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범의 Mystic Art Story
정말 끔찍한 장면이다. 한 괴물이 어린아이를 막 먹어치우고 있다. 머리와 오른쪽 팔은 이미 잘려나갔고 왼쪽 팔이 입 안에 들어가 있다. 아이를 양손으로 꽉 움켜진 태하며 다리를 굽힌 모습으로 보아 그는 지금 극도의 흥분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괴물의 크게 부릅뜬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고 확장된 눈동자는 괴물 역시 무엇인가 공포에 쫓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의 잔혹함은 검정 배경 위로 도드라진 누런색의 신체와 아이의 하얀 신체에서 흐르는 붉은 핏빛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도대체 이 괴물의 누구이고 그의 눈에 보이는 광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그림은 고야가 1819년부터 1823년까지 4년에 걸쳐 그린 ‘검은 그림(Black Paintings)’ 연작 중 한 점이다. 1819년 마드리드 외곽에 ‘귀머거리 집’으로 불리는 저택을 구입한 그는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이 집에 운둔했다. 흥미로운 것은 화가 자신도 이때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청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이다.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과 스페인 내 정치의 혼란상을 몸소 체험하면서 인간의 광기와 잔혹성, 무지와 공포심을 목격하고 그 후 인간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
게다가 그 자신 역시 두 차례의 치명적 질병을 앓고 나서 청각장애가 된 데서 오는 좌절감과 병이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비관주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착잡한 주변 상황과 개인적 불행이 겹쳐진 상황 속에서 ‘검은 그림’ 연작이 그려졌던 것이다.
고야 생존 당시 대중의 미신, 특히 마법사에 대해 품고 있는 두려운 감정은 심각한 수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계몽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은 자유주의자였던 그에게 이런 대중의 미신 숭배는 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로 비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중의 무지를 사탄의 발호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마녀사냥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던 교회와 왕정의 구태의연한 중세 회귀적 행태였다. ‘마법사의 안식일’은 곧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구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또 다른 무지를 동시에 신랄히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그림들을 캔버스가 아닌 자신이 은둔한 ‘귀머거리의 집’ 실내 벽에 그렸기 때문이다. 고야는 생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 그림들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서 단 한 줄의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왜 작품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 작품들이 재발견된 것은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흐른 1874년이었다. 당시 이 작품들은 살바도르 에밀 데를랑게 남작의 소유였는데 이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측에 의해 캔버스에 옮겨져 복원 처리됐다.
오늘도 프라도 미술관 안의 고야 전시실은 전 세계에서 검은 그림들을 보러 온 관객들로 붐빈다. 분명한 것은 관객이 느끼는 착잡한 감정은 고야 생존 당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인간의 광기와 잔혹 행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그림들이 명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그런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성향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석범 _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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