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병 치료를 넘어 성형, 탈모, 다이어트, 피부 관리, 노인 질환 등의 치료에서도 여러 병원과 업체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획기적 시술을 표방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줄기세포는 이미 인류를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돼 있다.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 줄기세포 시술은 불로장생을 위한 시술로 번져 고가임에도 너도나도 은밀하게 받아왔다. 치료제를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바람과 안전성, 효과를 검증하려는 과학 사이에서 줄기세포를 둘러싼 시각차, 시간차에 의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 왜 논란이 끊이지 않나?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6일 1차로 미허가 줄기세포 시술 위험에 대한 경고에 이어 이례적으로 2013년 1월 9일 2차로 ‘줄기세포 치료제 사용에 대한 대국민 당부 말씀’을 발표했다. 최근 일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해외 시술 논란과 관련해 “미허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시술받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당부였다.
보건복지부는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 절차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당장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의 절실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안전하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자제를 부탁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돈가스 업체 사장을 내세워 “줄기세포 시술 효능이 좋은데 왜 정부에서 이 좋은 치료를 빨리 허용하지 않느냐”는 식의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게재한 알앤엘바이오를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알앤엘바이오의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최근 제기된 논란은 국내 허가 절차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일본, 미국 등 해외 의료기관에서 이를 이용한 시술을 받으려는 환자들을 모집한 사례가 있다는 국내외 언론 보도가 계기가 됐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1월 초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2010년에 알앤엘바이오는 환자 8000여 명에게 1인당 1000만~3000만 원을 받고 지방 줄기세포를 채취, 배양해 이를 다시 주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 표본으로 잡힌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명은 국내 의료기관에서, 27명은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중국과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시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해 말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알앤엘바이오가 매달 500여 명의 환자를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의 ‘신주쿠클리닉 하카타원’에서 자가 지방 줄기세포 시술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보도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안전성과 관련해 제동을 걸었다. FDA는 알앤엘바이오 기술의 미국 내 권리를 보유한 셀텍스에 지난해 9월 자가 지방 줄기세포 투여 시술이 위법하다는 경고 서한을 보낸 것으로 지난해 말 확인됐다. FDA는 시술에 사용되는 줄기세포가 체외에서 세포 증식 과정 등을 거치기 때문에 세포의 원래 특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최소한의 조작’에 해당하지 않고, 법적으로 ‘의약품’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에 대해 한국줄기세포학회도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이어 바로 올해 1월 14일 “줄기세포는 체외 배양이나 처리 과정에서 성질이 변할 수 있고 안전성에 대한 위험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논란의 한복판에 선 알앤엘바이오는 현재 미허가 치료제를 광고한 혐의와 더불어 관세 포탈, 미국 셀텍스테라퓨틱스와 위장 거래 의혹, 줄기세포 밀반출 혐의로 검찰, 관세청 등의 조사를 받고 있다. ‘관련 규제 지나치다’는 입장도
이에 대해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알앤엘바이오 측은 “마이니치신문사에 대해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리고 알앤엘바이오는 국내에서 약사법에 의해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은 안전성 때문이 아니라 유효성에 대한 확증 시험도 해야 되는 규정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알앤엘바이오의 치료제는 임상 1상 또는 1·2상을 진행했으나 임상 3상 시험을 마치지 못했다. 이는 치료제에 대한 안전성은 확보했다고 할 수 있으나 통계학적으로 더 확실한 효과를 아직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알앤엘바이오 측은 줄기세포 치료를 실제로 받아보면 호전된 환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이를 법적 규정만 따지고 들어 외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알앤엘바이오는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저희 회사는 이미 전 세계에서 줄기세포 특허를 획득했으며, 세계의 어떤 연구기관이나 회사보다도 많은 자가 지방 줄기세포 논문 발표와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내 몸의 일부인 내 줄기세포를 몸 밖에서 안전하게 배양하고 다시 내 몸속에 넣어주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의약품 허가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단 말인가”라며 “안전성만 확인되면 의사의 판단과 환자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앤엘바이오 측의 주장은, 줄기세포 치료는 기존의 일반 화학의약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알앤엘바이오의 입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안전성이 확보되면 유효성을 확증하는 데 필요한 임상시험을 면제하면서 일단 시판을 허가해주고 사후 검증 후 재인가를 하자”는 주장도 있다.
일반의약품은 대부분 분자량이 작은 화학합성품이기 때문에 인체에 들어가면 어느 부위에 어떻게 흡수, 분포돼 부작용을 나타낼지 모른다. 또 일단 시판이 허용되면 수만, 수십만 명의 환자에게 보편적으로 투약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더 많은 환자 수를 가지고 실험하는 임상 3상 시험까지 필요하다.
하지만 성체 줄기세포 치료, 특히 자가 유래 지방 줄기세포 치료제는 자기의 줄기세포를 숫자만 늘려서 다시 투입하는 것이어서 일반 화학합성 의약품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심한 안전성 위주 정책은 과잉 규제라는 비판이다.
줄기세포 편법 시술 논란 일지
2012년 12월 22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한국인 줄기세포 원정 시술 보도
24일 식약청, 미허가 줄기세포 위험, 불법성 경고
26일 알앤엘바이오 안전성 검증 반박
26일 복지부, 안전성 위험 경고
2013년 1월 7일 알앤엘바이오 신문광고 통해 줄기세포법 제정 촉구
9일 복지부 알앤엘바이오 검찰 고발 및 재차 경고
지난해 9월 ‘줄기세포 등의 관리 및 이식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이 발의된 이후 5개월째 표류 중이다. 법안은 자가 유래 줄기세포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더라도 의사의 판단하에 자유로이 시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알앤엘바이오의 주장과 내용이 같다. 현행 약사법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약사법은 임상 1∼3상 시험을 거쳐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서만 투약(시술)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양승조 국회의원 측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배양 및 시술에 대해 각계의 우려가 접수됐다. 희귀질환환우회, 의약계, 정부, 바이오 업체 등의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며 “이번에는 약사법과의 조화 등을 감안해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 보완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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