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 CLOTHING CULTURE
파리.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낭만의 도시. 아름다운 센강과 반짝이는 야경, 에펠탑, 명품 숍들과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선 여성 쇼퍼들. 아마도 파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하지만 사실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패션은 연말의 샹젤리제 거리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 자체로 이 도시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인지 보여주는 시간과 장소이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대 남성복에 대해 논하자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나폴레옹 시대의 흰색 타이츠와 긴 부츠, 견장 달린 군복 상의, 화려한 모자, 전쟁을 하면서 폼을 내던 모습 정도랄까.
사실 프랑스의 옛 군복은 군복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디테일과 훌륭한 라인을 가지고 있다(옛날 서민들은 귀족들과는 달리 멋지게 옷을 차려 입을 기회가 없어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 군인을 모집하기 위해 전투복을 멋지게 개선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파리는 여성들만 멋을 내는 여성들의 도시일까.
바로크, 신고전주의부터 큐비즘까지 수많은 양식을 가진 예술사 속에서도 프랑스는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 인상파까지 모두를 이끌었던 ‘예술 국가’다. 현대 예술을 이끌어 오면서 남성복에서는 별다른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150여 년간 이어진 끊임없는 전쟁 탓일까. 나폴레옹 이후 그들의 예술적 정체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개선문, 에펠탑, 오르세 미술관(그 안의 수많은 걸작들), 퐁피두센터 등에서 전통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를 창조해가는 그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창조한 새로운 문화는 낭만적이며 한편으로 남성적이다.
파리에서 가장 세련되고 지적이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실존주의 철학가, 작가 등이 창조한 사상과 문학의 중심지로서의 향기가 아직도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행의 도입과 회전이 빠르고 파리의 부르주아적 분위기가 가장 많이 나는 명소로 최근에는 명품 숍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세브르(Sevres) 거리와 그르넬(Grenelle) 거리, 파리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Bon Marche),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명품이라 할 수 있는 에르메스 매장과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자에겐 마치 파리에 숨겨놓은 보물과도 같은, 유명한 아르니스(Arnys)가 있다. 아르니스는 부르주아 파리지앵 분위기가 가장 잘 묻어나는 프렌치 남성 브랜드라 파리를 방문할 때마다 잊지 않고 찾는 숍이다.
이곳에는 앵발리드의 군사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옷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웨어러블 프렌치 시티 웨어’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아르니스의 옷은 우아함을 특히 강조해 라인들이 중성적이면서 부드럽다. 높은 채도의 원단을 많이 사용하는 것 또한 특징인데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는 특별한 브랜드다. 겨울비 속에 우산을 들고 아르니스를 입으면 마치 19세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곤 한다.
몽테뉴 거리는 세계 명품 브랜드들의 쇼룸이라고 할 정도로 거대한 명품 숍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아테네 호텔에서 걷기 시작해 이 거리를 한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명품 트렌드 파악이 충분하다.
크리스챤 디올, 니나리치, 클로에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본사가 위치해 있기도 하며 그 화려함에 어떤 때는 거대한 캣워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쇼핑도 쇼핑이지만 니나리치 본사 앞의 커피숍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잔뜩 멋을 낸 쇼퍼들을 보는 것도 큰 볼거리다.
엘리제 궁에서 방돔 광장 방향으로 이어지는 생토노레(St. Honore)는 그야말로 ‘워킹 앤드 쇼핑 스트리트’로 파리 로드숍 쇼핑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이 길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통과하기에는 너무 긴데(필자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이 긴 거리에 끊임없이 숍들이 늘어서 있으니 볼 것도, 살 것도 많은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프랑스 부호들(특히 여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쇼핑 거리로 모든 명품이 다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세계적인 스타들도 꽤나 자주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마레 지구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통적인 프랑스 궁전이 있는 보주(Vosges) 광장 근처로 아틀리에와 신진 디자이너 숍들이 많다. 여담이지만 보주 광장 근처의 호텔 파비옹 드 라 렌(Pavillon de la Reine)도 인상적이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 또한 추천할 만하다.
패션계에서도 어김없이 이 도시만은 다른 세상 분위기이니, 과연 파리지앵들은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파리 방문은 멈추지 못할 것 같다. 그즈음엔 파리의 남성복도 존재감을 갖지 않을까. 반짝이는 샹젤리제 거리처럼.
글·사진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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