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LEGO)는 꿈의 블록이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의 사각에 도드라진 땡땡이 꼭지의 블록은 중세의 성이 되고 우주선이 되고 슈퍼맨이 된다. 아이들은 신난다. 쌓고 부수고 만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상자에 던져버린다. 레고는 하나의 세포이자 거대한 우주의 몸통이다. 어른이 돼 바라본 레고 나라는 천상의 기쁨과 행복이다. 동화 나라에 들어가 놀던 기억은 아름답다. 그 속에는 세상 근심, 걱정이 없다. 오직 호기심뿐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레고의 숲을 거닐어본다. ‘인디애나 존스’와 ‘스타워즈’의 디지털 레고는 블록이 진화한 어른을 위한 장난감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 레고의 문 안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은 어른의 장난감으로 성장했고 마침내 레고 랜드의 왕국을 건설한다. 레고는 예술이다. 목수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은 요요 장난감에서 시작한 레고는 이제 아이들의 장난감을 넘어 어른의 꿈이 됐다. 작은 블록 하나가 만든 놀라운 세상, 그것이 레고다. 레고의 역사
레고의 고향은 덴마크다. 레고는 ‘잘 놀다’는 의미의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의 앞 두 글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레고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창업자는 1916년부터 덴마크의 작은 도시 빌룬에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든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이다.
크리스티안센이 처음부터 레고를 만든 것은 아니다. 1932년 유럽이 전쟁으로 대공황을 맞이하자 일감이 줄어 목수 일을 접고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선보인 장난감은 나무로 된 요요였다. 동네 아이들이 요요를 갖고 노는 것에서 나아가 요요의 둥근 원형을 오리, 닭 ,원숭이의 몸통에 붙였다.
마차의 바퀴처럼 굴러가는 장난감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색칠해 더욱 재미나게 만들었다. 1930년대와 40년대 초창기 레고의 바퀴 달린 자동차, 기차, 트랙터 등의 장난감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레고는 최초로 장난감을 만든 1932년을 공식적인 창업의 해로 정했으니 올해가 창업 80주년이다. 1947년 레고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에서 들여온 플라스틱 성형사출기로 장난감의 소재를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꾼 것이다. 최초의 레고 블록은 1949년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스(Automatic Binding Bricks)’라는 네모반듯한 플라스틱 블록이다.
당시만 해도 200여 점의 플라스틱과 나무로 된 장난감을 섞어 만들다가 2년 뒤 공장의 화재로 레고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레고는 블록을 끼워 맞추는 ‘인터로킹 시스템’을 개발해 레고 블록을 개선하고 자동차의 장난감부터 미니 휴먼 피규어까지 완전한 시스템 장난감회사로 변신한다.
이는 크리스티안센의 뒤를 이은 아들 고트프레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트프레드는 오늘날 레고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들 키엘이 어렸을 때 일반 블록으로는 손이 너무 작아 가지고 놀기 불편해 하는 걸 보고 길이는 2배, 크기는 8배 키운 18개월부터 6세 전용의 듀플로 레고 블록을 만들었다. 레고 블록
레고는 끼워 맞추는 블록 장난감이다. 블록 하나만 보면 플라스틱 조각이지만 8개의 꼭지가 붙은 레고 블록 2개만 있으면 24개의 다른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고 3개로는 1060가지, 6개로는 9억1510만3765가지를 만들 수 있으며, 8개로는 셀 수 없이 무한정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레고그룹은 1955년 레고 플레이 시스템을 출시했다. 레고 블록은 견고하게 쌓아 올릴 수도 있고 쉽게 분리할 수도 있었다. 결국 1958년 1월 28일 오후 1시 58분 덴마크 코펜하겐 특허청에서 레고 블록의 특허를 받았다.
1963년부터 레고는 아크릴의 긁힘과 부서짐을 방지해 견고성과 안전성을 확실하게 담보하고 있다. 레고 블록 30주년 기념을 기준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1년간 190억 개의 블록과 2400개의 다양한 레고 블록 형태를 생산하고 있다. 전체의 총생산량은 전 세계 인구 1인당 평균 62개의 레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니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400억 개의 레고 블록을 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닿을 수 있다 하니 레고의 작은 블록의 위대함이 경이로울 뿐이다.
