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인터뷰였다. 백화점 지하매장의 작은 카페와 서울 청담동의 고급 레스토랑, 그리고 이번엔 그 둘의 중간쯤 되는 한남동에서였다. 공간 규모도 달랐고, 그가 서 있는 자리도 달랐지만 데자뷰 현상을 느낀 건 한결같은 ‘멘트’ 때문이었을 게다.

스타 셰프가 되려고 했던 이유, 대한민국 식문화 혁명을 위해 해야 할 일, 그리고 꿈까지 그는 오직 한길을 걷고 있었다.
[CEO INTERVIEW] 에드워드 권 EK푸드 대표,  ‘스타 셰프와 비즈니스맨 사이’
에드워드 권(본명 권영민)은…
1971년생. 2008년 말까지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수석총괄주방장을 역임했다. 2008년 말 귀국, 자타공인 국내 스타 셰프 1호로 수많은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더 믹스드 원, 랩24의 총괄 셰프이자 EK푸드 대표다.



4년 전, 첫 번째 인터뷰 때 그의 포지션은 스타 셰프였다.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수석총괄주방장(hotel head chef) 자리를 박차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TV 화면 속에서 예비 셰프들에게 독설을 날리며 에드워드 권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2년 전 두 번째 인터뷰는 막 오너 셰프가 된 뒤였다. 그 전에도 이미 그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기는 했지만 오너 셰프로서 첫 레스토랑은 청담동에 위치한 ‘랩24(LAB24)’였다. 기억하기로 당시 그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해보였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꿈을 실현할 날이 한층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분주한 한남동 더 믹스드 원(The Mixed One)에서 만난 그는 언제나 그렇듯 셰프 복장을 하고 있었다. EK푸드를 설립한 지 벌써 2년, 그 사이 직원 수는 70여 명으로 늘었고, 레스토랑 운영에서부터 홈쇼핑 시장 진출, 쿠키류 출시, 단체 급식과 주방용품 론칭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업들을 벌리며 최고경영자(CEO)로서 입지를 다진 그이지만, 셰프로서 존재감도 여전했다. 국내외 각종 행사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아직도 주방에서 보낸다는 그는 여러 가지로 ‘셰프에서 CEO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고 있노라 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엔 방송 활동도 거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늘 주방에 있어요.(웃음) 다만 작년과 재작년에 국제 행사가 좀 많았어요. 올해도 몇 차례 있을 것 같고요. 국외 활동이 많다 보니 국내에선 좀 주춤했죠. 그래서인지 주변에선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궁금해하시더군요. 많은 분들이 저를 스타 셰프 1호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처음부터 스타 셰프가 돼 그걸로 먹고 살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셰프들이 설 수 있는 환경, 그런 시장을 만들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게 원래 목적이었어요. 지금은 당연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죠.”

아직도 에드워드 권 앞에 붙은 ‘CEO’ 타이틀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 않나요.

“셰프인데 왜 CEO의 색깔로 가려고 하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반문하죠. 그럼 많은 셰프들이 꿈꾸는 오너 셰프는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요. 그냥 요리사로만 살 거면 어디 지리산 같은 데 가서 혼자 요리하고 ‘와, 내가 이런 걸 만들다니’ 하고 감탄하면서 살면 되죠.

그런데 레스토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중을 상대로 요리한다는 것 자체가 상업화 단계로 들어선 겁니다. 저 스스로도 그렇지만 여러분이 보기에도 셰프에서 CEO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스스로는 CEO가 돼가면서 갈등이 굉장히 많았어요.

셰프 입장에서는 막 퍼주고 싶은데 CEO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러다 적자 날까 걱정되는 거예요.(웃음) 회사를 오픈하고 원형탈모가 두 번 생겼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EK푸드를 설립한 지 2년이 됐죠.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자평하나요.

“회사를 설립하면서 안타까웠던 건 시쳇말로 브랜드가 ‘먹히는’ 때는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한국에 와서 그간 많은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초반부터 제대로 된 투자사를 만났거나 지금처럼 제가 직접 했더라면 체계를 훨씬 빨리 구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죠.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그 안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어요.

