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PENSION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정년 연장은 곧 은퇴 기간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과연 정년 연장에 세대 갈등이 아닌 세대 화합의 여지는 없는 것일까.
정년 연장은 세대 화합의 연결고리다
2013년 4월 30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기록될 만한 날이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 이른바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정년연장법의 핵심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현재의 권고 조항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2017년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정년 60세가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 속도에 현기증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지러움에 떨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령화 속도를 늦추거나 그 속도를 감내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고령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수명을 단축하거나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 수명 단축은 바람직하지 않고, 출산율 제고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하다. 체력을 단련해야 하는 이유다. 정년 연장은 바로 급속한 고령화 속도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 단련의 방법 중 하나다.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정년 연장은 곧 은퇴 기간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에 대한 갑론을박

더욱이 고령화 속도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우리나라임을 감안하면, 정년 연장은 고령화 파고를 넘는 가장 기본적인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자리가 노·장년층 노후 생활의 최대 고민이라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작년 말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50세 이상 장년과 65세 이상 노인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일자리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39점으로 가장 낮게 나왔다.

하지만 법 통과 이후에도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준비도가 제고될 것이라 반기는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년 일자리를 줄여 세대 간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양쪽 주장은 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평행선만 달리다간 자칫 세대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질까 걱정이다. 과연 정년 연장에 세대 갈등이 아닌 세대 화합의 여지는 없는 것일까?

고민하던 중 문득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김훈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무의 줄기에서, 늙은 세대의 나이테는 중심 쪽으로 자리 잡고, 젊은 세대의 나이테는 껍질 쪽으로 들어서는데, 중심부의 늙은 목질은 말라서 무기물화됐고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무위(無爲)의 세월을 수천 년씩 이어가는데, 그 굳어버린 무위의 단단함으로 나무라는 생명체를 땅 위에 곧게 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중략)… 줄기의 외곽을 이루는 젊은 목질부는 생산과 노동과 대사를 거듭하면서 늙어져서 안쪽으로 밀려나고, 다시 그 외곽은 젊음으로 교체되므로, 나무는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삶에서는 젊음과 늙음, 죽음과 신생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나무는 늙은 세대의 나이테와 젊은 세대의 나이테가 한데 어울려 나무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모는 늙은 세대의 나이테에, 자녀는 젊은 세대의 나이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차이도 존재한다. 부모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생산 활동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푸른 잎에 수분을 공급하는 생산 활동을 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부모는 가족의 버팀목이며, 자녀는 가족의 미래다.

가족의 버팀목이 부실하면 가족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의 버팀목 중 가장 확실한 것은 가장의 든든한 일자리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는 순간 대부분의 가족은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위기를 겪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50대 중반에도 성인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에서 통계청의 ‘2011 가계동향조사’의 원시자료(raw data)를 분석해본 결과, 50대의 59.5%와 60대의 26.4%가 성인 미혼 자녀와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교육비를 제외하고 성인 자녀 한 명을 부양하는 데 수도광열비 등 가족 공동 비용에서 자녀 한 명이 차지하는 몫(64만 원)과 식료품비(24만6000원), 보건의료비(1만5000원) 등 월 90만1000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부모가 부담해야 할 자녀 결혼 비용(아들 7546만 원·딸 5227만 원)까지 감안하면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50대 이상 가장의 부담은 매우 크다.



중·장년층의 문제, 오래 일하는 것이 답

이런 상황에서 가장이 주된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많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통계청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50대인 가구의 평균 보유 자산은 약 4억2000만 원, 부채는 80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3억4000만 원이다. 전월세 보증금을 제외하고 당장 쓸 수 있는 금융 자산은 80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아들 하나 장가보내면 그만이다. 자녀가 독립하기 전까지의 생활비 지원과 부부의 생활비는 실물 자산 중 거주 주택과 자동차를 제외한 1억6000만 원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50대의 살림살이는 매우 팍팍한 게 현실이다. 만일 55세 이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면, 그 가족의 살림살이는 팍팍함을 넘어 암울함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창업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50대 이상 은퇴자 중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한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1년 이내에 휴·폐업할 확률은 18.5%이며, 3년 이내에 폐업할 가능성은 46.9%에 달한다. 55세 이전에 은퇴를 하면 곧바로 사면초가에 빠지는 게 우리네 현실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미래는 더 오래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들만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50대 가장의 실직은 한창 공부할 나이의 자녀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부정적 측면을 해소하는 데 정년 연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정년 연장을 베이비붐 세대와 청년층의 사회집단 간 일자리 다툼으로 몰아가는 것은 갈등만 양산할 뿐 결코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없다. 집단 간 대결의식을 잠시 내려놓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족구성원 관점에서 정년 연장을 바라보자. 그러면 해답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바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화합의 길이다.

정년 연장이 세대 화합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서는 노사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기업에는 정년 연장을 인건비 부담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저출산·고령화 시대 기업의 중요한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할 것을, 노조에는 정년 연장에 청년층의 애로를 보담아 낼 수 있는 지혜의 발휘를, 정부와 정치권엔 노사의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조정하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일러스트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