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범의 Mystic Art Story

정말 끔찍한 장면이다. 한 괴물이 어린아이를 막 먹어치우고 있다. 머리와 오른쪽 팔은 이미 잘려나갔고 왼쪽 팔이 입 안에 들어가 있다. 아이를 양손으로 꽉 움켜진 태하며 다리를 굽힌 모습으로 보아 그는 지금 극도의 흥분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괴물의 크게 부릅뜬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고 확장된 눈동자는 괴물 역시 무엇인가 공포에 쫓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의 잔혹함은 검정 배경 위로 도드라진 누런색의 신체와 아이의 하얀 신체에서 흐르는 붉은 핏빛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도대체 이 괴물의 누구이고 그의 눈에 보이는 광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들을 집어 삼키는 사티로스’, 1819~23년, 회벽에서 캔버스로 옮김, 146x83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아들을 집어 삼키는 사티로스’, 1819~23년, 회벽에서 캔버스로 옮김, 146x83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 그림은 스페인의 낭만주의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1746~1828)의 ‘아들을 집어 삼키는 사티로스’다. 사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으로 장차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지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자기의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먹어치웠다는 섬뜩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 그림은 고야가 1819년부터 1823년까지 4년에 걸쳐 그린 ‘검은 그림(Black Paintings)’ 연작 중 한 점이다. 1819년 마드리드 외곽에 ‘귀머거리 집’으로 불리는 저택을 구입한 그는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이 집에 운둔했다. 흥미로운 것은 화가 자신도 이때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청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이다.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과 스페인 내 정치의 혼란상을 몸소 체험하면서 인간의 광기와 잔혹성, 무지와 공포심을 목격하고 그 후 인간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

게다가 그 자신 역시 두 차례의 치명적 질병을 앓고 나서 청각장애가 된 데서 오는 좌절감과 병이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비관주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착잡한 주변 상황과 개인적 불행이 겹쳐진 상황 속에서 ‘검은 그림’ 연작이 그려졌던 것이다.
‘마법사의 안식일’, 1820~23년, 회벽에서 캔버스로 옮김, 140x438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마법사의 안식일’, 1820~23년, 회벽에서 캔버스로 옮김, 140x438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대중의 무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같은 연작 중 한 점인 ‘마법사의 안식일’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림을 보면 염소 머리를 한 악마가 둥그렇게 무리를 이뤄 쭈그리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무엇인가 설교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저마다 겁에 질려 있는 표정이다. 금방이라도 자신들에게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닥치리라는 공포감에 저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 역시 흑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고 점이나 마법사들이 광기 어린 눈동자를 하고 있는 점이 사티로스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고야 생존 당시 대중의 미신, 특히 마법사에 대해 품고 있는 두려운 감정은 심각한 수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계몽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은 자유주의자였던 그에게 이런 대중의 미신 숭배는 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로 비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중의 무지를 사탄의 발호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마녀사냥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던 교회와 왕정의 구태의연한 중세 회귀적 행태였다. ‘마법사의 안식일’은 곧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구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또 다른 무지를 동시에 신랄히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의 공중부양’, 1797~98년, 캔버스에 유채, 43.5x31.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마법사의 공중부양’, 1797~98년, 캔버스에 유채, 43.5x31.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그의 비판적 태도는 1798년 오수나 백작부인이 주문한 같은 제목의 연작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마법사의 공중부양’은 마법사들이 밤에 무덤을 파헤쳐 죽은 시신을 꺼내 피를 빨아먹는다는 대중의 미신을 회화한 것이다. 그림에서 우매한 군중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옷으로 얼굴이나 가리며 술 취한 듯 팔자걸음을 걷는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돼 있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 1797~98년, 동판화, 216x152mm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 1797~98년, 동판화, 216x152mm
1799년에 출판한 80점의 판화 연작 ‘카프리초스’ 중 한 점인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는 그의 이러한 대중에 대한 불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두 팔을 베고 엎드린 화가 자신은 곧 잠자는 이성이고 그 사이에서 활개 치는 올빼미와 박쥐 떼는 광기와 무지를 상징한다. 물론 이 판화는 이성을 잠재우면 인간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상상력, 감정이 자연스레 분출되고 심지어 악몽 같은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고야의 낭만주의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그림들을 캔버스가 아닌 자신이 은둔한 ‘귀머거리의 집’ 실내 벽에 그렸기 때문이다. 고야는 생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 그림들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서 단 한 줄의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왜 작품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 작품들이 재발견된 것은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흐른 1874년이었다. 당시 이 작품들은 살바도르 에밀 데를랑게 남작의 소유였는데 이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측에 의해 캔버스에 옮겨져 복원 처리됐다.

오늘도 프라도 미술관 안의 고야 전시실은 전 세계에서 검은 그림들을 보러 온 관객들로 붐빈다. 분명한 것은 관객이 느끼는 착잡한 감정은 고야 생존 당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인간의 광기와 잔혹 행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그림들이 명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그런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성향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석범 _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