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용 국제아동돕기연합 이사장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한 소년의 삶은 이 질문으로 시작됐다. 답을 찾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유학을 떠났고 정치, 경제, 철학을 공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답에 가까이 갔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좀 더 바르고 좋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국제아동돕기연합이 탄생했다. 고백하자면 ‘세상에 이런 삶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물론 자기 삶을 오롯이 나눔과 봉사에 헌신한 이는 많다. 그러나 그의 삶이 참으로 특별해보였던 이유는 끊임없는 탐구와 의문 끝에 찾아낸 일종의 ‘해답’ 같은 삶이기 때문이다. 결과만 두고 보면 입지전적인 성공가도를 달려온 수재가 금융 사업으로 잘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일을 접고 구호단체를 설립한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지난 삶은 모두 지금의 길을 위한 과정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세용(38) 국제아동돕기연합 이사장이다.2004년 출범한 사단법인 국제아동돕기연합(UHIC)은 기아 퇴치, 유아 사망률 축소, 질병 퇴치 등을 통해 전 세계 아이들을 돕는 구호단체다. 국내 및 해외 사업을 함께 하고 있지만 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오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탄자니아와 필리핀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보건센터를 운영하며 질병 치료와 예방 사업을 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는 아동영양센터를 운영 중이다. 다른 구호단체들처럼 후원도 진행하지만 1대1 후원 방식은 아니다. 탄자니아에서는 ‘키퍼(keeper)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의 후원하에 카페를 운영하며 수익금으로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후원자가 직접 ‘캠페인 플래너’가 돼 보다 창의적인 나눔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UHIC는 단순히 후원금을 모으고, 자원봉사를 하는 기존 구호단체의 틀을 확 깨는 그야말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단체인 것이다.
UHIC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비정부기구(NGO) 부문 자문단체가 된 건 이처럼 남다른 존재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모든 아이디어는 신 이사장으로부터 비롯됐다.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구호단체를 설립한 이유가 있나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오래전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어린 시절부터 ‘도대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가 궁금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학교에서 내년이면 가르쳐주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번번이 실망을 했어요.
넓은 세상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미국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 밀항을 하려고 가출을 했어요. 결국 어머니에게 붙잡혀 실패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가 미국에 보내주셨죠. 그래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대학에 가지 않고 세상을 떠돌며 그 답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영국 옥스퍼드대에 입학을 하게 됐죠. 옥스퍼드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긴 대학인 데다 많은 석학들이 있고, 거기다 정치, 경제, 철학을 모아놓은 학과가 있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곳에서 답을 찾은 건가요.
“결과적으로 찾긴 했죠. 정치와 경제가 아닌 철학에서 찾았어요. 정치를 배울 때 보니 최고 정치가의 선정 기준이 ‘태평시대를 열었다’도 아닌 ‘최대한 많은 법안을 통과시켰느냐’이더라고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의구심이 들었죠.
경제도 마찬가지였어요. 효용 극대화니 물질 대체니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죠. 좋은 물건만 가지면 행복한 줄 아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철학을 배우면서 답을 찾았어요. 제가 궁금했던 건 도대체 무슨 이유로 100층짜리 빌딩이 세워지고, 수만 명이 어떤 신념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지, 어떻게 사회가 발전해 가는지가 궁금했는데 모든 게 철학으로 대답이 되더군요.
그런데 심취해 공부하다 보니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의문에 봉착했어요. 제가 20년간 찾아 헤맸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보니 또 다른 의문이 생긴 거죠. 나 혼자만 위해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세상을 좀 더 좋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요.”
그래서 구호단체를 설립한 거군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면 되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금융을 공부했고, 사업을 해 돈을 벌었죠. (신 이사장은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사 서던메이드 코리아의 대표이사를 맡아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돈을 벌면서 회의에 많이 빠졌어요.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었는데, 과정에 치이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해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더군요. ‘나중에 뭔가를 하겠다는 건 아무 소용없다.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힘들더라도 당장 한번 해보자’ 해서 사업을 그만두고 단체를 설립했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지만 굳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건 아이들은 자기 의지나 선택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게 아니니까요.”
새로운 단체를 설립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었을 텐데요.
“우리나라 NGO는 거의 외국에서 들어온 거예요. 우리는 신생이다 보니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어 후원금을 모으는 것도 그렇고 정말 힘들었어요. 다행히 제가 경제학 공부도 했고 자본주의의 끝이라고 하는 금융을 배웠기 때문에 그걸 많이 활용했죠.
사실 자본주의와 NGO는 반대의 길이잖아요. NGO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틀이나 이념과 맞지 않고 뭔가 다른 가치를 위해서인데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를 활용할 줄 모르죠. 저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대화해서 접목시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본주의와 접목을 어떻게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 단체를 설립할 때만 해도 나눔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분들이 많은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사람들이 기업을 평가하거나 선택할 때도 나눔이나 사회공헌 내용 등을 많이 보죠. 누군가는 지금 시대를 자본주의의 몰락이라고까지 하던데 사실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뭔가 빠져있어요.
이윤의 극대화만 생각하다가 주주들만 배불리는 시스템에서 주변의 힘든 사람, 지역 사회를 더 생각하고 나눔을 충족시키는 기업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죠. 기업들이 더 긴장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긴장시키는 역할을 우리 NGO들이 해야 하죠.
NGO도 달라져야 해요. 손 벌려서 기업들에 구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선 CSV 즉, 공유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과 후원자가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서로 도움이 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거죠.”
카페 ‘유익한 공간’이 대표적인 사례겠군요.
“그렇죠. 저희가 삼성 에버랜드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유익한 공간’은 수익금 전액을 아동 돕기에 써요. 자, 두 개의 비슷한 카페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한쪽은 모든 수익이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다른 한쪽은 모든 수익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고 하면 고객들이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후자겠죠.
