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성공 비결과 그의 탁월한 마케팅 능력 등 외부에 드러나는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은 외부에 드러나는 것들이 아닌 내부에 존재하는 부분이다. 정 사장의 추진력과 혁신, 기저에 깔린 문화를 통해 그의 소통 리더십을 알아보자.
소통 리더십,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의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정태영 사장은 혁신적인 스타 최고경영자(CEO)로서 열정적이며 도전적인 경영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의 스타일이 반영된 현대카드의 경영 키워드는 전략, 스피드, 혁신, 변화다. 이 중에서도 스피드 경영은 호불호(好不好)가 갈릴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 사례를 통해 그의 경영 스타일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혁신 경영의 제왕이었던 전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정보기술(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전문가들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결점까지 보완 또 보완하고, 신제품의 출시일을 연기하면서까지 완벽함을 추구했다. 또한 30분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3주 이상을 프레젠테이션에만 집중하는 완벽주의 경영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정 사장은 그와 같은 듯 다른 성향으로 2002년 시장점유율 1.9%에서 3년 만에 5배를 증가시키며 현재의 현대카드를 만들었다.

전자가 전략 경영과 혁신 경영의 방식이라면, 후자는 변화 경영과 스피드 경영의 방식으로 이는 정 사장만의 경영 스타일을 말해준다. 특히 정 사장의 스피드 경영은 완성도 80%를 100%로 올리기 위해 2배 가까이 드는 시간을 단축해 80%의 완성도로 최대한 신속하게 전진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변수를 ‘타임 라인(time line)’으로 본다.

정 사장은 스피드 경영에 있어 최대의 장애 요인인 불분명한 지시와 초점 없는 결정,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다른 기업과는 조금 다른 소통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팀장, 부장에게 허가를 받은 뒤 다시 사장에게 전달되는 보수적이고 복잡한 하의상달(下意上達) 체계와 얼음 같은 직장 분위기를 타파해 스피드 경영을 실현하고,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이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업무에 관한 사항의 대부분은 이메일이나 전자결재로 이루어지는데, 평사원이 올린 결재 서류가 사장의 결재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시간 내외라고 한다. 또한 임원실의 벽과 문은 모두 투명한 유리로 돼있으며 블라인드도 없다. 이는 투명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임원과 사원 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유도하기 위한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서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근무 태도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작년 7월부터 시작된 타운홀(town hall) 미팅을 통해 정 사장은 직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여는 등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께 보내는 보고서’를 올리고 이메일을 보낸다.

일반적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현대카드에서는 다르다. 그의 보고서와 이메일은 부하직원이 업무에 대한 보고서를 상사에게 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상사가 하는 일도 직원들이 알아야 한다는 그의 소통 철학을 담았다. 또한 그는 직접 직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말 그대로 소통형 CEO다.


정태영 사장은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께 보내는 보고서’를 올리고 이메일을 보낸다.
상사가 하는 일도 직원들이 알아야 한다는 그의 소통 철학을 담은 것이다.



투명 경영으로 자유로운 소통 유도

얼핏 보면 ‘너무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 사장은 ‘자유 속의 원칙’을 강조한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는 그는 실제로 사내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내 식당으로 뛰어간 그는 점심시간이 10분 남짓 남았음에도 길게 서있는 줄을 보고 가장 앞에 서있던 직원에게 “도대체 몇 시에 내려 온 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순간 뒤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갔고, 이날 정 사장은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근무 기강에 대한 언급과 함께 실적과 경기 불황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후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권유했다는 일화가 있다. 자유로운 문화를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반드시 지키자는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67%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결과가 있다. 정 사장은 SNS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CEO에 속한다. 그의 소통 방식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SNS인데, 직원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자신의 경영 철학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이나 생각까지 공유한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중요한 소통의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존 파웰(John Powell)의 커뮤니케이션 5단계를 보면, “식사 맛있게 하세요”와 같이 감정 표현 없이 의례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1단계(phatic communication), “오늘 4시에 외부 미팅이 있습니다”처럼 사실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2단계(factual communication), “저는 이 팀장님과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와 같이 자신의 의견이나 아이디어, 판단을 이야기할 수 있는 3단계(evaluative communication), “지난 설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너무나도 감동했습니다” 등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4단계(gut-level communication)와 주로 친구나 연인, 가족관계에서 보이는 수평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5단계(peak communication)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1단계와 2단계는 업무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인 반면 4단계와 5단계는 친밀한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나타낸다. 업무적인 관계에서 아이디어 넘치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3단계에 해당하는 자신만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자신의 가치관과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친밀한 관계의 시작인 3단계를, 그리고 감정을 공유해 친밀하고 단단한 관계로 들어서는 4단계의 소통을 통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이념, 철학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도록 하고 있다.

직원(팔로어)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리더가 이성 이면의 감성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불편하고 어렵기만 한 리더와의 자리는 침묵을 만들고 이러한 침묵은 기업 운영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직원들 앞에서 앞으로 해야 할 사업 계획을 또박또박 읽어나가 내용만을 전달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업 계획을 설명하면서 리더가 가진 포부와 함께 그를 따라오도록 감정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21세기 글로벌 리더에게 필요조건이 아닌 기업의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인
허은아 (주)예라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