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Auction

백문이 불여일견. 미술 경매 시장의 분위기를 간파하는 데는 현장만 한 데가 없다. 2013년 미술품 경매의 첫 신호탄인 봄 메이저 경매가 지난 3월 연달아 열렸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지속적인 시장 침체에 미술품 양도소득세 시행까지 겹쳐 우려 속에 열린 경매 현장은, 그러나 열기가 후끈했다.
[경매 공매 트렌드] 봄 시즌 미술품 경매 현장 지상 중계. 양도세 시행 후 첫 경매 “나쁘지 않은 성적”
지난 3월 27일. 봄 시즌 경매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 전시장 주변은 오후부터 차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2013년 미술품 시장을 예측해볼 수 있는 첫 메이저 경매인 데다 미술품 양도세 시행 후 처음으로 열리는 메이저 경매라는 점에서도 이목이 집중됐다.

경기 불황으로 미술 시장이 지속적인 침체를 겪고 있는 와중에 도입된 양도세에 대해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란 지배적 의견과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공존하는 터라 경매 결과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봄 시즌 메이저 경매는 그 해의 첫 농사로 향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 수는 총 134점으로 94억 원어치. 특히 이 중에는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우의정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서한을 모은 ‘정조어찰첩’이 포함돼 있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09년 첫 공개된 이 어찰첩은 정조의 속내와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추정가 12억~20억 원에 나왔다.
[경매 공매 트렌드] 봄 시즌 미술품 경매 현장 지상 중계. 양도세 시행 후 첫 경매 “나쁘지 않은 성적”
정조어찰첩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된 또 하나의 작품은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토마토와 추상’으로 추정가는 이날 출품작 중 최고인 35억 원 이상이었다.

이날 총 낙찰률은 68%, 낙찰총액은 41억5000만 원이었다. 1월 말 열린 K옥션의 ‘사랑 나눔 경매’가 100% 낙찰률을 기록한 데다 화제작에 대한 관심으로 좀 더 높은 낙찰률을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기대 이하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평가했다.



전년도 수준의 좋은 결과, 향후 시장 기대해볼 만

수치적인 경매의 결과를 논하기에 앞서 현장 열기는 뜨거웠다. 1층 전시장에 깔린 200여 석의 의자는 빈자리 없이 꽉 채워졌고, 수십여 명의 인원이 뒤쪽에 선 채로 현장을 지켜봤다. 이날 실제로 경매에 참가 의사를 밝힌 인원은 200여 명 선. 관계자는 “90% 이상 예약률”이라고 말했다.
[경매 공매 트렌드] 봄 시즌 미술품 경매 현장 지상 중계. 양도세 시행 후 첫 경매 “나쁘지 않은 성적”
현장 응찰자뿐만 아니라 서면과 전화 응찰자도 많았으며, 실제로 낙찰자 중 상당수가 서면과 전화 응찰자였다. 현장에서 경매에 응찰한 몇몇 참가자는 다수의 작품을 낙찰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후 5시. 경매사의 등장과 함께 김종학의 ‘꽃과 새’로 경매가 시작됐다. 대부분 추정가 이내에서 낙찰이 이뤄졌으며 전반부에는 응찰자가 많지 않아 조기에 낙찰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권옥연의 ‘나부’를 시작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피렌체’, 베르나르 브네의 ‘비결정적인 선(Indeterminate Line)’, 운보 김기창의 ‘장생도’ 등 치열한 경합을 벌인 10여 작품은 추정가를 뛰어넘는 가격에 낙찰돼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하이라이트로 초미의 관심사였던 ‘정조어찰첩’은 한 전화 응찰자의 단독 응찰로 12억 원에 낙찰돼 이날 경매 작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경매에 나온 작품 중 추정가 최고였던 리히텐슈타인의 ‘토마토와 추상’은 아쉽게도 유찰돼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경매 시장에서 여전히 강세를 띠는 ‘블루칩’ 작가인 이우환, 박수근, 천경자 등 일부 고가의 작품들은 유찰률이 높았다.

이우환의 두 작품 ‘선으로부터’(1978년작)와 ‘점으로부터’(1976년작)는 각각 추정가 3억~4억5000만 원과 2억7000만~4억 원이었으나 유찰됐고, 이우환의 또 다른 작품 ‘바람으로부터’(1984년작·추정가 9000만~1억6000만 원)와 ‘점으로부터’(1979년작·추정가 1억7000만~2억2000만 원)도 유찰돼 이날 출품된 이우환의 작품은 모두 유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 밖에도 추정가 4억5000만~6억 원인 박수근의 ‘노상’과 추정가 1억8000만~2억8000만 원에 나온 천경자의 ‘여인’도 유찰됐다. 그러나 억대의 추정가로 출품된 이성자의 ‘내가 아는 한 어머니’와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는 경합 끝에 각각 3억 원과 2억8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경매 공매 트렌드] 봄 시즌 미술품 경매 현장 지상 중계. 양도세 시행 후 첫 경매 “나쁘지 않은 성적”
현대미술 부문과 고미술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 이날 경매는 예상 시간보다 다소 짧은 1시간 30분여 만에 끝이 났다. 경매가 끝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낙찰자에게 축하인사를 보내거나 경매 분위기에 대한 ‘평가’를 주고받기도 했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비교적 경매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반응들이었다. 특히 미술품 양도세 시행 후 미술 시장이 더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던 것에 비하면 올해 이후 경매를 기대해 봐도 좋을 만큼 기분 좋은 출발이라는 것.

한편 K옥션 메이저 경매보다 일주일 먼저 열린 서울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 현장도 분위기가 후끈했다. 총 120여 점이 출품돼 낙찰률 약 70%, 낙찰총액 47억7800만 원을 기록했다. 경매 최고가 작품으로는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서 있는 여인’으로 13억4000만 원. 10억 원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서면과 전화, 현장의 치열한 경합 끝에 전화 응찰자가 낙찰을 받았다.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인 ‘달밤’은 추정가보다 높은 2억3000만 원, 김흥수의 무제 작품과 이우환의 ‘동풍’도 추정가를 상회해 각각 3억8000만 원과 1억9500만 원에 낙찰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고미술 가운데는 단원 김홍도의 ‘쌍치도’가 6500만 원에 시작해 1억6000만 원에 낙찰돼 고미술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 결과는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좋은 결과를 보였다”며 “양도세 부과 등 어려움이 있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미술품의 투명한 거래가 정착되면 건강한 미술 시장의 형성과 함께 더욱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