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EUR STORY

2002년 한반도를 붉은 물결로 물들인 단군 이래 가장 흥분되는 사건을 기억하는가. 바로 월드컵 4강의 위업을 이룬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단과 그 감독 거스 히딩크, 그리고 12번째 선수였던 대한민국 응원단 ‘붉은 악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의 감동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승리의 기쁨을 샤토 탈보(Chateau Talbot)와 함께 하겠다고 했던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가 기억나는지. 그가 좋아하는 와인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샤토 탈보는 매출이 급증해 그 대표까지 한국에 찾아와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와인 애호가의 종착지
샤토 탈보는 프랑스 보르도의 지롱드강 좌안 메도크 지역의 한 작은 마을인 생줄리앙 마을에 속해있다. 주도인 보르도에서 지롱드강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마고 마을을 지나 포이약 마을 못 미쳐 아름다운 생줄리앙 마을이 나온다.

보르도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이전까지 영국령이었던 곳으로 보르도를 지키던 영국 장군 탤벗이 1453년 가스티용 전투에서 패해 전사하면서 영국은 프랑스 내에 가지고 있던 가장 풍족한 영토 보르도를 내주고 섬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탤벗 장군은 전사하고 없지만 그의 영지였던 곳을 기념하는 샤토 탈보는 지금도 남아 당시의 풍족했던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샤토 탈보가 속해있는 생줄리앙 마을은 메도크 지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마을이지만 이미 1855년 와인 등급 분류 시 11개의 샤토가 그랑 크뤼에 분류될 만큼 좋은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와인 전문가들은 이 마을의 와인이 마고 와인보다는 향과 맛이 더 집약돼 있고, 포이약 와인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와인 애호가의 종착지
백년전쟁에서 당시 국력으로 비교해보면 3배 이상이나 되던 프랑스를 오랜 기간 철저하게 농락했던 영국군은 시골 처녀 잔다르크에 의해 새롭게 일어나 전열을 다진 프랑스군에 의해 패퇴하게 된다. 프랑스 동쪽 변방이었던 동레미 출신의 잔다르크는 시농성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 정당한 왕세자였지만 영국 측의 모함으로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샤를 7세를 랭스까지 모시고 가서 대관식을 거행해 왕위에 오르게 한다.

랭스는 샹파뉴 지방의 주도로서 부르고뉴공국의 수도였던 곳이고, 지금은 샹파뉴 생산의 중심지다. ‘샴페인’이라는 명칭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샹파뉴’는 랭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고 고귀한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인 와인의 명칭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가까운 제과점에서 팔던 복숭아 스파클링 와인도 ‘샴페인’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EU의 엄격한 명칭통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샹파뉴’에서 나온 스파클링 와인이 아니면 ‘샹파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돼있다.
랭스는 모든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니 만큼 가장 고귀한 와인을 생산해 대관식 때 사용했다.
랭스는 모든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니 만큼 가장 고귀한 와인을 생산해 대관식 때 사용했다.
프랑스 왕 대관식에 사용되는 최고의 와인

프랑스의 국왕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닌 랭스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개최하는 이유는 496년 프랑스의 첫 번째 국왕이었던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바로 랭스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파리에서 대관식이 행해진 경우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미남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필립 4세가 1284년 샹파뉴 지방을 결혼지참금으로 가지고 왔던 잔 드 나바르와 결혼하면서 상파뉴는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영토가 됐고, 그 상징성을 기념하기 위해 이후로는 모든 대관식이 랭스에서 행해지게 됐다.

샹파뉴는 원래 레드 와인이 생산되던 곳이었고, 그 수준은 대관식에 사용할 만큼 최고였지만 루이 14세 시대에 오늘날과 유사한 샴페인 제조법을 개발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식료품 담당수사였던 돔 피에르 페리뇽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레드 와인 대신 스파클링 와인인 ‘샹파뉴’가 이 지역의 대표 와인이 된 것이다.

샹파뉴는 보관에 있어서도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750ml 한 병의 샹파뉴에는 20병 이상의 용량에 해당하는 2억 개의 이산화탄소 방울이 녹아있고, 그 내부 압력이 6기압에 달할 정도로 고압 상태다. 따라서 두꺼운 유리병이 생산되기 전에는 봄이 되면 샹파뉴 지방에 샹파뉴 병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었다.

그렇게 고압 상태이기 때문에 지구상 어떤 물질도 샹파뉴 병 안으로 침투할 수가 없다. 와인을 상하게 하려면 산소든 세균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와인병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할 텐데 워낙 와인병 안이 고압이다 보니 도대체 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샹파뉴는 스틸 와인(거품이 없는 일반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과 대비해 스틸 와인이라고 부른다)에 비해 보관이 훨씬 더 용이하다. 스틸 와인처럼 철저한 보관 조건을 갖추지 않더라도 잘 보존될 수 있다. 다만, 마시기 직전에 얼음 버킷에 30분 정도 넣어 시원하게 해서 마시든지 아니면 4시간 전에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만들면 된다.
와인 애호가의 종착지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우선 칠레나 호주의 첫 키스처럼 강렬한 와인을 좋아하게 된다. 이어서 균형 잡힌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 특히 보르도 지방의 와인을 찾게 되고, 다음 단계에는 부르고뉴의 와인으로 관심이 넘어가게 된다.

부르고뉴의 레드 와인은 대부분 피노 누아르로 만들어지는데 와인을 처음 접한 사람이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신세계 와인에 이어 보르도 와인으로 와인의 지경을 넓힌 사람이라야 다음 단계에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르에 빠지게 돼 있다. 그와 더불어 영롱한 거품이 나는 샹파뉴는 와인 애호가들의 마지막 종착지가 된다.

샹파뉴는 클로비스의 대관식 이래 항상 중요한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음료가 됐다. 새로운 여객선이 첫 운항을 시작할 때도 샹파뉴로 축하했고, 1960년대 말 초음속 제트기인 콩코드기가 등장했을 때나, 영불해협의 지하터널을 지나 영국과 프랑스를 이어주는 유로스타가 첫 개통했을 때도 샹파뉴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였다.

세계의 지붕 안나푸르나를 최초로 등반한 프랑스의 산악인 모리스 에르조그(Maurice Herzog)는 정상에 오른 다음 그의 등반팀과 함께 샹파뉴를 터뜨렸다. 또 다른 프랑스 산악인 피에르 마조(Pierre Mazeaud) 역시 1978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샹파뉴를 마셨다. 프랑스 우주비행사 장루 크레티앙(Jean-Loup Chretien) 역시 우주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샹파뉴로 기쁨을 나누었다. 샹파뉴는 기쁨의 순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음료다.

아직까지 투자할 만한 와인은 보르도 지역의 와인에 집중돼 있고, 약간의 부르고뉴 와인과 몇몇 프랑스 이외 지역의 와인이 추가돼 있지만 다음 단계로 투자할 만한 와인은 샹파뉴가 유력하다. 물론 모든 샹파뉴가 다 투자 대상은 아니지만 특별히 질 좋은 포도가 생산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부여되는 빈티지 샹파뉴의 경우는 투자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보관도 일반 스틸 와인에 비해 더 용이하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사용해야 하는 샹파뉴는 다음 단계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될 것이다.


김재현 하나금융WM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