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영 카페 톨릭스 대표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건 없다.’ 구자영 카페 톨릭스 대표가 내민 홍보용 브로슈어에 적힌 그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와 박혔다. 카페 톨릭스를 그득히 채우고 있는 빈티지 가구를 두고 한 말이었겠으나, 잘나가던 비즈니스맨이었던 그가 빈티지 가구와 만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The Collector] 시간의 선물, 빈티지
몇 달 전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두 번째 카페 톨릭스(tolix)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빈티지였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의자와 테이블 등 가구와 소품은 물론, 출입문과 계단, 심지어 창문의 프레임과 유리까지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세월이 켜켜이 쌓인 빈티지였다.

이 모든 것은 구자영 카페 톨릭스 대표의 창고에서 꺼내온 것들. 건물과 페인트, 마감재 등 최소한의 재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구 대표의 소장품으로 만들어졌다. 낡고 닳은 물건들이 모여 오히려 우아하고 기품 있는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빈티지에 열광하는 건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새 것을 빈티지처럼 만들 수는 있어도, 시간의 흔적까지 담을 수는 없는 법. 그는 ‘빈티지는 시간의 선물’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구 대표는 빈티지 가구, 그중에서도 프랑스 철제 가구인 톨릭스의 매력에 빠져 집중적으로 수집을 해왔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개인 창고 등에 보관된 2만여 점의 빈티지 물건 중 의자만 6000여 개인데 상당수가 톨릭스 의자다.

엄청난 양의 물건들은 더 이상 보관할 곳도 없을뿐더러, 그 매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공유하고, 또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대여나 판매 등 비즈니스까지 확대할 목적으로 카페 톨릭스를 오픈하기 시작해 도곡점과 한남점을 열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카페 톨릭스는 쇼룸을 겸한 곳으로 ‘음식과 문화를 나누는 공간’인 셈이다. 따라서 몇 개월에 한 번씩 테이블과 의자 등이 바뀌기도 하고, 누군가 물건을 사가면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역사를 간직한 물건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요즘에도 새 톨릭스 제품들이 국내에 수입되는데 저는 낡은 게 좋아요. 아무리 멋있는 것이라도 세월이 흘러간 만큼 숙성이 돼야 비로소 살아서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요즘에도 새 톨릭스 제품들이 국내에 수입되는데 저는 낡은 게 좋아요. 아무리 멋있는 것이라도 세월이 흘러간 만큼 숙성이 돼야 비로소 살아서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반하다
그 많은 빈티지 중에서도 하필 톨릭스에 꽂힌 이유가 있나요.

“한번 보세요. 얼마나 늘씬하고 잘 생겼는지. 조립식이라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철제라 어떤 장소든 멋지게 잘 어울리죠. 톨릭스는 1920년대 프랑스 양철공의 아들이 아연도금 방식으로 처음 만들었어요. 젊은 나이에 아연 중독으로 죽은 뒤 그 자녀들이 이어받아 말 그대로 ‘대박’을 냈죠.

강력한 철판으로 이런 ‘에지(edge)’를 내기가 쉬운 게 아닌데 양철공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톨릭스 의자는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로망 같은 존재예요. 요즘에도 새 톨릭스 제품들이 국내에 수입되는데 저는 낡은 게 좋아요. 아무리 멋있는 것이라도 세월이 흘러간 만큼 숙성이 돼야 비로소 살아서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화려한 공간에 이런 게 하나 있으면 분위기를 다운시키면서 잘난 척 하지 않고 멋들어진 공간으로 변화시키죠. 이게 제가 톨릭스에 꽂힌 이유입니다.”

톨릭스 의자를 컬렉션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저는 무역업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섬유 수출을 주로 했어요. 비즈니스 특성상 해외에 다닐 일이 많아 그때마다 앤티크나 빈티지 소품들을 조금씩 사 모으긴 했지만 그야말로 소소한 수준이었죠.

그러다 지난 2000년 장충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안’을 오픈하면서 인테리어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됐어요. 엄청난 돈을 들여 고급 테이블과 의자로 깔았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때부터 의자와 테이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유럽에서 본 톨릭스 의자에 반하게 된 거예요. 프랑스나 뉴욕, 런던 등에 가면 카페에 톨릭스 의자를 놓고 쓰는 게 유행이거든요.”

물건을 보는 ‘안목’과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텐데, 섬유 무역을 하신 게 도움이 되나요.

“비즈니스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 경험한 것도 도움이 됐겠지만, 아무래도 광고를 하는 아내(구 대표의 아내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등 명카피로 유명한 문애란 전 웰콤 대표다)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각을 배우고 유지한 것 같아요. 다만 그런 건 있어요. 장사를 오래 해본 경험으로 ‘이건 언젠가 본전은 하겠다’라는 판단은 돼요.”
카페 ‘홀릭스’ 한남동 3층에 위치한 쇼룸.
카페 ‘홀릭스’ 한남동 3층에 위치한 쇼룸.
톨릭스 의자의 가치도 달라졌나요.

