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면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크고 작은 스노골프 대회가 열린다. 국내에서는 올해 아시아 최초로 스노골프를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선을 보였다. 기자가 직접 스노골프 코스를 돌아보며 묘미와 요령을 체험해봤다. 경기도 가평의 아난티클럽서울은 지난 1월 5일부터 ‘발렌타인 & 아난티 스노골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스노골프는 일반 정규 잔디 골프 코스보다 30% 짧지만 단단하게 다지고 얼린 눈으로 페어웨이와 홀을 만들어 총 9홀 규모로 진행된다. 아난티클럽의 스노골프 코스는 이보다는 더 간략하게 5홀 규모로 코스를 조성했다.
지난 1월 7일 기자는 이름도 익숙지 않은 스노골프에 직접 나섰다. 며칠 전 만 해도 경기도 일대가 영하 15도 이하의 기록적인 한파가 계속돼 약간 걱정이 있었지만 마침 이날은 오후에 0도에 가까울 정도로 추위가 풀렸고 쾌청한 날씨였다.
스노골프를 하러 가는 길에는 골프클럽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 티박스, IP(티샷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홀이 있는 그린에 골프채가 구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트도 필요 없고 캐디도 없다. 아난티클럽 스노골프 5홀 코스를 도는 2시간 30분 동안 눈 위에 있는 만큼 옷만 따뜻하게 입고 가볍게 걸어서 이동하면 된다.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겨울철, 스노골프는 공이 날아간 궤도를 따라 눈 위를 트레킹하며 한 번씩 스윙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노골프 코스에 접어들기 전 클럽하우스에서 눈 위에서 찾기 쉬운 컬러 볼과 티(롱 티 20개·숏 티 20개)가 여유 있게 주어진다. 눈 위에서는 볼을 잃는 일이 일반 골프보다 잦기 때문이다.
1번 홀(360야드·파4) 티박스에 서니 온통 하얀 필드가 펼쳐진다. IP에는 파란 깃발이, 홀에는 빨간 깃발이 꽂혀 있어 이를 향해 스윙하면 된다. 평평하게 다져 놓은 티박스 옆에 놓인 카스코 골프클럽에서 드라이브를 꺼내 스윙했다.
비거리가 잘 나오는 골퍼의 경우 7, 8번 아이언만을 이용해서 전 코스를 쳐도 무관하다는 관계자의 조언이다. 눈이 살짝 미끄럽기도 하고 옷도 두꺼운 까닭에 풀 스윙보다는 하프 스윙 정도가 적당하다. 아무래도 제약 조건이 있다 보니 비거리는 일반 골프보다 적게 나온다. 일행이 스윙을 모두 마치면 각자의 공을 찾아 IP지점 부근으로 슬슬 걸어 이동한다. 이동 코스에는 눈을 치워 놓은 오솔길이 있어 따라 걸어도 좋고, 푹신한 눈을 밟고 싶으면 눈이 덮인 페어웨이를 걸어도 좋다.
IP지점에 안착한 공은 찾기 쉬우나, 만일 좀 빗겨나가 눈이 다져지지 않은 구역으로 공이 떨어진 경우 공을 찾기가 힘들다. IP지점과 홀 주변에는 진행요원들이 배치돼 있어 경기의 진행을 돕고 있다. 진행요원은 공을 찾아주고 거리를 설명해준다.
그래도 공을 못 찾은 경우는 공이 떨어진 장소로 기억하는 곳에서 다시 공을 놓고 쳐도 무방하다. IP 바깥 지역으로 공이 나간 경우는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그대로 쳐도 무방하나 주변을 발로 다진 후 티를 꼽고 치는 것이 좋다. 무리해서 눈 속에 파묻힌 공을 치려다 손목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IP지점에서 두 번째 샷에 나섰다. 노평훈 아난티클럽 경기과 주임은 “눈 위에서의 샷은 모래 위에서의 샷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눈을 파지 않도록 공만 때리는 느낌으로 스윙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벙커에서처럼 두 발을 모래 속에 파묻듯이 눈을 파서 고정시켜야 안정된 스윙이 가능하다.