유익한 공간은 삼성과 같이 하는 와타투(스와힐리어로 ‘세 사람’이라는 뜻) 프로젝트로 삼성 에버랜드가 식자재를 지원하면 그 식자재로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형태예요. 한 사람을 위한 카페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재료비를 절감하겠지만, 식자재를 후원받는 카페는 최대한 좋은 재료를 써서 좋은 음식을 내놓겠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수익을 최대한 내서 사람들을 도울 테니까요. 기업 입장에서는 1을 줬는데 10으로 불려서 도우니 얼마나 좋아요. 저희도 어차피 사무실이 필요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카페에서 모든 걸 해결하니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효율적이죠.
고액 후원자들이 주주 역할을 하며 미혼모 교육과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나비 프로젝트도 CSV의 예가 될 수 있죠. 기업들은 앞으로 이런 가치 모델을 만들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체제로 만들어야 해요.”
굉장히 아이디얼한 나눔의 방법이군요.
“이런 아이디어들이 바로 우리 단체의 경쟁력인 것 같아요. 자본주의가 원하는 게 뭔지 꿰뚫고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자본주의와 공생하고 적극 활용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겁니다. 그러려면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머리가 좋고 한 발짝 앞서 있어야 해요.”
하지만 기업들도 나름 사회공헌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굳이 NGO 단체와 공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 기업이 있어도 돼요. 사회공헌이 트렌드가 되면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기업에 존재하는 사회공헌팀이나 부서가 기업의 목적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하지만 사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 추구가 목적이잖아요.
그게 처음 취지라면 사회공헌은 그 반대가 되는 것이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회공헌이라면 바른 방법이 아니죠. 제가 구상하는 방향은 대기업들이 사회공헌팀을 따로 두지 말고 그 비용을 우리가 일부분 받아서 컬래버레이션(협업)하는 시스템이에요. 서로 공생하는 거죠.” 유엔이 주목하고 있는 키퍼 프로젝트는 뭔가요.
“적은 돈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이죠. 전 세계가 유엔 주도하에 몇십 년 전부터 수조 원을 모아 빈민국에 나눠주고 있는데 사실 준 만큼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효과도 없었고요. 문제는 돈을 잘못 썼기 때문이에요.
돈을 그냥 빌려주다시피 하고 돈이 별로 필요 없는 도시에다 갖다 주니 오지에까지는 도움이 가질 않는 거예요. 키퍼 프로젝트는 현지인을 고용해 교육한 후 다시 오지로 보내 대모 역할을 하게 하는 겁니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 과정과 결과를 유엔에 보고해 성공적이라는 판단이 들 경우,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UHIC는 개인 후원 방식이 좀 다르던데요. 가장 대중적인 1대1 결연을 하지 않는다면서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그동안 바뀐 게 참 많아요. 결연을 하기는 했어요. 다만 원칙을 세우기를 운영비는 우리가 다 내고 후원금은 전액 후원하겠다는 거였어요. 사실 1대1 결연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다른 단체의 경우는 반 이상이 운영비로 들어가요. 운영비 문제도 그렇지만 결연을 하다 보면 어떤 아이는 생활이 나아지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단체는 1대1 결연이라고 해놓고 지역 사회를 위해 쓰인다고 공지하는 데도 있죠. 우리는 한 달에 한 생명 살리기로 바꿨어요.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우리가 선정하고, 후원자들은 매달 다른 아이를 돕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 투명하게 운영하면서 최대한 많은 도움이 돌아가게 되죠. 직접 매칭이 되니 중간 관리비도 전혀 들어가지 않고요.”
그렇지만 단체 운영비는 필요할 텐데요.
“우리는 운영비를 따로 모금해요. 저는 여기서 월급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데 금융이나 컨설팅 등을 통해 외부에서 번 돈을 오히려 여기에 많이 내고 있죠. 후원하는 방법으로 운영비 지원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어떤 후원자들은 운영비 지원도 의미 있다고 판단해서 사업비 지원만을 고집하는 분도 있죠.”
단체 슬로건이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이죠.
“원래는 ‘투모로 포 칠드런(Tomorrow for children)’이었는데, 내일보다는 지금 이 순간 도와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바꿨어요. 저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것도 있고요. 지금 당장 못하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나중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
어떤 순간이 가장 보람 있었나요.
“매 순간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순간이에요. 도움의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늘 직접 오지에 들어가는데, 현지인들과 후원자들을 설득하는 건 힘든 일이죠. 물론 도움의 결과는 알 수 없는 거지만, 확신을 갖고 사람들을 설득해 그게 실현됐을 때, 그래서 아이들이 살려지고 도움이 직접 닿는 걸 볼 때 말로 할 수 없는 꽉 찬 느낌을 받아요.
저는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 ‘우리는 모두 다 두근거림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오지를 가다 보면 정글 같은 곳에도 가고 정말 위험한 순간도 많이 만나요. 거기 가면 심장이 막 두근거리죠. 그런데 이 두근거림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면 아주 작은 벌레를 봐도 깜짝 놀라고 무섭지만, 설렘으로 받아들이면 뭔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마저 하게 돼요.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세상 누구에게나 두근거림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고 원칙을 지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힘들어도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UHIC의 궁극적 목표가 뭔가요.
“우리 단체에는 유이(UE·Unite Earth)라고 환경, 질병, 전쟁, 인권, 동물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 이슈 미디어가 있어요. 책도 60여 권 출간했고 관련 동영상도 만들어 심각성을 알리고 있죠. NGO들이 처음에 좋은 취지로 출발하지만 한 길만 가다 보면 거기 매몰되는 우를 범해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유이를 만들었죠. 특정 이슈만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눈을 NGO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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