레고의 미니 피규어는 1976년부터 뉴타운 캐슬 스페이스의 주제로 출시됐다. 미니 피규어는 머리, 몸통, 발 등으로 분리돼 조립하고 레고 블록에 끼워 서거나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레고는 완성품으로 만들어진 조립 완구가 아니다. 레고의 디자인은 네덜란드 본사에서 하지만 완성은 레고를 조립하는 각자의 몫이다.
손끝의 감각이 레고의 블록과 미니 피규어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간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 천만 가지 레고를 완성하고 즐거워한다. 레고로 만든 세상은 다양하다. 레고 아일랜드, 레고 시티, 레고 랜드, 레고 시스템, 레고 테크닉, 레고 스타워즈, 레고 스튜디오…. 꿈속에서 꿈 밖까지 만들고 싶은 세상에 레고라는 글자만 붙이면 모두 가능했다. 블록의 선구
조립식 블록은 레고가 처음이 아니다. 장난감 블록의 선구는 레고가 플라스틱 사출기를 도입한 영국의 키디크래프트의 특허품인 ‘셀프 로킹 브릭스’다. 이것은 모서리가 둥글고 표면 위의 요철이 볼록한 블록이었다. 레고의 각진 블록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이것을 레고 창업자 크리스티안센이 ‘레고 스타일’로 변형한 것이 오늘날의 레고다.
블록을 쌓고 형태를 변형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24년 독일의 알마 부셔(Alma Buscher)가 바우하우스의 목공 공방에서 만든 어린이용 장난감 ‘빌딩 블록 게임(Building-Block Game)’이 효시다.
원래 각각의 크기로 잘린 다양한 형태의 마무 블록을 빨강, 파랑, 노랑 등 색색으로 칠하고 상자에 반듯하게 담아 포장한 것이다. 이것은 돛배로 만들기도 하고 단순 구조물을 세우고 허무는 등 단순 조합의 장난감이었다.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시각적 배색과 형태를 통해 색채 감각을 익히고 유기적 구조를 학습하는 일종의 학습 놀이기구였다.
레고의 원조는 바우하우스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중앙아시아 대평원을 지배하던 몽골족의 이동식 가옥 게르(ger)다. 몽골인들은 전통적으로 고원지대의 초지를 따라 염소와 양을 치는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게르는 여름에는 보다 시원하고 높은 지대로 이동하고 겨울에는 저지대로 내려와 목축하는 데 필요한 천막집이다.
게르의 기본 구조는 나무 막대와 천막이 전부다. 막대를 서로 이어 조립하고 천막을 두르면 끝인 셈이다. 물론 천막을 걷어내고 막대를 해체하면 간단한 이삿짐이 돼 말 등에 실으면 이동이 끝난다. 붙이고 떼는 기술이 일상의 필요에 의해 발전한 게르야말로 레고 블록의 진정한 원조인 셈이다. 오늘날 아이 어른 구분 없이 가지고 노는 큐브 장난감은 색, 면으로 된 정육면체의 여러 색을 이리저리 돌려 맞추어 완성하는 두뇌 게임이다. 이러한 큐브와 몽골의 초원에서 투박한 나무로 된 조립식 완구가 아이들의 심심함을 달랜다. 레고 예술
레고는 어린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른들도 레고를 사랑한다. AFOL(Adult fan of LEGO)은 레고를 사랑하는 어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레고 유저 그룹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현재 세계 30개국 86명의 AFOL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 AFOL은 세계적으로 13명의 레고 공인 전문가 LCP (LEGO Certified Professional)의 도움으로 레고 아키텍처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남대문 모형 레고도 이들의 도움으로 완성했다.