2, 3번째 샷으로 그린 위에 올렸다면 이제 정교한 작업인 퍼팅이다. 하지만 스노골프에서는 정밀한 퍼팅이 필요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눈의 노면을 다져놨다고 해도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공의 노선에 변수가 많다. 즉, 노면의 작은 돌출로 공의 방향이 간단히 바뀐다. 노 주임의 조언에 따르면 곡선의 라인을 타게 하려 하지 말고 직선으로 일반 골프보다 조금 더 강하게 퍼팅하는 게 좋다. 홀컵의 지름이 일반에 비해 2배 정도크므로 홀 가까이 가면 의외로 쉽게 들어간다. 2번 홀(76야드·파3)은 일명 ‘깔때기 홀’로 불린다. 홀 주변을 깔때기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홀 주변에만 공을 보내면 자동으로 홀인이 된다. 2번 홀은 거리도 짧아 홀인원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2번 홀에서 3번 홀로 이동하는 중간에는 간이매점인 ‘스노우 하우스’가 있다.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 간단한 간식도 먹을 수 있다. 이곳에는 위스키와 뜨거운 청주를 잔 단위로 팔고 있어 약간의 알코올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어묵, 군고구마, 구운 가래떡, 열빙어구이 등과 함께라면 더욱 별미다.
3번 홀(219야드·파4)은 홀까지의 거리가 적절해 여성들이 드라이버로 공략할 수 있다. 4번 홀(270~277야드·파4)은 주변의 백자작나무와 설원의 풍경이 멋진 코스다. 페어웨이 벙커를 이용해 IP를 조성해 벙커 어프로치 샷을 하는 묘미가 있다. 남성들도 드라이버를 이용해 공략할 수 있는 홀이다. 마지막 5번 홀(360야드·파4)은 비거리에 자신 있는 남성 골퍼라면 드라이버를 이용해 한번에 2IP까지 날릴 수 있다. 5번 홀을 마치고 나와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길에는 호수가 얼어 얼음낚시를 즐기는 텐트 여러 동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산천어, 송어 등 1급수 물고기가 잘 잡힌다. 별도의 요금으로 얼음낚시도 즐길 수 있다.
스노골프의 비용은 1인 기준 주중 10만 원, 주말 12만 원이다. 클럽하우스에서의 뷔페 점심이 포함된 가격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기존 야외 수영장을 바꿔 만든 아이스 퍼팅장을 볼 수 있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의 퍼팅이 꽤 어려워 보이지만 의외로 잘 들어간다. 아난티클럽은 매일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17야드 아이스퍼팅대회’가 열려 한번에 퍼팅에 성공하면 발렌타인 17년산을 상품으로 준다. 아난티클럽 관계자는 “의외로 퍼팅에 성공하는 분이 많아 상품이 동날 지경”이라고 귀띔했다. 스노골프를 경험한 이들은 “이색적이고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눈 위에서 골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설경을 즐기며 하는 라운딩이 마치 축제 같다”고 평가했다. 아난티클럽에는 평일에 10팀 정도, 주말이면 풀 스케줄인 24팀 정도가 스노골프를 즐기고 있다.
2월 8일에는 ‘발렌타인 & 아난티 스노골프 챔피언십’이 열린다. 스노골프를 경험한 모든 사람이 참가할 수 있으며 우승자에게는 ‘발렌타인 40년’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스노골프의 역사
아이스골프는 일반 골프가 시작된 중세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화가 아르반 데르 니어와 핸드릭 에버캠프의 그림에서 얼음 위에서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골프를 넘어 현대의 스노골프가 등장한 것은 1998년 티나 블롬이 눈이 많은 캐나다 퀘벡에서 9홀 코스의 스포츠로 재발견하면서다.
그리고 첫 번째 스노골프 월드 챔피언십이 오스트리아의 아브테나우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골프를 사랑하는 셀레브리티(유명 인사)들이 많이 참가하면서 유럽 전역에 스노골프의 인기가 상승했고 이후 세계적으로 아마추어 골프대회 중 가장 대규모 행사가 됐다. 지난 2011년에는 유럽피언 챔피언십이 처음 스위스에서 개최돼 스노골프가 더욱 대중화됐다.
스노골프를 위한 팁
1 신발은 방수가 잘되고 가벼운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눈위를 걷기 편하다.
2 스키장과 마찬가지로 하얀 눈이 자외선을 반사하므로 선글라스와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
3 유럽에서는 스노골프를 할 때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위스키를 조금 마시면서 라운딩을 한다. 휴대용 위스키 플라스크에 담아 가는 것도 스노골프의 재미를 높인다. 또한 유럽인들은 스노골프 중 시가를 함께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4 컬러 볼과 티가 넉넉히 주어지니 분실구에 집착하지 말 것.
5 우드로 멀리 치면 볼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페어웨이에서도 분실구가 많다. 적당한 거리로 쳐 나가는 것이 게임의 재미를 높인다.
가평=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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