레스토랑 두 개를 성공적으로 오픈했고, 홈쇼핑을 통해 식품사업도 시작했죠. 이미 코코넛 돈가스와 훈제연어를 시판했고 조만간 칠리새우와 수산가공품들도 선보일 겁니다. 편의점에서 웰빙 쿠키도 론칭했고 마트에서 주방용품도 판매하고 있어요.

3월이면 분당에 500석 규모의 ‘더 믹스드 원 뷔페&다이닝’도 새로 오픈해요. 인테리어도 그렇지만 요리도 그간 고객들이 보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 될 겁니다. 인터내셔널 셰프로서의 경험들을 다 녹여냈죠.”
[CEO INTERVIEW] 에드워드 권 EK푸드 대표,  ‘스타 셰프와 비즈니스맨 사이’
정말 많은 일들을 벌이셨는데, 매출도 그만큼 올라갔나요.

“사업이란 게 당연히 매출을 많이 발생시키고 수익성도 높아져야 하겠지만, 수익을 내는 많은 기업들이 그럼에도 은행 부채를 지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부채는 없는 회사예요.

또 하나, 저는 아직 투자 단계라고 생각해요. 레스토랑도 그렇지만 식품 사업도 그냥 제 이름만 얹어서 가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우리 회사에는 셰프 세 명이 식품 개발을 전담하고 있어요.

남들이 ‘돈가스 하나’라고 말하는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어요. 레시피만 식품회사에 주면 단가가 올라갈 테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거죠. 고급 요리를 대중이 접근하기 쉽게 하는 게 저희 레스토랑 운영의 철칙인데 식품 시장에서는 반대로 갈 수 없잖아요.”

하지만 너무 대중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앙드레김 선생님이 생전에 개인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분은 아니었지만 아동복도 하고 자전거와 냉장고 디자인도 하는 등 여러 면에서 대중적인 접근을 하셨죠. 제 생각도 비슷해요. 명품화 전략 안에서도 충분히 여러 시장을 아우를 수 있다는 거죠. 제가 만든 음식을 국한된 사람만 먹어야 한다면, 과연 그게 진짜 내가 존재하는 이유일까요.

제가 학생들이나 요식업 종사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대중에게 가격이 아닌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우리의 소임이라는 거예요. 몇 날 며칠을 우려낸 5000원짜리 설렁탕이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치장한 1만 원짜리 그저 그런 설렁탕보다 외면당한다면 그건 잘못된 시장 흐름인 거예요.”

우리나라 외식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개인적으로 앞으로는 식품 시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엄청 발전했잖아요. 제가 어릴 때 영화로 보던 것들이 현실이 됐으니, 지금 영화로 보는 건 죽을 때쯤 나타나겠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만일 모든 게 없어도 되는 그때로 다시 간다고 한다면 그래도 꼭 필요한 건 뭘까요.

바로 식량이에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겁니다. 공상영화처럼 나사(NASA)에서 만든 캡슐 하나로 만족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건 인간 욕구에 반하는 것이고, 설령 그렇게 된다면 그건 인류의 형태 자체가 외계인처럼 변하겠죠. 우리나라가 기술집약적 산업에만 집중하는데 외식 시장을 정말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식품에 대한 연구·개발, 나아가 우리 음식을 세계화해야 해요. 국위선양을 떠나 우리 식품을 전 세계에 파는 경제 논리로 가야 하죠.”

그 안에서 에드워드 권, 그리고 EK푸드의 역할은 뭘까요.

“저희 회사에서 지금 KT의 단체 급식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다시 한 번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범국민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조심스럽게 생각하기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회봉사 개념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단체 급식 하는 곳 등에 조언해주는 건 어떨까 합니다.

최근 방송 촬영차 군대에 다녀왔는데 사병 식당 음식이 여전히 ‘짬밥’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걸 보면서 안타깝더라고요. 어떤 부대가 천연조미료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 레스토랑에서 레시피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시작은 작은 부대이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좋은 식문화가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요.”
[CEO INTERVIEW] 에드워드 권 EK푸드 대표,  ‘스타 셰프와 비즈니스맨 사이’
단체 급식은 또 다른 사업 영역인데요, 어떻습니까.

