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야드 컵’ 개최지, 일본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연상케 하는 리아스식 해안이 비경을 자랑하고 그 위에 살포시 그려 놓은 18홀 코스가 절제와 세련됨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래서였을까. ‘2012 밀리언야드 컵’ 대회 장소를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골프클럽에서 먼저 제안해 대회가 성사됐다.이 정도 수준이면 한·일 양국 선수들의 최고의 샷을 겨루어 보기에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와 한국 골퍼들을 향한 프러포즈였다. 오무라(大村)만의 코발트빛 바다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지난 6월 29일 아침,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 프로 골퍼들이 일본 서쪽 규슈 나가사키현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골프클럽(파72·7107야드)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한·일 양국 간의 거리 900km, 이를 골프 단위인 야드로 환산해 ‘밀리언야드 컵’이라 명명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다.
2연패를 노리는 한국 팀과 지난해 패배로 자존심을 구긴 일본 팀과의 한판 승부. 자국에서 벌어진 대회인 만큼 설욕을 다짐하며 일본 골프 최고의 아이콘 이시카와 료(21)를 필두로 상금 랭킹 상위권 선수들로 최강의 멤버를 구성했다.
침묵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첫 티샷한 볼이 정적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자국의 명예를 걸고 뿜어내는 선수들의 최고의 샷 대결은 패시지긴카이아일랜드GC를 둘러싸고 있는 오무라만의 푸른 바다도 그 열기를 식히기에는 모자란 듯하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은 천혜의 울창한 자연림과 골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인공 장애물들은 프로 골퍼들에게도 쉽사리 그린의 홀컵을 내어주지 않았다.
11월 4일, 한국의 쌀쌀한 날씨를 뒤로 하고 콧대 높은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의 그린을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 1시간쯤 지났을까. 날아오른 비행기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쌀쌀한 서울 날씨와는 사뭇 다르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바다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두어 시간의 버스 여행을 하고 드디어 골프장에 도착했다. 일본 특유의 깔끔함과 섬세함이 호텔과 골프장 곳곳에 배어난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연상케 하는 리아스식 해안이 비경을 자랑하고 그 위에 살포시 그려 놓은 18홀 코스가 절제와 세련됨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래서였을까. ‘2012 밀리언야드 컵’ 대회 장소를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에서 먼저 제안해 대회가 성사됐다. 이 정도 수준이면 한·일 양국 선수들의 최고의 샷을 겨루어 보기에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와 한국 골퍼들을 향한 프러포즈였다.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는 2000개가 넘는 일본 내 골프장 가운데 30위권 안에 드는 최고의 명문 클럽이다. 그러다 보니 클럽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골프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의 다른 골프장과는 달리 캐디 동반 플레이를 해야 하고 잘 정돈된 페어웨이까지 카트 진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일본의 원로 프로 골퍼 후지이 요시마사가 설계한 코스는 자연 지형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매 홀마다 전략적인 플레이가 요구되고 그린이 어렵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그린은 속도가 빠르고 언듀레이션이 심해 파 온에 성공해도 파 세이브를 장담하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티샷이 페어웨이에 떨어지면 런이 많이 발생해 생각보다 거리가 나는 점이다. 또 왼쪽으로 약간씩 휘는 홀들이 있어서 드로 구질을 가진 골퍼들에게는 금상첨화다.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링크스 코스의 백미는 역시 바다를 건너 홀을 공략하는 것이다.
전반 3번 홀(파3·173야드). 티박스와 홀 사이는 바다가 가르고 파란 그린 위에 꽂힌 빨간색 깃대가 햇살에 반짝, 살랑거리며 골퍼를 유혹하고 있다. 거리감은 둔해지고 표기된 거리는 미덥지가 않다. 일본 여자 프로 골퍼 미야자토 아이를 닮았다는 동반자의 말에 깔깔대며 웃던 20세 어린 캐디의 얼굴에도 어째 확신이 없는 듯하다. 길면 보기, 짧으면 그대로 바다에 수장이다. 바람이 최대 관건. 이럴 때는 과감하게 길게 잡고 자신을 믿고 치는 것이 상책이다.
