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상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모든 일들은 그 자체로 설렘이 된다. ‘일상에서 벗어난 일상’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결국 자신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스토리는 뻔한 로맨틱 영화를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영화 속 ‘홈 익스체인지 휴가’는 오늘날로 치면 전형적인 스테이케이션이다. ‘익스체인지’는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호텔이든 게스트하우스든 또는 렌트 하우스 등 개인 상황에 따라 머무를 수 있는 어떤 곳에서 낯선 일상을 살아보는 것이 스테이케이션의 본질이다. 현지인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 ‘유유자적’과 ‘느린 여행’으로 대표되는 스테이케이션은 뭔가 다른 여행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로망이다.
2008년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던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은 ‘머물다’라는 의미의 stay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로 원래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뜻의 신조어다. 당시 세계 경제 위기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 집에 머물며 휴가를 보낸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후로도 ‘불황형’ 휴가의 대표적 형태로 거론되고 있지만, 지금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머무는 여행’, ‘살아보는 여행’의 개념으로까지 확장됐다. 4박 5일 동안 3개국을 도는 살인적 스케줄로 가득한 ‘관광’이 아닌, 하루 종일 해변가를 거니는 리조트형 휴식도 아닌 체험과 경험이 주가 되는, 어찌 보면 여행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여행 방식인 셈이다.
패키지여행과 밤도깨비 여행이 유행했던 시절이나 스스로 여행 스케줄을 짜서 움직이는 자유여행이 트렌드인 시절이나 깨알 같은 정보가 가득한 두꺼운 여행 서적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가보고 싶은 곳들을 동그라미로 표시해가며 시간을 다투었던 건 마찬가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가볼 수는 있었을지언정 돌아오면 남는 것이라곤 ‘사진’밖에 없었던 여행이 그저 아쉬움으로 남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뉴욕, 런던처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도 좋고, 프랑스의 전원마을처럼 이방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도 좋다. 꼭 해외가 아니라도 좋다. 긴 호흡으로 낯선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보석 같은 삶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도 스테이케이션을 계획해볼 이유는 충분하다.
글 박진영·김보람 기자, 이송이·박상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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