“처음 제가 사 모을 때보다 많이 올랐어요. 2008년 정도에 평균 개당 150~200유로에 구매했는데 지금은 현지에서도 350유로 정도를 줘야 살 수 있어요. 연 평균 30%씩 오른 셈이죠. 그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어요.

빈티지의 매력을 알기 시작하면서 슬슬 손을 대고 있는 겁니다. 좋아해서 샀던 물건이 더불어 경제적 가치까지 올랐으니 좋지요. 제가 특별히 의자를 많이 사는 이유가 언젠가는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서예요. 스케일이 큰 나라니만큼 엄청난 물량이 필요할 겁니다.”

톨릭스의 가치를 키우는 데 대표님도 어느 정도 일조한 것 아닌가요.

“사라져가는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유럽 사람들은 너무 일상적이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당시의 디자이너들이 살아 있을 때 만든 것들은 아무리 카피를 해도 같은 느낌이 나오질 않아요. 지금은 천편일률적인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들이 판을 치고 있잖아요. 저는 사라져가는 물건을 지켜서 살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카페 1층 전경
카페 1층 전경
취미로 시작해 비즈니스로 발전
이미 소장하고 계신 물건도 많지만, 지금도 컬렉션 양이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1년에 다섯 번 정도를 해외에 나가는데 갈 때마다 엄청난 양을 들여오다 보니 그쪽에선 ‘큰손’으로 통할 정도예요. 유럽 경매나 지방에 있는 숍들을 돌면서 물건을 모으는데 일명 ‘창고 털러 간다’고 하죠.(웃음) 보통 한 번에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꽉 채우는데 금액으로 하면 한 4000만~5000만 원 정도 될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제가 해외에 간다고만 하면 기를 쓰고 말리죠.”

가족들의 반대가 많았겠군요.

“그래서 처음엔 아예 모르게 했다가 카페를 오픈하면서 보여줬어요. 창고도 당연히 비밀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를 창고에 데려갔더니 이게 무슨 고물상이냐며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동행한 몇몇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너무 부럽다, 이런 남편을 둬서 얼마나 좋으냐, 칭찬을 해대니 서서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아내도 빈티지의 아름다움에 필이 꽂혀 있어요.”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출혈이 굉장했겠는데요.

“제가 돈이 많아 가진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대신 은행을 잘 활용하고 있어요.(웃음) 그러니 가족들 성화가 대단했죠. 특히 경제, 금융 등을 전공한 딸과 아들은 어떻게 그렇게 방만하게 돈을 쓸 수 있느냐며 ‘우리 아빠 미쳤다’고 할 정도였어요.

소장하고 있는 물건들을 팔 생각을 하고, 가구 컨설팅 등에 나서는 등 비즈니스로 확대한 것도 그래서예요.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아예 2년간 아빠를 돕겠다며 내로라하는 직장을 마다하고 제 밑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막상 판매를 시작한 뒤에는 아깝지 않던가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보통은 주택 인테리어용이 아니라 카페 등 매장 인테리어용으로 사는 분들이 많아요.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봐주고 있으니 문화를 공유한다는 기분으로 아쉬움을 달래죠. 올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서 카페 메뉴에 ‘모든 소품은 판매합니다’라고 써넣으려고 해요. 필요한 분들에게는 대여도 하고요. 다른 숍과 달리 반품도 요청하면 해줘요. 제가 하나하나 아끼는 것들인데 어디 가서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건 싫으니까요.”
카페 2층 전경. 모든 가구와 소품은 구자영 대표의 컬렉션으로 채웠다.
카페 2층 전경. 모든 가구와 소품은 구자영 대표의 컬렉션으로 채웠다.
빈티지 컬렉션을 하면서 삶에서 달라진 게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다고 하는 일들이 저는 재미가 없어요. 무역업을 할 때도 밤에 술을 마시는 것보다 여기저기 소품들을 사러 돌아다니는 걸 즐기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소박한 곳들을 다니죠. 여행을 가도 화려한 곳이 아닌 진짜 시골에 가요. 그런 데 가면 시골 사람들이 자그마하게 운영하는 숍들이 있는데 거기서 보물을 만나기도 하죠. 물건도 물건이지만 그곳엔 진짜 삶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죠.”

회사명이 ‘프로젝트 300’인데요. 카페 톨릭스를 300개 만든다는 건가요.

“원래는 300억을 벌자는 뜻으로 ‘프로젝트 300’이라고 한 겁니다. 300억 원이 될지, 달러가 될지, 유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종자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할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더불어 무너진 사람을 살리는 데 쓰겠다는 목적도 있고요. 그게 어떤 식으로 실현될지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요. 카페 톨릭스 300개를 만들자는 등의 의미는 나중에 부여된 건데 사실 저는 국내에서는 3개 정도만 오픈할 생각이에요.”

향후 계획이 있다면요.

“올해부터는 카페 운영보다 무역에 중점을 둘 생각이에요. 비즈니스를 글로벌하게 확대해 중국, 방콕, 발리, 마닐라 등에 전파하면서 같이 나누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