(Simple)이에요. 젊을 때는 상상력도 많고 창의력도 많은데 나이 들수록 단순해야 해요.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너무 복잡해서 병이 나요. 그걸 단순화하면 병이 회복되는 거고요.‘M’은 무브(Move)예요. 나이 들수록 힘이 떨어지지만 그럴수록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죠. 물론 걷기만으로도 충분하고요. ‘A’는 감성적 즉 아티스틱(Artistic)입니다. 여기서의 감성은 사람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그런 감성을 말해요. 세상 풍파 다 겪은 어른의 감성은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뛰어넘는 세련된 감성이라고 할 수 있죠. ‘R’은 릴랙스(Relax)로 일생 동안 앞만 보고 걸어왔으니 이제 긴장을 풀라는 뜻이고, 마지막으로 ‘T’는 함께 하는 삶, 투게더(Together)죠.

◆김동엽 웰 에이징보다 안티 에이징(anti-aging)이 먼저였죠. 그렇지만 나이 듦이 저항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스마트 에이징’은 늘어난 인생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개념 같아요. 가끔 강연에 가서 40~50대들에게 “인생에서 이륙과 착륙 중 어떤 걸 준비 중이냐”고 물으면 보통 착륙, 즉 마무리를 준비한다고 말해요. 직장의 마무리가 인생의 마무리처럼 인식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 이후로도 삶이 얼마나 깁니까. 착륙이 아니라 새로운 이륙을 준비할 때인 거죠. 저희 할머니가 97세까지 사셨는데 60대 이후론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셨어요. 제가 어떤 게 제일 힘드냐고 물으면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뭐라도 배워둘 걸 그랬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전엔 ‘여생’의 개념이었지만 이젠 자투리 삶이라고 하기엔 인생이 너무 길어졌어요. 따라서 노후도 생애 주기에 편입시켜서 똑똑하게 관리해야 하는 겁니다.



현명한 머니 플랜에 대한 조언

◆머니 이번엔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스마트 에이징을 짚어볼까요.

◆김동엽 물론 돈 문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측면이지만 돈 때문에 다른 걸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중요한 건 돈에 대한 정확한 관념이에요. 전에는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60대부터 한 푼도 벌지 않을 경우 1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돈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 인구 중 3억 원 이상 가진 사람이 전체 가구의 30%도 되질 않는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대부분 ‘10억’ 이야기 나오는 순간 좌절해버리죠. 이 부분에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캐시 플로(cash flow)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건 내 것이지만 관심 없었던 자산, 즉 인비저블 에셋(invisible asset)을 잘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대표적인 게 국민연금이죠. 잘만 관리하면 필요한 노후 자금의 일부를 얻을 수 있는데 불신만 갖고 인생 계획에 집어넣지 않는 거예요. 또 하나가 퇴직연금이죠. 그리고 집에 대한 개념도 바꿔야 해요. 90대 이상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이미 60대가 된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주택연금을 통해 자신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경제적 부분에서의 스마트 에이징도 결국 디자이닝이 중요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출발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겁니다.

◆이근후 사실 저는 돈 문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네요. 경제 감각이 없다 보니 책에서도 전혀 그 부분을 언급하지 못했어요. 친구들 중에 경제 감각이 있는 애들은 대학 때도 부모님이 보내온 등록금으로 땅을 사기도 했는데, 저는 전문의로 군대에 가서 받은 월급이 첫 수입이었을 정도니 말 다했지요. 그런 면에선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의 경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달아요. 후회를 하는 건 아니지만 재테크 감각이 있었더라면 엄청 부자가 됐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저에게 경제적 재능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통해 경제 마인드로 활동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제가 굉장히 여러 일을 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느냐고 물어요. 그럼 제가 대답하죠. 열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한 가지 일이 나무 기둥이라고 하면 거기서 열 개의 가지가 나온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이에요. 돈이 아니었을 뿐, 한 가지 일에서 열 가지 일이 뻗어 나온 게 저에겐 재테크였던 셈이죠.

