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환절기에 대비하듯 인생의 환절기에도 대비해야 한다. 첫 번째 인생을 보내고 이제 자신을 위한 제2의 인생으로 접어드는 시기, 이때가 바로 인생의 환절기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노래한 고은 시인의 시를 인생에서 실현하려면 인생 후반을 허우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연금은 내려올 때 꽃을 보며 즐기기 위한 마음의 여유와 체력을 유지해주는 안식처이자 영양제다.


자연은 순환하면서 이채로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봄에는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연녹색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왕성한 성장의 기운을 대변하는 크고 짙푸른 잎사귀를 빚어내고,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을 선물하고, 겨울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묵은 찌꺼기를 벗어버리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자연은 다음 계절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지금 계절에 충실하다.
그러나 계절은 계단처럼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원처럼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결국에는 변하고 마는,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경이(驚異)다.

계절 변화의 특정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 자연의 비밀주의 탓에 인간은 그 일정 시기를 환절기라 부르며 우회한다. 그러면서 그 시기를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잡는다. 이는 인간의 지혜라 할 만하다. 특히 따스한 기운이 전혀 반대 성질인 차가움으로 변하는 환절기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한다.

김장을 담그고, 두터운 옷을 준비하고, 바람구멍을 막는 등 겨울에 대비한다. 요즘에는 독감 예방주사가 환절기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유행성 독감이 창궐하고 예방 백신이 부족할 때면 언론에서 가만두지 않을 정도다.

자연에 환절기가 있다면 우리 인생에도 환절기가 있지 않을까. 사람도 봄날 연한 새싹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태어난다. 질풍노도와 같은 청년기를 거쳐 사회와 가족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란다. 무성한 나뭇잎이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우리 인간을 보호해주는 것처럼. 장년기에 접어들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을 후배들과 사회에 나눠주는 원숙한 인격체로 자리매김한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인생도 자연처럼 환절기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던 첫 번째 인생을 보내고 이제 자신을 위한 제2의 인생으로 접어드는 시기, 이때가 바로 인생의 환절기다. 자연의 환절기가 따스함에서 차가움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질의 세계로 접어드는 시기이듯, 인생의 환절기 역시 그 이전의 시기와는 매우 다른 세상으로 전환하는 기간이다.
[RETIREMENT PENSION] 인생의 환절기를 생각하다
솔개의 생에서 배우는 교훈

이 환절기는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으로 가는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 시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솔개의 우화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준다.

솔개의 수명은 70년 정도인데, 40년이 되면 그렇게 날카롭던 부리와 발톱은 물론이고 윤기가 좔좔 흐르던 깃털마저 모두 낡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40년이 되면 약 6개월 동안 부리와 발톱을 바위나 나무 등에 부딪쳐 없애는 고통을 감수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30년을 위해서는 새로운 부리와 발톱, 깃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인생의 환절기가 코앞인데도 애써 외면하며 다른 일에는 여전히 정열적이다. 인생의 환절기에 근접했거나 이미 접어든 40대와 50대가 교육과 결혼이라는 자녀 뒷바라지 수레를 밀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는 매우 서툴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낯선 사람이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의 환절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남아 있는 30~40년은 장밋빛일까, 먹구름일까. 우리 모두 답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처럼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으려면 솔개의 환골탈퇴처럼 정서적인 면에서는 과감한 변신을, 재정적인 면에서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왕년의 나’를 버리는 환골탈퇴가 필요

먼저 정서적인 면에서는 ‘과감한 변신’이라는 처방전을 손에 들고 왕년의 나를 치료하며 끝없는 시간의 늪을 건너야 한다. ‘정년 후 8만 시간’이란 말이 있다. 하루 11시간의 여유시간을 60세부터 80세까지 20년 동안 더하면 약 8만 시간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를 연평균 근로 시간으로 나누면 현역 시절 36년 동안 일하는 기간에 해당한다.

생각보다 정년 이후의 시간이 꽤 길다는 뜻이다. 이는 60세에 은퇴해 80세까지 산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만약 100세까지 산다면 은퇴 후 여유 시간은 16만 시간이 되며, 이를 일하는 기간으로 환산하면 72년에 해당한다. 길어도 ‘너~무’ 길다. 제2의 인생이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등산으로 비유하면, 과거에는 오르는 길이 완만하고 길었다면 내려오는 길은 짧고 가팔랐던 반면에 지금은 내려오는 길이 오르는 길 이상으로 완만하고 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노래한 고은의 말을 실현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고은이 노래한 꽃을 인생에서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인생 후반의 광대한 시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그 많은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자만이 만발한 인생의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왕년의 나를 버리는 환골탈퇴가 필요하다.

인간 역시 동물인 이상 생존을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 은퇴 이후에도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은 쓰고 싶은 욕망을 꾹 참고 돈을 모은다. 문제는 돈을 모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돈이 죽을 때까지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돈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의 경쟁에서 내가 져야 한다.

돈과의 경쟁에서 지기 위해서는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아낀다고 능사는 아니다.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돈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금에 가입하는 것이다. 몇천만 원 이상의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은 든든할지 몰라도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노림꾼들에게 빼앗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금에 가입하면 이런 문제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매달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종신연금으로 하면 죽을 때까지 돈이 고갈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금은 내려올 때 꽃을 보며 즐기기 위한 마음의 여유와 체력을 유지해주는 안식처이자 영양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 최저 생계비 이하의 연금 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오히려 생명을 단축할 수 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전략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은 연금 선택에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부족한 목돈으로 일정액 이상의 연금을 받으려면 종신이 아닌 일정 기간 동안만 연금을 받는 유기연금을 선택하면 된다. 정년퇴직 이후부터 공적연금 수령 시점까지 소득공백기를 유기연금으로 보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른바 가교연금이다. 돈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그 돈을 어떻게 빼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세심한 인출 전략을 수립하자.

나아가 정년퇴직 이후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직업을 구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른바 가교 직업이다. 가교 직업을 선택하면 생활비를 버는 것은 물론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할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1석3조인 셈이다. 가교 직업을 구할 때 특히 필요한 게 ‘왕년의 나’를 버리는 것임을 명심하자. 가교 직업은 벌이도 적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번듯한 자리일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흘러간 것은 가고 과거의 것은 온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생의 환절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긴 여생을 좌우한다. 제2의 인생은 인생 환절기의 그림자임을 명심하자.



일러스트 김영민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