후반 12번 홀 (파4·318야드). 17개 모든 홀을 레귤러 티에서 플레이를 하더라도 이 홀만큼은 단연 블루 티에서 쳐야 한다. 그래야 바다를 넘겨 공략하는 이 홀만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한 티박스에 들어서면 푸른 바다와 페어웨이가 어우러져 두려움과 시원스러움이 공존한다. 거리가 짧은 골퍼는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시원하게 펼쳐진 페어웨이만을 보고 과감한 티샷을 날려야 한다. 티샷 한 볼이 안전하게 페어웨이를 구른다면 기쁨은 두 배다.
전반 5번 홀(파4·403야드)은 바다를 넘기는 홀은 아니지만 티박스와 그린이 가장 아름다운 홀이다. 티 박스 측면으로 청정해역 오무라만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고 바다 저 멀리로 나가사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이 홀을 멀리서 보면 샷을 하는 골퍼와 바다가 하나로 이어져 바다 위에서 샷을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린이 놓인 곳은 또 어떤가. 그린 뒤쪽으로 지중해를 연상케 하는 해안선 끝의 하얀색 호텔과 바다가 자아내는 하모니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바다와 어우러진 경치에 취하고 변화무쌍한 그린에서 비틀거리다 보니 어느덧 라운드의 끝자락이다.
18번 홀(파5·522야드). 왼쪽으로 돌아가는 도그레그 홀이다. 티샷이 280야드 이상이면 워터해저드에 빠진다. 사력을 다한 티샷은 다행히 해저드 앞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 했다. 해저드를 직접 건너면 남은 거리는 238야드. 스푼을 과감하게 빼들고 투온에 도전한다. 짜릿한 손맛을 느끼는 순간 날아오른 공이 그린에 안착한다. 드디어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을 기회다. 퍼팅이 좋다면 첫 이글도 가능하다. 홀까지 거리 15야드. 그린의 난이도가 상당하다. 미끄러지듯 퍼터를 떠난 공이 홀을 훌쩍 지나가 버린다. 힘 조절의 실패다. 아뿔싸, 버디도 물 건너가고 간신히 파 세이브로 스코어 카드를 정리한다. 투온 성공에 만족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진행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동반자들과 여유로운 라운드를 즐겼다는 기쁨이 밀려온다.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의 매력이 절제와 세련됨이라면 리조트 호텔은 품위가 있다. 5성급 호텔 수준의 객실과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수제 침대, 그리고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 건강 만점의 유럽풍 12가지 온천수로 즐기는 스파, 무엇보다 떠오르는 태양과 바다가 빗어내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겨울을 피해 잠시 이곳을 찾은 골퍼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만하다.
한편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에서 라운드를 즐겼다면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한국의 한화리조트가 운영하고 있는 오션팰리스골프클럽(파72·6280야드)도 추천한다. 두 골프장이 서로 연계해서 라운드가 가능하도록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나가사키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골퍼들은 30여 분간의 크루즈 여행을 통해 클럽에 도착할 수 있고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코스 레이아웃은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보다 좀 더 해안과 인접해 있어 정통 시사이드 코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어떻게 골프장이 들어섰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신은 완벽함을 주지 않는 것일까. 지형적 특성 탓에 거리가 짧다는 핸디캡이 있다. 장타자라면 꿈에 그리던 원온 도전이 가능한 홀이 있어 재미가 쏠쏠하고 여성과 시니어 골퍼들은 풍광을 즐기며 여유로운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한국 회사가 운영하다 보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일본 전문 여행사 호도스포츠의 오동성 팀장은 “한국의 추운 겨울을 피해 멀지 않은 패시지킨카이아일랜드GC와 오션팰리스GC로 골프여행을 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접한 골프장들과 연계 프로그램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다양한 라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오션팰리스GC
나가사키=글·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
취재 협조 호도스포츠(www.ilbongo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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