◆김동엽 교수님이야말로 제대로 투자하셨네요. 요즘 경제 쪽에서도 자산의 여러 종류를 이야기하는데 실물 자산과 인적 자산이 대표적이죠. 교수님은 인적 자산의 가치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주가가 높고 경제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인적 자산의 가치가 폄하되는데 지금처럼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재테크는 의미 없어지고, 오히려 매달 캐시 플로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인적 자산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니까요.
이회여대 명예교수인 이근후 교수는 50여 년을 정신과 전문의로 지냈으며, 현재 아내 이동원 교수와 함께 가족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이회여대 명예교수인 이근후 교수는 50여 년을 정신과 전문의로 지냈으며, 현재 아내 이동원 교수와 함께 가족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목표보다 과정을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머니 이제 경제 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이 들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동엽 나중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삶을 즐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목표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고 살다 보니 자기중심의 삶이 없어져 버려서 막상 노후엔 돈이 있어도 누구랑 함께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경우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게 아내가 좀 아팠어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나중에 잘살려고 했던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생각하게 됐죠. 저축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일도 가족도, 그리고 자산도 균형을 갖고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60대 이후를 즐기기 위해 죽으라고 고생했는데 막상 70세까지만 살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근후 사람들이 100세 시대라고 하니 모두 100세까지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경제 감각이 없다고 이미 말했죠. 저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결혼식에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아 신혼여행을 산에 가서 텐트 치고 지냈어요. 그리고 그때 아내에게 약속한 게 나중에 세계일주 시켜주겠노라 했지요. 그 후 당시 재산형성(재형)저축 상품에 우연히 가입하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10년 만에 돈을 찾았는데 제법 되더라고요. 그 돈으로 우리 부부는 40일 동안 세계 여행을 했어요. 당시로는 엄청난 돈이었고 그렇게 쓰기 아까울 수도 있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참 잘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 경험들이 풍부한 자산이 돼 훗날 강연이나 글쓰기의 재료도 됐으니 꼭 돈을 썼다고만 할 수도 없는 문제고요.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은퇴교육 센터장은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은퇴 설계 전문가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은퇴교육 센터장은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은퇴 설계 전문가다.
◆머니 자기계발이나 여가 활동도 중요한 부분 아닐까요.

◆이근후 물론이죠.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그게 ‘텐션’ 즉 긴장이라면 그다음엔 릴랙스할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해요. 세련되게 긴장을 푸는 방법, 그걸 취미라고 할 수도 있겠죠.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도 욕심을 가지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해선 안돼요. 남들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하찮은 일이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즐거우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나는 골프를 전혀 치지 못하는데 그로 인한 열등감은 전혀 없어요.

◆김동엽 저도 골프는 못 치는데 똑같네요. (웃음)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와 야구를 좋아하는데, 힘들거나 지칠 때 보고만 있어도 텐션이 사라진 상태가 되죠. 요즘은 또 하나 개발한 게 주말마다 가족들과 짧은 산행을 즐겨요.

◆머니 끝으로 ‘스마트 에이징’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요.

◆이근후 나이 듦이란 마음의 문제기도 하고 몸의 문제기도 하고 돈의 문제기도 해요. 하나로만 보기 어렵죠. 다만 저는 직업적 바탕 때문에 정신적 부분을 더 강조했을 뿐이에요. 스마트 에이징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저는 나이 듦에 대한 이상향이란 게 따로 없이 ‘그냥’ 살았어요.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남들이 ‘스마트 에이징’이라고 하는 지금의 삶의 모습이 된 거죠. 그런데 남들은 그 쌓인 과정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 여러분의 나이가 어떻든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쌓아올려 보세요. 멋진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김동엽 제 나이가 40대인데, 제 세대에서 보면 스마트 에이징이란 균형인 것 같아요. 돈과 가정, 그리고 일의 균형 말입니다. 거기다 몸의 건강을 갖추고 있어야 하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건 현상과 이상의 차이 때문이에요. 그 중간이 다 생략되면서 균형을 잃고 힘들어하죠. 지금 나의 현재 상황에서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그래서 편안해지면 그때 기초 설계를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