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LIFE] 나물 뿌리를 씹는 참맛을 아십니까?
청고(淸苦)를 겪고야 알 수 있는 깊은 맛

나는 봄이 되면 씀바귀 뿌리를 잘게 썰어 참기름을 한 방울 띠워 넣고 비벼먹기를 좋아한다. 물론 그 맛은 쓰다. 그러나 그렇게 비벼 먹고 나면 입이 개운하고 단 침이 입 안에 가득 고여 감치는 뒷맛이 기가 막힌다. 나의 이 식도락은 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은 것인데, 어릴 때에는 아버지의 이러한 식성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차츰 아버지의 입맛을 닮아가고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때면 으레 ‘채근담(菜根譚)’을 펼친다.

16세기 후반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쓴 ‘채근담’은 두고두고 읽어도 씀바귀 뿌리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명저다.

맛있는 음식을 구하지 않고 나물 뿌리 즉, 채근(菜根)과 같은 거친 음식을 잘 씹으며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 영락해본 사람만이 나물 뿌리의 참맛을 안다는 것이다.

저자 홍자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이 책의 서문을 쓴 우공겸이란 사람의 기록이 남아 있어 그가 산 시대와 인품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유학을 하는 숨은 선비였지만 유학에만 얽매이지 않고 노자의 도교와 불교까지도 폭넓게 받아들여 여러 사람들에게 삶의 지침으로, 또 맑은 샘물과 같이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여주는 작은 깨우침을 주었다.

홍자성의 친구 우공겸이 쓴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 글을 ‘채근’이라 이름붙인 것은 저자 스스로가 청고를 겪고 단련한 가운데서 얻어진 것으로, 스스로 심고 물 주어 가꾸는 속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가 얼마나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고 인생행로의 험난함을 맛보았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둔세의 맛과 자적의 멋

일찍이 시인 조지훈은 “‘채근담’을 통해 느끼는 둔세(遯世: 현실사회에서 도피함)의 미(味)와 자적(自適: 속박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함)의 멋은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 정다운 벗이기도 했으니, 한 바루의 밥과 한 상의 선서(禪書)로 소견(消遣: 소일)하던 그날에 ‘채근담’은 참으로 좋은 길잡이가 돼 주었다”고 술회한 바 있으며, 읽을 때마다 그 맛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명아주국으로 입을 달래고 비름나물로 창자를 채우는 사람들 중에는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결백한 사람이 많지만, 비단옷 입고 쌀밥 먹는 사람은 굽실거리는 종노릇을 달게 여긴다. 대저 지조란 청렴결백하면 뚜렷해지고, 절개란 부귀를 탐내면 잃게 되는 법이다.”(전집, 11)

그래서 조지훈이 ‘지조론’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청빈을 즐긴 안회의 경지와 흡사하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공자는 제자인 안회를 칭찬해 이렇게 말한다. “한 그릇 밥, 한 표주박의 국을 마시며, 누추한 거리에서의 삶을 사람들은 모두 다 싫어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칠 줄 모른다.”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호사스러운 먹거리로 배가 불러지면서 온갖 성인병을 얻게 돼 이제는 오히려 거친 음식이 고급 음식이 됐다. 어쨌거나 다행한 일이지만 깊은 맛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채근담’은 전집 225장, 후집 134장 모두 359장으로 돼 있어 1년의 날수와 비슷해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서 수양의 반려로 삼을 수 있다. 조지훈 번역의 ‘채근담’은 1965년에 현암사에서 초판이 나왔는데, 모두를 다시 섞어 자연편, 도심편, 수성편, 섭세편으로 재편성하고 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시적으로 번역해 싣고 있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지니지 않고, 기러기가 차운 못을 지나매 기러기 가고 난 다음에 못이 그림자를 머무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나니라.”(전집, 82)

일에 나아갈 때와 일에서 물러날 때가 이러하니 얼마나 멋있는가!



기울어지는 잔과 벙어리저금통의 지혜

‘채근담’의 정신은 자연현상처럼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나 거목이 아니라 들에 자라는 평범하고 흔한 나물처럼,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 스스로 들풀처럼 생각하고 동시에 들풀처럼 평범한 남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알아야 비로소 나물 뿌리를 씹는 진정한 맛을 안다는 것이다. 이 보통의 ‘평범한 삶’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용(中庸)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글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기기( 器: 기우는 그릇)는 가득 차면 엎질러지고, 박만(撲滿)은 비어야 온전하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차라리 무의 경지에 살지언정 유의 경지에 살지 않으며, 모자라는 데에 있을지언정 가득 찬 데에 있지 않는다.”(전집, 63)

여기에서 ‘기기’와 ‘박만’은 중용의 도를 말해주는 재미있는 도구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묘에 있는 기묘한 그릇을 보고 묘지기에게 그 용도를 물었을 때 묘지기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릇은 속이 비면 기울게 되고, 중간쯤 채워 놓으면 반듯하게 되고, 가득 차면 뒤집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임금님은 이것을 지극한 교훈으로 삼아서 늘 좌석 옆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아, 세상에 어떤 물건을 막론하고 가득 차고서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박만(撲滿)’은 ‘서경잡기(西京雜記)’에서 토기로 만든 벙어리저금통을 말한다고 적고 있다. 즉 돈을 구멍으로 넣을 수는 있어도 꺼낼 수는 없어, 가득 차면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기는 물이 가득 차면 뒤집어지고, 박만은 돈이 가득 차면 깨뜨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본받아 욕심 없애기에 힘쓰고 물질은 부족한 데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말라

“삶도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말하며 오로지 현세만을 추구하는 유학의 세계에서, 세속적인 명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에 구애되지 않고 초연하기란 참으로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공자도 ‘논어’의 첫머리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아야 군자”라 했을까. 이처럼 남을 너무 의식해서도 안 되고 남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된다. 여기에서도 중용이 필요하다. 스스로 들풀처럼 평범하게 여겨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경지에 들어야 비로소 채근의 참맛을 안다.

사람들은 관직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굽실거리는 것을 자신이 잘나서 그런 줄 착각하고, 자신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베옷과 짚신을 신고 있어서 업신여기는 것을 자신이 못나서 그런 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귀하여 남들이 나를 받들어줌은 이 높은 관(冠)과 큰 띠(帶)를 받드는 것이요, 내가 천하여 남들이 나를 업신여김은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런즉, 원래 나를 받드는 것이 아니니 내 어찌 기뻐할 것이며, 원래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니 내 어찌 성낼 것인가.”(전집, 172)

봄날에는 거친 나물 뿌리를 씹으며 청고와 둔세와 자적을 맛보기를 권한다.



일러스트 허라미
전진문 (사)대구독서포럼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