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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배우자나 직업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자산을 운용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 리스크를 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어릴 적부터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60년 넘게 일본인들에게 리스크가 없는 저축만 하라고 세뇌시켜 온 결과 일본인에게는 리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DNA가 없어졌다. 이것이 일본의 비극이다.” 몇 년 전 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투자 관련 강연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그의 말에 의하면, 과거 60년 넘게 일본의 정책당국은 국민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이나 우체국에 맡기고 열심히 일만 하라고 교육해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풍조도 있었다. 어찌 보면 건전한 교육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지금 일본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계 금융 자산 규모는 2경(京) 원 정도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 많은 가계 금융 자산의 60% 가까이를 금리가 연 1%도 안 되는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일본 가계 금융 자산의 70% 정도를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일본 국민이 투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제대로 된 투자 교육을 받았거나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해 2경 원 규모의 가계 금융 자산을 연 5% 정도로만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연간 1000조 원 규모의 운용 수익이 창출될 수 있다. 이 정도의 운용 수익이면 일본 가계의 살림살이도 훨씬 나아지고 일본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텐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와 위험은 다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현상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괜히 위험한 상품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았다. 앞으로 그런 상품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외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 자문형 랩,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기 때문이다.
우선, 여기에서 ‘위험한 상품’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리스크가 큰 상품에 투자했다가 관리를 잘못해 손실을 봤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흔히들 리스크(risk)라고 하면 ‘위험(危險)’이라는 우리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처럼 가격이 떨어져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품을 위험한 상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격 하락=위험’이 연상돼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위험’이라는 말의 정확한 영어 표현은 ‘데인저(danger)’다. 그러나 리스크는 위험한 상황과는 다르다. 위험과 리스크 모두 불확실한 상황을 의미하지만 리스크는 관리가 가능하다는 속성이 있다. 예를 들어 리스크가 따르는 상품의 하나인 주식에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잘만 관리한다면 고수익을 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리스크의 속성이다. 라틴어에서 나온 리스크라는 말은 본래 “용기를 갖고 시도해 본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저축’과 ‘투자’의 차이를 확실하게 교육시킨다. 따라서 중학교만 졸업하면 저축과 투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는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거의 가르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저축해서 돈을 모으자, 투자해서 돈을 모으자는 식으로 생각해 저축과 투자를 비슷한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저축’과 ‘투자’는 상반된 개념을 갖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저축은 ‘아껴서 모으다’라는 뜻이다. 은행예금, 지급액이 확정된 보험, 지급액이 확정된 연금이 대표적인 저축 상품에 속한다. 저축 상품에 가입하면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느리지만 원리금의 손실을 볼 염려는 없다. 금융기관이 운용의 결과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즉 기대수익률은 낮지만 리스크가 따르지 않는 게 저축 상품이다.
반면에 ‘투자’는 ‘가능성을 믿고 자금을 투하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믿었던 대로 되면 크게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리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손실을 보았더라도 투자를 중개해 준 금융기관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투자의 결과가 잘 되든 잘못 되든 모두 투자자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투자 상품으로는 주식, 채권, 펀드, 변액보험, 변액연금 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고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손실을 볼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따르는 게 투자 상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대다. 수년 전까지 수십 년간 계속돼 온 IMF 직후의 두 자릿수 금리 시대와 비교하면 저금리라고 할 수 있지만, 선진국 수준과 비교하면 그렇게 낮은 금리라고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일본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볼 때, 경기가 회복되고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예금 금리가 1~2%, 2~3% 정도 오르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혼란이 오지 않는 한 10%대의 예금 금리 시대는 다시 오기 어렵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제는 보유한 금융 자산의 일정부분을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투자 상품에 운용하지 않고서는 자산을 불려가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배우자나 직업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자산을 운용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 리스크를 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어릴 적부터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보유한 금융 자산의 일정 부분을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투자 상품에 운용하지 않고서는 자산을 불려가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
“금융·투자 교육은 수학만큼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어릴 적부터 금융·투자 교육과 학자금 마련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어린이 펀드 투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린이 펀드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계한 펀드를 말한다. 이들 펀드는 우량 주식 또는 채권 등에 주로 운용하는 펀드로 어린이들에게 투자 마인드를 길러주면서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어린이 펀드’가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증권회사나 은행에 가면 어린이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투자신탁 펀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칠드런 펀드(children fund)’ 또는 ‘영 인베스터 펀드(young investor fund)’라고 부른다. 가입 자격에 연령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4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이들 펀드 투자를 통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돈이란 무엇인가, 투자란 무엇인가, 기업이란 무엇인가, 펀드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다.
펀드 운용사나 판매 금융회사들도 미래의 고객을 발굴하고 교육시키겠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린이 펀드를 보급시키려는 이유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금융·투자 교육을 시켜 미래의 투자가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금융회사들이 어린이 펀드를 출시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금융·투자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충분히 살펴본 후 적당한 펀드에 가입해 어린이 금융·투자 교육과 함께 장기적으로 학자금 마련을 해나가면 좋을 것이다. “금융·투자 교육은 수학 교육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의회 발언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 허라미
강창희 미래와 금융 연구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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