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은퇴자의 절반 이상은 자녀로부터 매달 33만 원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퇴 후 자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게 매우 자연스런 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게 성공적인 노후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45세 직장인 홍길동 씨는 매월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께 20만 원을 보내드린다. 최근에는 홀로 사시는 장모님께도 같은 액수의 용돈을 드리면서 양가 부모님께 나가는 돈이 월급의 1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중학생인 두 아이의 교육비와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까지 생각하면 노후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노후 준비가 미처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왔다. 공적·사적연금 제도가 은퇴자들의 노후소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 특히 성인 자녀들의 금전적 지원은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노인들의 중요한 소득 원천이 되고 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최근 국민노후보장패널(2009)을 사용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자의 54.9%가 자녀로부터 월 평균 33만 원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 중 3분의 2가량은 아들, 나머지 3분의 1은 딸이 지원해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 자녀의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은퇴자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자녀는 노후를 위한 보험’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녀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부모가 은퇴 후 자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자연스런 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자녀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최대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부부가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을 성공적인 노후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녀에게 자원을 제공해왔던 부모가 반대로 자녀에게서 자원을 받게 되는 역할 변화는 ‘독립성의 상실’, 혹은 ‘의존성’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노후의 심리적 만족감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은퇴자들의 경우, 자녀의 경제적 지원이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노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은퇴자들의 경우, 자녀의 경제적 지원이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노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 61.4% “은퇴 준비 스스로 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2009) 조사에 따르면, 노후 대책을 마련하는 데 가장 주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본인(61.4%)과 배우자(25.3%)를 꼽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녀에게서 도움을 받겠다는 사람들은 2.3%에 그쳤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응답한 베이비부머들 중 실제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43.3%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경우에도 절반 이상인 57.6%는 노후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어느 수필가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골집에서 혼자 밥해 먹고 살던 한 노인이 어느 날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서울에 있는 아들 집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며느리는 고사하고 믿었던 아들조차 ‘며칠 지내다가 내려가시겠지’하는 눈치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혹여 점심때라도 놓치고 들어오면, 강아지 밥은 때 맞춰 챙겨주면서 노인네 끼니는 신경써주지 않았다.

목이 말라 부엌에라도 들어가려고 하면 파출부가 식겁을 했다. 열흘쯤 그렇게 머물면서 노인은 아들 집의 역학구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손자는 1번, 며느리가 2번, 돈 벌어오는 아들이 3번, 재롱 부려주는 강아지가 4번, 며느리 대신 일을 해주는 파출부가 5번, 군식구나 다름없는 자신은 6번으로 꼴찌였다. 노인은 결국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쪽지 한 장 남기고는 시골로 내려갔다. “3번아, 6번은 내려간다.” 우리가 처한 고령화 사회의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한 이야기다. 독립적인 노후를 꾸려 1번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6번 신세로 전락해 남은 세월을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사자들의 몫이다.
[WEALTH CARE] 노후 만족도와 자녀 의존도의 상관관계
행복한 노후를 결정짓는 키워드 ‘경제적 자립’

얼마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부모는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은퇴자들의 경우, 자녀의 경제적 지원이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경제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은퇴자들은 성인 자녀의 경제적 지원 여부가 노후 삶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노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따라야 한다.

첫째, 재무적 자립은 노후 삶의 만족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조사 결과 경제력을 갖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모든 영역에 있어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만족도가 더 높았는데, 이는 부모의 재무적 자립이 자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임을 의미한다.
[WEALTH CARE] 노후 만족도와 자녀 의존도의 상관관계
재무적 자립을 위한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녀의 교육비나 결혼 자금 등을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노후 준비를 미루는 것만이 자녀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노후 자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둘째, 금융소득을 확보해야 한다. 같은 연구에서 금융소득이 많을수록 노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부동산 소득은 개인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도 불구하고 정작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요즘과 같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과거와 같은 부동산 호황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동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녀에게 생활비를 기대하기보다는 노후 준비의 방편으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권한다.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미리 관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중·고령자 가구는 자산이 부동산에 주로 편중돼 있는데다, 자산을 유동화시키지 않는 경향이 강해 이러한 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셋째, 의료비 걱정을 줄여야 만족스러운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연구 결과, 신체적 건강상태가 좋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민간 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나이가 들수록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고, 그에 따라 의료비 부담도 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민간 건강보험을 이용해 노후 의료비 지출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윤원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