“처음 KT에서 직원들 복지를 위한 명목으로 단체 급식을 제의했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KT 직원이 한둘도 아니고, 게다가 직원 식당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괜히 시작했다가 오히려 제 모든 브랜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면 비즈니스 면에서 엄청난 타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딱 하나, 마진율을 최소화하기로 했어요. 다른 데서 벌어 쏟아 붓는 한이 있어도 음식의 질을 높이기로 한 거죠.

‘1억을 벌어 장사치가 될래, 1000만 원 벌고 비즈니스맨 할래’ 한다면 후자를 따르기로 한 겁니다. 사실 3개 매장에서 저녁까지 포함해 4000끼가 넘는 식사를 제공하는데, 그걸 통해 버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게 적어요. 단체 급식 사업을 하는 분들이 겨우 그 정도 벌거면 그걸 왜 하느냐고 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보람이 있어요. 몰랐던 부분을 배우는 것도 있고, 이를 계기로 훗날엔 단체 급식을 본격화할 수도 있겠죠.”

스스로 어떤 CEO라고 생각하세요. 비즈니스 감각은 좀 있는 것 같던가요.

“처음엔 직원들이 저를 많이 두려워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가오더라고요. 일도 안하면서 직원들만 혹독하게 대하는 CEO가 아니라, 아침 일찍 나와 칼질하고 냄비 닦으면서 엄격하게 하니까 할 말이 없는 거죠. 비즈니스 감각은 글쎄요.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보면 저는 감각이 없는 사람일 거예요. 투자를 최소화해서 이익을 최대로 남기는 게 성공하는 비즈니스인데 저는 반대거든요.

누군가는 에드워드 권이 편의점에서 쿠키도 팔고 홈쇼핑에서 식품도 파니 장사꾼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식품 전도사, 식문화 혁명가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 거예요. 장사꾼처럼 하려면 훨씬 더 많이 벌었겠죠. 돈을 적게 벌더라도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것, 그건 제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가치관이에요.”

향후 사업 계획이 있다면요.

“프랜차이즈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존 프랜차이즈와는 전혀 다른 구조죠. 그동안 연구를 많이 했어요. 보니까 기존 프랜차이즈는 본사만 돈을 벌고 가맹점주는 돈을 못 버는 구조더군요. 이번엔 반대예요. 본사가 정말 조금만 벌고 점주들이 돈 버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너무나 소자본이기 때문에 빨리 확산되지 않을까 싶은데, 다만 돈이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하고 절실해야 하는 이들에게 프랜차이즈를 내줄 겁니다.

홍콩,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3개 도시에서 레스토랑 오픈도 제의 받은 상태라 시장조사를 하고 있어요. 그 나라 사람들의 투자로 레스토랑을 오픈해 외화벌이를 하는 거니까 이 정도면 애국하는 거겠죠.(웃음)”

인터뷰 때마다 얘기했던 요리사관학교의 꿈은 어디까지 실현됐나요.

“상당 부분 준비됐어요. 부지, 건물 다 선정이 됐고 해당 지방자치단체(강원도 영월군)의 후원도 적극 받고 있죠. 원래 목표는 2014년이었는데 여러 상황상 2015~2016년 정도에 개교할 것 같아요. 마이스터고 같은 개념보다는 사관학교 개념이 강하죠. 학비가 거의 제로이다 보니 정말 요리에 미쳐서 살 학생들과 함께 꾸려가고 싶어요. 하지만 제 역할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한 명일뿐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 다만 학교를 육성하기 위해 후원하려면 또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죠.(웃음)”


요리사관학교는 그가 첫 인터뷰 때부터 부르짖던 꿈이었다. 그럼 그다음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는 “꿈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 뿐”이라고 했다. 몇 년 후 요리사관학교의 꿈이 눈앞의 현실이 되면 아마 그는 또 다른 꿈의 출발선에 서 있지 않을까.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