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OBLIGE
다문화가정 아이들과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와 입양아였던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를 둘러싼 환경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도 그런 이유. 주변 사람들의 사랑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음악을 통해 치유 받고 힘을 얻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제 음악은 사랑을 나누고 돌려주는 매개체가 됐다. 지난해 12월 말, 경기도 안산의 한 공연장에서는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태국어가 뒤섞인 채 ‘반짝 반짝 작은 별’,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섬 집 아기’ 등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다문화가정 아이들 24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엄마 나라의 언어로 부르는 노래는 객석을 메운 관객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겼다.그 순간은 무대 위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자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10개월을 함께 했던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도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그간 함께했던 시간들을 정리하는 마지막 무대라는 점에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클래식계의 아이돌, 천재 비올리스트로 불리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24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 건 MBC의 기획 프로젝트인 ‘안녕?! 오케스트라’를 통해서였다.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선뜻 받아들였다.
음악을 통해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면 이유는 충분했다. 이전에도 이미 음악을 통한 나눔은 이뤄지고 있었던 터였다. 몇 해 전 통폐합 위기에 몰린 충남의 한 작은 초등학교에 임시 음악선생님으로 부임해 연주와 합창을 가르친 뒤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일일 강사를 자청하기도 했던 그였다.
그가 특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배경에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에 입양된 정신지체를 가진 어머니와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준 미국인 조부모님은 늘 존경스런 대상이지만, 미국 땅에서 유색 인종으로서 받아야 했던 차별과 악기 하나 제대로 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던 가정환경 등 어린 시절의 그는 아픔이 많았다. 자신이 그랬듯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음악으로 치유되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용재 오닐의 사랑법이다. 지난해 말 아이들과 함께 했던 공연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지난해 6월에 했던 공연은 아이들이 제가 지휘자로 데뷔하는 무대에 함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무척 특별했어요. 연말에 열린 공연은 10개월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날이었던 터라 연주를 잘하든 못하든 그 자리까지 함께 온 아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죠.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 아이들이 제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음악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빛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안녕?! 오케스트라’ 아이들이 꾸준히 보살핌을 받고 좋은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방송을 통해 본 ‘안녕?! 오케스트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 제의를 받고 망설임은 없었나요.
“다문화가정 아이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전달받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 그다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바로 아이들 선발 과정부터 참여할 수 있었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숱하게 오가는 일이 힘들진 않았나요. 물리적으로 힘들 수도 있었던 프로젝트였을 텐데요.
“그 정도는 당연히 투자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없을 때 아이들을 지도해준 선생님과 멘토 교사들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히어로라고 할 수 있어요(아이들의 멘토로는 팝페라 가수 카이와 바다가 나섰고, 김정선 음악감독과 12명의 멘토가 ‘안녕?! 오케스트라’의 여정을 함께 했다).”
아이들과 소통도 힘들었겠죠.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도 그랬을 테고요. 용재 오닐 식 소통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음악의 힘이죠. 아이들은 여전히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저도 영어를 쓰고 있지만 이렇게 서로 통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도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작진 얘기로도 아이들이 제가 오면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더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 지난 1년간 음악은 언어를 초월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들의 기억을 말씀해주세요.
“서로 변하는 모습을 발견해 갈 때입니다. 한 아이는 한동안 절대 후드를 벗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그런 것 없이도 무대에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제 삶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은 용재 오닐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무척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계속 달려왔지만 아이들을 만나서 제가 가진 것을 공유하는 즐거움에 대해 진심으로 깨달았어요. 저 또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음악을 계속하고,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은 계속 성장해 갈 테고, 훗날 아이들 또한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다문화가정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됐나요. 오케스트라를 계속 유지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방송은 끝났지만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 3월 31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제 리사이틀에서 함께 연주하자고 초대했었죠.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로 아이들과 함께 ‘섬 집 아기’를 연주했는데, 공연 후에 감동 받았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울었다는 관객 이야기도 들었고요. 가능한 많은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6년째 교수로도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또 어떤 의미입니까.
“그 또한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럼 학생들도 훗날 자신의 제자에게 그것을 돌려주게 되겠죠. 특히 클래식은 역사가 오래된 음악입니다. 음악에는 이렇게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아직까지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긴 하지만, 클래식의 대중화에 굉장한 공헌을 하셨어요. 개인으로서도 또 ‘앙상블 디토’의 멤버로서도 그렇죠. 얼마나 이뤘고 또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디토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전에 하지 않았던 방식을 많이 시도했어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클래식, 특히 실내악으로 매년 매진을 시키는 공연은 지금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데려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렵게 발걸음을 한 관객들 앞에서 어설프게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보나 마케팅은 화려해도 우리는 음악 자체에 아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어요. 우리는 무엇이든지 시도를 했어요. 성공적이기도 했고, 한편 그렇지 못했던 부분 또한 시도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죠. 앞으로도 많은 시도가 필요할 겁니다.
실제로 디토는 프로그램상으로도 매년 모험을 하고 있어요. 심지어 작년에는 현대음악을 했는데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죠. 올해는 바흐를 테마로 준비 중입니다. ‘디퍼런트 디토(Different DITTO)’, ‘앙상블 디토 시즌7 리사이틀’ 등 6월에 열리는 디토 페스티벌 프로그램 역시 기대가 크고 그만큼 기다려집니다.”
사람들이 용재 오닐에게 열광하는 건, 음악은 물론이고 용재 오닐이 갖고 있는 따뜻함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감사해요. 저는 다만 공유하는 삶이 좋을 뿐입니다.”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아요. 다문화가정 어린이 오케스트라도 그중 하나였는데, 궁극적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까지 너무 달려온 것 같아 앞으로는 활동을 조금 줄이고, 주변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적으로 모험은 절대 줄지 않을 거예요.”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리스트. 1978년 미국 출생.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으며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학사를, 줄리아드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실내악으로는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정식 단원이며, 한국에서는 디토 페스티벌 음악감독이자 앙상블 디토 리더로 활동 중이다. 2007년부터 미국 UCLA의 최연소 음악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저도 영어를 쓰고 있지만 이렇게 서로 통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도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난 1년간 음악은 언어를 초월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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