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건 채권이건 모두 불확실한 시기다. 국내 주식 시장은 북한 핵 위기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으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데다 건설·조선·철강 업종을 중심으로 실적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채권 시장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정책위원회가 4월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가 반등하는 등 요동치고 있다. 해외 채권 시장도 지금의 강세장이 끝날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투자 대상인 주식과 채권에서 벗어난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형 상품이 점차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펀드 시장에서도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 등 정형화된 유형에서 벗어나 투자 범위를 확대하거나 매도 전략을 가미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유형의 펀드가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중위험·중수익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도 수익률이 높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큰 종목형 ELS에 분산투자하는 ELS 랩어카운트(ELS랩)형 상품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채권·배당주·리츠(REITs)로 정기적 수익 ‘멀티인컴펀드’
‘멀티인컴펀드’는 주기적으로 수익이 예상되는 자산(고배당주·채권·인프라스트럭처·리츠)에 분산투자해 자본차익과 이자, 배당 등의 정기적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개별 투자 대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고위험 자산일지라도 이를 묶어 분산투자하는 방식으로 변동성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투자 대상도 대부분 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 상품들이다. 그 대신 현금흐름이 꾸준히 발생할 뿐만 아니라 수익률도 견조하다. 에이머랙 포레스트 슈로더투신운용 멀티인컴펀드 총괄 매니저는 “글로벌 시각에서 유망한 투자 대상에 분산투자하는 게 멀티인컴 펀드의 강점”이라며 “같은 배당주 종목이라도 상장된 국가에 따라서 주가수익비율(PER)에 차이가 있어 환율 리스크를 관리할 경우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용되는 멀티인컴펀드는 총 56종으로 4월 12일 현재 운용 자산은 모두 합쳐 1조380억 원(설정액 기준)이다. 이 가운데 3분의 2인 6958억 원이 올해 초부터 4월 12일까지 신규로 순유입됐다. 올해 새로 생겨난 멀티인컴펀드만 24종에 달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2.99%이며 지난 1년간 수익률은 5.16%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멀티인컴펀드는 ‘슈로더아시안에셋인컴증권투자신탁(설정액 2601억 원)’, ‘KB이머징국공채인컴증권자투자신탁(설정액 969억 원)’, ‘프랭클린템플턴미국인컴증권자투자신탁(설정액 766억 원)’ 등이다. 각각 연초 대비 슈로더아시안에셋인컴은 5.69%, KB이머징국공채인컴은 2.74%, 프랭클린템플턴미국인컴은 4.42%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하영 미래에셋증권 상품기획팀 연구원은 “채권 혼합, 주식 혼합 등 투자 방식이 제각각인 만큼 변동성과 추구하는 수익률, 투자 위험 등급 등을 따져보고 투자 성향에 맞게 골라야 한다”며 “특히 수익 구조가 시장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VIP투자자문 ELS랩 1350억 원 몰려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개별 종목들의 주가를 추종하는 종목형 ELS들에 투자하는 ELS랩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상품은 종목형 ELS 가운데 가격 급락 가능성이 낮은 종목들을 골라 분산투자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면서 지수형 ELS 대비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수형 ELS는 코스피200, 미국 S&P500, 홍콩 항셍지수를 동시에 추종하는 상품의 기대수익률이 지난해 6월 약 12.5%에서 현재 6.5% 수준까지 떨어질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분산투자를 통해 원금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게 ELS랩 상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VIP투자자문이 투자 자문을 맡고 삼성증권이 판매하는 자문형 ELS랩의 경우 올해 초 출시 이후 3월 말까지 1350억 원을 끌어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VIP투자자문은 2009년 회사 자체 자금으로 ELS랩 상품을 2년간 시험 운용한 뒤 2011년에는 자체적으로 판매에 나섰었다. 4년간의 투자 과정에서 112건의 ELS 투자 가운데 1건만 원금 일부를 잃는 하락 배리어에 진입했다.
ELS에 투자하는 펀드인 주가연계펀드(ELF)에도 조금씩 자금이 모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월 12일 현재 국내 ELF 펀드 설정액은 9조5935억 원으로 1년 전 8조8464억 원보다 약 7500억 원가량 늘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관계자는 “4개 이상의 ELS에 분산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공모형 ELF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평균 1.80%, 1년 수익률은 평균 12.56%였다.
전문가들은 ELS랩이나 ELF도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프앤가이드가 147개 공모형 ELF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수익률은 연초 대비 수익률이 26.24~-89.67%, 1년 수익률이 31.78~ -89.67%로 편차가 컸다. 수익은커녕 대규모 손실 위험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헤지펀드형 ‘롱숏펀드’로 고수익 잡아볼까
아예 헤지펀드 스타일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롱숏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롱숏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고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종목을 미리 빌려서 팔아 차익을 남기는 공매도 전략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자산을 매입하는 ‘롱(long)’뿐만 아니라 매도하는 ‘숏(short)’도 함께 이용한다고 해서 롱숏(long-short)펀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가지수의 상승이나 하락과 상관없이 절대 수익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매도를 통해 수익률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손실 위험이 뒤따른다. 매수 종목과 매도 종목이 모두 시장 흐름에 맞으면 고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매수 종목과 매도 종목을 잘못 선정하면 거꾸로 손실 폭이 커진다. 국내 주식형 헤지펀드들이 즐겨 사용하는 매매 기법이기도 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롱숏펀드는 총 11종으로 평균 수익률은 1월 2일부터 4월 12일까지는 1.45%, 지난해 4월 12일부터 올해 4월 12일까지는 2.77%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가 연초 이후는 1.95%, 지난해 4월 12일 이후로는 2.23%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견실한 성적이다.
대표 펀드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30’으로 연초 이후 설정액이 530억 원 늘었다. 수익률은 2.85%다. 이 밖에도 ‘마이다스거북이30증권자투자신탁’(수익률 2.11%),‘미래에셋인덱스헤지증권투자회사A’(수익률 2.11%) 등의 운용 성과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조귀동 한국경제 기자 claymor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