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 ART STORY

‘바벨탑’, 1563년, 목판 위에 유채, 114×155cm, 빈 미술사박물관
‘바벨탑’, 1563년, 목판 위에 유채, 114×155cm, 빈 미술사박물관
기원전 597년 3월 14일 한창 번영을 구가하던 유대교의 성지 예루살렘은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 기원전 604~기원전 562)가 이끄는 대병력 앞에 초토화되고 만다.

성지는 폐허가 됐고 수많은 성물이 정복자에 의해 약탈됐다. 이때 유대인 수천 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여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탑을 목격한다. 구름 위로 치솟은 그 탑은 마치 하늘로 연결된 통로 같았다.

압류된 유대인들의 목격담은 그 후 예루살렘에 전해져 훗날 성서 편찬에 영향을 주게 된다. 성지를 파괴한 바빌론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바벨탑은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상징으로 기술된다.

이로부터 바벨탑은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기독교 회화의 단골 주제가 된다. 바벨탑의 형상은 여행자들로부터 전해들은 목격담을 토대로 그려졌는데 의견이 분분할 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었고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대체로 하늘로 높이 치솟은 원추형의 구조물이 일반적인 모델이다(최근에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바벨탑은 원추형이 아니라 피라미드형이었다고 한다).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1525년경~1569년)이 그린 ‘바벨탑(1563)’은 그런 류의 그림들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림을 보면 한가운데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벨탑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그 뒤로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바빌론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왼쪽 하단에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로 추정되는 왕이 수행원들을 이끌고 공사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당연히 감상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중앙의 바벨탑 건설 현장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원추형의 바벨탑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았다. 이것은 중세 이후의 서구인들에게 천년의 영화를 누렸던 이교도 제국 로마의 모습이 바빌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브뤼헐은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을 바벨탑의 구조적 특징으로 차용함으로써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교 문명을 상징하려 했다.

공사는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애초에 탑은 수직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쌓아올려지고 있고 아래층을 완성하기도 전에 위층을 쌓아올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 공사는 실패할 것이고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점을 화가는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뤼헐은 왜 바벨탑을 그렸을까? 그 답은 당대 플랑드르(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일대)의 정치·사회적 혼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플랑드르는 대외적으로는 자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던 스페인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맹인들의 우화’, 캔버스에 템페라, 86×154cm,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맹인들의 우화’, 캔버스에 템페라, 86×154cm,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그런 가운데 민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 갔고 이는 화가 브뤼헐에게 극도의 좌절감을 안겨줬다. 그에게 당시 사회는 멸망 직전의 바빌론이나 로마와 다름없었다. 탑이 기우뚱한 것은 사회가 균형감각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며 공사의 선후관계가 뒤바뀐 것은 상호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합리성을 잃은 사회의 혼란을 상징한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브뤼헐의 현실 비판은 ‘맹인들의 우화(1568)’와 ‘불구자들(1568)’에도 잘 드러나 있다. ‘맹인들의 우화’는 여섯 명의 맹인이 서로의 손에 의지한 채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서(마태복음 15장 14절)의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는 그 기막힌 현실은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와 선동가에 맹목적으로 이끌려가는 플랑드르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오른쪽의 엎어진 맹인은 장차 플랑드르가 맞이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의미한다.
‘불구자들’, 18×21.5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불구자들’, 18×21.5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코케인’, 1567년, 목판 위에 유채, 52×78cm, 뮌헨 알테르 피나코테크
‘코케인’, 1567년, 목판 위에 유채, 52×78cm, 뮌헨 알테르 피나코테크
‘불구자들’은 목발을 짚은 다섯 명의 신체장애자를 묘사한 작품인데, 이것은 절름발이가 된 당대 네덜란드의 다섯 개 사회계층을 상징한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기만은 목발 짚은 장애인처럼 걷는다”라는 경구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야말로 블랙 유머의 극치다.

그의 신랄한 비판 정신은 대중의 허황된 낙원에의 꿈을 꼬집은 ‘코케인(1567)’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늘에서 비 대신 치즈가 쏟아지는 등 온갖 먹을거리로 가득한 상상의 낙원 ‘코케인’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먹고 자고 하는 모습으로 묘사돼있다. 그림은 한편으론 당시 경제적 번영을 일궈낸 주역인 플랑드르의 시민계급을 예찬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능한 당대 지배계층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가운데 나무를 중심으로 바퀴살처럼 누운 세 사람은 각각 기사, 농민, 서기 계급을 대변한다. 그러나 귀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람 대신 구운 오리를 배치했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의 혼란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 지도자들에 대한 야유로 해석된다.

지난해 프랑스의 릴 박물관은 ‘바벨탑’ 특별전을 열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유수의 현대 작가들이 참석한 이 전시는 현재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무모한 욕망을 바벨탑을 빌어 재해석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끝없이 높은 빌딩을 쌓아올리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이 바빌론인이나 로마인들의 욕망이 다름없다고 파악한 것이다. 브뤼헐이 수백 년 전 바벨탑을 통해 던진 경고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정석범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