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PENSION

지금의 우리는 삶이 길어짐으로써 새로운 경쟁에 직면해 있다. 바로 돈과의 경쟁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돈이 더 오래 남느냐, 아니면 내가 더 오래 살아남느냐의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돈의 샘이 마르면 은퇴 파산이라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돈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심술궂은 세상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매달 일정한 소득을 토해내는 확정금리형 연금,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높은 기대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심술궂은 세상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매달 일정한 소득을 토해내는 확정금리형 연금,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높은 기대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묘사하면서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한 말이다. 여기서 ‘자연 상태’란 아무런 인위적 제약 없이 인간의 본성만 작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비록 평등하게 창조됐으나 기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이기적 존재인 인간에게 유일한 가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고, 짧다”고 홉스는 말한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홉스가 내세운 방법은 절대 권력을 가진 강력한 국가의 설립이었다.

홉스가 이런 주장을 펼친 ‘리바이어던’을 출간한 해는 지금으로부터 약 460년 전인 1651년이었다. 그 이후 인간 사회는 발전을 거듭해 홉스가 주장한 국가가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상태에 접어들었다.

비록 홉스가 선호했던 절대군주 국가는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국가에서 인간의 삶은 ‘바쁘고, 부유하고, 청결하고, 온화하고, 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홉스가 말한 투쟁의 본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생존을 위한 투쟁은 치열하다. 다만 투쟁의 양상이 폭력적인 것에서 룰 내의 비폭력적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폭력적 양상이 거의 사라짐에 따라 투쟁은 경쟁이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의 우리는 삶이 길어짐으로써 새로운 경쟁에 직면해 있다. 바로 돈과의 경쟁이다.



수명 연장 맘껏 누리려면 ‘돈’ 필요

오늘날처럼 분업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돈은 여전히 중요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돈이 부족하더라도 가족 내 세대 간 부양 시스템이 돈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 덕분에 고령자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핵가족화의 진전으로 가족 내 세대 간 부양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틈을 메운 것이 국가에 의한 사회보장제도였다. 세대 간 부양 시스템의 주체가 가족에서 국가로 바뀐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사회보장제도는 출산율 하락과 수명 증가라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수명 증가로 부양해야 할 고령자 수는 늘어나는데, 출산율 하락으로 고령자 부양을 책임져야 할 젊은이의 비중은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재구축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도록 사회보장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되던 시점을 전후해 선진국에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축소에 들어간 것이다.

줄어든 사회보장의 몫은 옛날처럼 가족에게 돌리기보다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자조 노력을 중시하는 사회보장제도로의 전환이다. 국민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기에는 노후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국가는 개인의 자조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간접적 지원책을 들고 나왔다. 국민의 노후를 직접챙기는 책임자에서 조력자 역할로 한발 물러난 것이다. 홉스가 환생한다면 애통해할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오랜 염원 탓이니 애통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길어진 수명을 맘껏 누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조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자조 노력을 통해 길어진 수명이 탄탄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 핵심은 바로 돈이다.

자연적 수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먼저 결승테이프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 돈이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게 되면 파산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은퇴 파산의 늪에 빠지게 된다. 죽을 때까지 국민연금이 나온다고 안심하지 말지어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나보다 오래 살 자녀가 있다고 위안하지도 말자. 이미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노노부양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젊은 손자 손녀가 있지 않느냐고 하소연한들 소용없다. 그들에게 부모와 조부모까지 2세대의 부양을 책임지라고 큰소리칠 염치가 우리에겐 없다.



돈의 샘 깊이 파고, 물줄기 다양화하라

그렇다고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다. 기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녀에게 의지할 마음은 깡그리 비우고, 자녀에 대한 무한정 지원을 사랑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전쟁론’이 떠오른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개념을 바꾼 인물이다. 그는 전쟁을 단순한 무력의 충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역량의 충돌로 묘사했다. 한 마디로 전쟁은 무기의 경연장이 아니라 병참의 경연장이라는 것이다.

은퇴 이후의 노후 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내고자 한다면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후 생활을 자녀나 국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자세는 무기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주장처럼 노후에 은퇴 파산에 빠지지 않고 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병참선을 잘 구축해야 한다. 마르지 않는 돈의 샘을 파야 한다는 말이다. 돈의 샘이 너무 얕으면 샘은 일찍 마를 수밖에 없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돈의 샘이 마르면 은퇴 파산이라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돈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가장 좋은 방법은 샘을 깊이 파는 것이다. 국민연금만 있는 돈의 샘은 너무 얕아 마실 물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다. 돈의 샘에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라는 물이 나올 수 있을 만큼 깊게 파야 한다.

두 번째는 풍부하고 다양한 물줄기를 발굴하는 것이다. 돈의 샘이 깊더라도 막힌 수도꼭지처럼 물이 찔끔찔끔 나온다면 빨리 마를 가능성이 높다. 물줄기가 하나밖에 없다면 안심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엔 여러 물줄기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깊은 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노후소득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심술궂은 세상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매달 일정한 소득을 토해내는 확정금리형 연금,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높은 기대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세 번째는 물이 새는 물꼬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꼬가 터져버리면 돈의 샘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돈의 샘에 군침을 흘리는 각종 사기꾼으로부터 샘을 보호해야 한다. 금융사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검은 마수의 손길에 낚아 채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사의 미소로부터도 돈의 샘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소 뒤에 숨은 자녀나 친인척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일러스트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