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망한 범서방파의 김태촌부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폐렴으로부터 시작된 패혈증이 사인(死因)이었으니 정말 위험한 병임에 틀림없다. 패혈증은 세균, 바이러스 등의 미생물이 우리 몸으로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고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 상황을 말한다.
쉽게 말해 썩은 피가 온몸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세균, 바이러스, 독소가 온몸으로 퍼지니 간, 폐, 뇌, 심장 등 중요한 장기가 망가지게 되고(다발성 장기부전), 이 때문에 간수치가 올라가고,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며, 의식이 떨어지고, 결국 혈압까지 떨어지는 패혈성 쇼크에 빠지면서 심장이 멈춰 선다.
이렇게 매년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우리 국민의 수가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망하는 환자의 상당수가 패혈증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아직도 패혈증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패’혈증을 ‘폐’혈증으로 잘못 쓰기도 한다. 패혈증의 ‘패(敗)’는 부패와 실패의 ‘패’와 같다. 피를 뜻하는 혈액의 ‘혈(血)’, 증상과 증세를 뜻하는 ‘증(症)’을 붙여 패혈증(敗血症)이란 용어가 됐다.
여기서 ‘패’는 승부에서 진다는 뜻 외에도 부수다, 깨뜨리다, 썩다, 해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즉 패혈증은 세균, 바이러스, 독소 등이 가득한 혈액이 우리 몸을 해치는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패혈증이라는 전쟁은 우리 몸에서 벌어지는 전면전(全面戰)을 뜻한다.
이러한 패혈증으로부터 우리 몸을 구하려면 세균과 같이 패혈증을 일으킨 미생물을 없애는 치료가 필요하다. 항생제라는 강력한 미사일이 원인 미생물을 제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항생제가 미생물을 잡을 때까지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거나 호흡을 제대로 못하면 혈압을 올리는 약물을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이용해 최대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항생제 치료를 늦게 시작하거나 투여한 항생제가 미생물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패혈증은 더 악화되고 아무리 약을 써도 혈압이 떨어지면서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침략을 받지만 패혈증에 잘 빠지지 않는 이유는 평소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런 미생물을 이겨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국지전(局地戰) 상황일 때 바로 초기에 대처하면 전면전으로 확대되기 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듯이 염증이 생기더라도 병원을 빨리 찾아 초기에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면 패혈증이 되기 전에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노인이나 신생아, 당뇨병, 간경화증(간경변증), 만성폐쇄성폐질환, 암 환자, 장기 이식을 받고 면역억제제라는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얼마 되지 않아 패혈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열이 많이 나거나 몸이 떨리면 망설이지 말고 빨리 병원을 찾아 몸에 염증이 있는지 확인하고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단순한 감기몸살 정도로 알거나 몸에 염증이 잘 낫지 않아도 좀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하루 이틀 더 허비하면 패혈증으로 진행된 후에나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게 되므로 매우 위험하다.
결국 패혈증으로부터 살아남느냐 아니냐는 절박한 시간 싸움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감염과 염증을 빨리 찾아내 적군(미생물)을 무찌를 수 있는 적절한 무기(항생제)를 사용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물론 패혈증이라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미연에 막는 것이 바람직하다. 면역력이 취약한 노인, 당뇨병, 간경화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은 흔히 감염되기 쉬운 특정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백신을 접종하도록 한다. 대표적으로 인플루엔자(독감)와 폐렴구균 예방백신을 들 수 있다.
감염이 되지 않도록 평소 손을 깨끗이 씻는 습관도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의사들은 패혈증 치료에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패혈증으로부터 살리기 캠페인(surviving sepsis campaign)’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감염과 염증이 패혈증과 패혈성 쇼크로 번지기 전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은 환자 자신의 몫이다. 몸이 안 좋다면 지금 서둘러야 한다.
안지현 중앙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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