레고 사랑을 넘어 직업으로서의 예술품을 만드는 레고 아티스트도 있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스케치북과 연필 대신 레고의 작은 블록이 가득하다. 세상 어디에서든 가방을 열어 레고 블록을 조립하면 그것이 곧 예술이요 새로운 창작이 된다. 캔버스는 아티스트가 서 있는 그곳의 땅과 벽, 천장이요, 물감과 붓은 레고 블록인 셈이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레고 공인 전문가이자 레고 아티스트 숀 케니(Sean Kenney)는 1976년생으로 레고 키즈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레고의 추억을 못 잊고 성장해 이젠 완전한 레고 아티스트가 된 전형적인 레고맨이다. 케니의 작품 ‘북극곰’은 무려 1000시간 동안 레고 블록을 만지작거리며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하니 그의 레고 사랑은 열정을 넘어 예술로 승화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케니의 또 다른 작품 ‘투 쇼트 오더스(Two Short Orders)’만 봐도 레고가 디자인의 영역인지 예술의 영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고 진지하다. 사실 예술이 사람들에게 재미와 호기심, 영감을 불러일으키면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재료도 그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레고 블록은 재료를 넘어 완전한 변신을 해 새로운 조형물로 거듭났다. 서울 시내 퇴계로를 지나다 눈에 드는 거대한 ‘빨간 비너스’ 조형물도 자세히 보면 작은 블록을 이어 붙여 만든 일종의 레고 타입이다. 레고의 영역은 무한하다.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을 비롯해 파리의 에펠타워와 브라운 전동칫솔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이르기까지 이르지 않는, 손대지 않는 영역이 없어 보인다. 모두 레고 세상이다. 레고 랜드
레고의 본사와 공장, 창업자 크리스티안센의 개인 주택이 있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은 1968년 최초로 레고 마을이 세워진 곳이다. 빌룬에는 레고가 산다. 350만 개 블록으로 만들어진 코펜하겐 니하운 운하에서는 유람선이 분주하게 떠다니고 부두에는 노천카페에서 사람들이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201만 개의 블록으로 만든 네덜란드의 풍차 마을에서는 튤립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풍차는 천천히 소리 없이 돌아간다. 7만5000개의 블록으로 만든 A380 항공기의 위용은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실어 나르고, 로스앤젤레스(LA) 비벌리힐스의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는 지금 막 서부활극의 말발굽 소리에 결투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케네디우주센터의 아폴로 왕복우주선이 우주를 향해 막 발사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고 로켓에서 새어나오는 슈~ 슈~ 발사음은 레고 랜드를 하늘로 들어올린다. 바이에른 뮌헨이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는 지금 막 전반전을 시작하는 주심의 휘슬이 울려 퍼진다. 100만 개 이상의 레고 블록이 소요된 이 공사는 길이 5m, 너비 4.5m, 높이 1m로 총 무게만도 1.5톤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관중석의 함성은 뮌헨을 넘어 발룬의 레고 랜드를 뒤덮는다.
1970년 레고의 CEO 고트프레드는 미니 랜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좀 더 큰 스케일의 레고 작품들을 계획했다. 140만 개의 레고 블록과 4만 개의 듀플로 블록으로 미국 서부 러시모어산 정상에 조각된 미국 역대 대통령 조각상을 만들었다. 현재까지 레고 랜드에 사용된 레고 블록은 총 6000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말 그대로 빌룬은 레고 세상이다.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한다. 아이들의 레고 사랑이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절이라면 어른들도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세상 걱정 없이 천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그 시절, 어릴 때 보았던 만화 영화의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고 정의의 노래를 부르는 아톰과 로봇 태권브이, 스누피, 미키마우스, 토이스토리, 스머프, 미니 자동차, 바비인형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세상에는 장난감이 많다.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난감이다. 레고는 닌텐도의 짜릿함이나 인터넷 게임의 중독성과는 사뭇 다른 따듯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어있다. 레고 블록은 시간이 지나 비록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표면에 상처가 났어도 오래된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세월의 소리처럼 따듯한 정감이 있다. 레고가 살아가는 에너지다.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 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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