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CHANGERS

일본에서는 생면에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로 직접 요리한 라멘집이 동네마다 있다.

일본인에게 라멘의 인기는 뜨겁다.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인스턴트 라면의 인기는 국내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 인스턴트 라면 시장에 새로운 게임체인저(기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품)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도요수산(東洋水産)이 2011년 11월에 발매한 ‘마루짱 세이멘(マルちゃん正麵)’이다.
도요수산, 마루짱 세이멘“일본 인스턴트 라면 시장 판도를 뒤집다”
마루짱 세이멘은 1958년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개발된 이래 2차 혁명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마루짱 세이멘은 마켓마다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현재 잘 팔리고 있고, 이 제품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인스턴트 라면의 인기가 회복되고 있다.

가격은 5개들이가 525엔으로 다른 제품보다 비싼 편이지만 판매량에서 기존의 스테디셀러를 밀어내고 톱으로 올라설 기세다. 지난해 연말 니케이트렌디가 발표한 ‘2012년도 히트 상품 30’에도 포함돼 있다.

마루짱 세이멘은 이름부터 기존 ‘라멘’을 부정하며 ‘세이멘(정면·正麵)’이라고 호칭하면서 라면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마루짱 세이멘을 먹어본 소비자들은 “기존의 인스턴트 라면을 초월했다”, “마치 파스타 같은 식감이다” 등의 의견을 내놨고 업계에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박”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마루짱 세이멘의 혁신과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큰 폭으로 진화시킨 면에 있다. 대부분의 인스턴트 라면은 기름에 튀긴 면을 사용한다. 하지만 마루짱 세이멘은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면을 그대로 건조시켜 소비자가 생면 본래의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마루짱 세이멘의 생면 건조제법은 현재 특허출원 중이다. 그리고 간장 맛, 된장 맛, 소금 맛, 돼지사골 맛 네 종류의 국물 맛도 일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마루짱 세이멘’은 2012년 11월까지 1년간 누적 출하수가 2억 인분을 돌파했다. 발매 당초에는 연간 매출을 1억 인분으로 잡았으나 2012년 6월 이미 웃돌았다. 예상을 넘어선 판매 호조에 도요수산은 지난 5월 생산라인을 하나 더 추가해 총 2개의 라인을 풀가동하며 밀려드는 주문에 수량을 맞추고 있다. 매출 목표도 100억 엔에서 200억 엔으로 수정했다.

도요수산은 비용은 줄이면서 내수시장의 이익을 유지하고 더불어 해외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식품업계의 공통적인 과제에 있어 견실하게 사업을 진행해왔다. 도요수산은 내수에서 닛신식품에 이어 업계 2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해외 진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도요수산의 미국 즉석 면 시장 점유율은 약 60%, 멕시코는 80%다. 내수와 해외에서 견실하게 수익을 거두면서 재원의 많은 부분을 신상품 개발에 투자한 결과 마루짱 세이멘이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다.

마루짱 세이멘 발매 이래 일본 라면업계는 신개념 라면의 개발 경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12년 8월에는 닛신라오(日淸ラ王) 봉지 라면 시리즈가 등장했고, 9월에는 산요식품에서 ‘삿포로이치방 멘노치카라(麵の力)’ 등 신제품이 발매됐다. 도요수산의 히트에 자극받은 경쟁 기업들이 신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모두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생면의 느낌을 강조한 제품으로 현재 일본 시장에서 매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마루짱 세이멘으로 시작된 인스턴트 라면 2차 대전은 2013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된 1960년대 이래 수십 년 동안 특별한 변화가 없던 일본 식품업계가 현재 술렁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 라면업계의 신상품 개발 붐과 혁신 노력은 한동안 지속되며 업계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