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 경제용어 교실

세계 집값의 재편 현상이 눈에 띄게 심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선진국과 신흥국, 특히 한국과의 ‘역(逆)차별화’ 혹은 ‘외톨이’ 현상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다양하고 구조적인 변수들이 결부돼 있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집값 회복세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작년 하반기 이후 집값 상승률은 분기당 평균 5%에 달한다. 독일의 집값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베를린의 경우 올 들어 20% 이상 급등했다. 정도차가 있지만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대부분 선진국의 집값도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집값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앞날도 불투명하다.
세계 집값 상승세 속에 한국이 따로 노는 ‘외톨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보다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
세계 집값 상승세 속에 한국이 따로 노는 ‘외톨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보다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
선진국의 집값이 상승하는 데에는 일단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성격이 강하다. 체리 피킹이란 열등재나 기펜재가 아닌 한 특정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반드시 균형 가격으로 수렴한다는 시장원리를 감안한 저가 매수 투자 전략이다. 미국 집값만 하더라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그 이전보다 40% 이상 폭락한 지역이 많다.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에 이어 에코붐 세대가 속속 주택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집값 상승의 요인이다. 선진국의 인구 구성을 보면 197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에코붐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 등 선진 신흥국에 비해서는 매우 두텁다.

앞서 언급한 요인보다 선진국의 집값 상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정책 요인이다. 위기가 4년 이상 지속되면서 재정 지출, 금리 인하 등과 같은 전통적인 경기 부양 수단은 거의 바닥이 났다. 이 상황에서 추가 경기 부양과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산효과(wealth effect)’에 의존하는 방법도 정책당국자들이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자산효과란 부동산 등 자산가치 변화에 따라 소비와 경기에 미치는 긍정 혹은 부정적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는 일반적으로 항상소득가설과 생애주기가설에 따른 소비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부분 가구는 전 생애에 걸쳐 소비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어 현재 소득과 미래기대 소득뿐 아니라 보유 자산의 가치 등에 영향을 받는다.

보유 자산의 가치 변동은 자산 처분, 자산 담보대출 등을 통한 자금 조달 경로로 소비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역으로 자산가치 하락 시 소비지출 감소를 유발하게 된다. 자산효과는 가계 자산 구성, 금융자산 축적 정도, 주거 형태 차이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주택의 자산효과가 주식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자산 시장의 경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주식 자산이 1달러 늘어나면 소비는 3∼4센트 증가하는 반면 주택 자산의 소비 증대 효과는 10∼15센트로 주식에 비해 3배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집값이 하락할 경우 소비에 미치는 역자산 효과는 상승할 때보다 더 크다고 추정했다.

국내 자산 시장에 대해서는 연구별로 결과의 일관성이 나타나지 않으나 주택에 의한 자산효과는 실증적으로 관찰되는 가운데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보다 하락할 때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환금성이 높다고 인식된 아파트의 경우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의 탄력성은 0.23으로 오히려 0.1∼0.15인 미국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이 같은 결과는 금융 위기 때와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세계 집값 상승세 속에 한국이 따로 노는 ‘외톨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보다 과감한 역할이 요구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