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지배구조 변화에 주목하라!

[주식투자] 롯데그룹, 성장 스토리에 ‘쉼표’ 찍는 롯데,지배구조 실타래 풀린다
“롯데그룹이 지금과 같이 한국과 일본 재벌의 복합체 형태로 계속해서 유지되긴 어렵습니다. 경기 침체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성장 전략에 제동이 걸린 시점을 맞아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기업분석 담당 연구원은 롯데가 머지않아 몇 갈래로 쪼개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타래처럼 얽힌 계열사 간 지분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동 경영보다는 소유권 분리로 가는 시나리오가 경험적으로 훨씬 설득력 있다는 분석에서다.

오랜 기간 롯데의 계열 분리 가능성은 세간의 관심 밖에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경영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데다 ‘2018년까지 그룹 연매출 200조 원 달성’이라는 공통의 비전 아래 계열사들이 결속력을 다져와서다. 하지만 올 들어 앞만 보고 달려오던 롯데의 진로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실물경기 침체로 더 이상 ‘덩치 키우기’ 중심의 경영 전략을 고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의 경영의 초점은 빠르게 내실 경영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고, 계열사 합병과 이에 따른 지분 이동에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게 됐다.


경기 침체로 성장 전략 ‘제동’

롯데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유통·음식료·석유화학 부문을 중심으로 몸집 불리기에 집중해왔다. 지난 5년간 거래금액 1000억 원을 웃도는 인수 사례만 합쳐도 약 7조 원에 달한다. 뛰어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헐값에 나온 자산들을 거침없이 사들인 결과다.

계열사 숫자도 급격히 불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 재계 7위 그룹사인 롯데의 2011년 자산총액은 79개사 83조3050억 원에 달한다. 2007년(46개·43조6790억 원)의 약 2배로 커졌다.

그룹 매출의 약 45%를 차지하는 유통부문에선 2008년 인도네시아 유통업체 마크로(Makro) 지분 100%(3900억 원) 인수를 시작으로 2009년엔 중국 유통업체 타임스(Times) 지분 100%(7300억 원), 2010년엔 GS리테일 백화점과 대형 마트 사업부(1조3400억 원), 바이더웨이 지분 100%(2740억 원)를 인수했다.

2011년엔 하이마트 지분 65%를 1조2480억 원에 사들였다. 매출의 11%를 차지하는 식음료 사업도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롯데칠성은 2009년 두산 주류사업부를 5030억 원에, 롯데제과는 2008년 초콜릿업체 길리안 지분 100%를 1700억 원에 인수했다. 매출 26%를 차지하는 석유화학 부문에선 1조5000억 원을 들여 말레이시아 화학업체 타이탄케미컬 지분 100%를 사들였다.

롯데의 공격적인 기업 인수는 그러나 충분한 이익 증가로 이어지진 못했다. 금융 위기에 이은 유럽 재정 위기가 실물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2006년 3조1440억 원이었던 비금융 계열사 순이익은 작년 2조7750억 원으로 되레 12% 줄어들었다.

결국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작년 6월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불확실한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고 선언하고, 경영 전략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알렸다. 동시에 ‘전 계열사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계열사 합병작업 빨라져

롯데의 경영 전략 변화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계열사 합병 작업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롯데가 그리는 미래 지배구조의 밑그림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합병에 따른 지배구조 변화와 맞물려 가장 최근에 이목을 끌기 시작한 회사는 롯데삼강이다.

롯데삼강은 작년 8월 이후로만 파스퇴르유업, 웰가와 합병한 데 이어 내년 1월 롯데햄도 합병키로 발표하면서 앞으로 그룹 식품사업의 중심축 부상을 예고했다.

김윤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롯데삼강의 계열사 흡수는 경영효율성 증대를 위한 작업인 동시에 그룹 식품사업의 통합 주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힘을 실어줄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면서 롯데삼강 주가는 올 들어 9월 말 사이 41만500원에서 57만1000원으로 39%나 뛰었다.

다른 계열사들도 합병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은 2009년부터 검토해온 케이피케미칼과의 합병을 지난 8월 최종 결의했고, 같은 달 롯데쇼핑은 롯데스퀘어와의 합병을 마쳤다. 롯데쇼핑은 롯데미도파도 흡수, 합병키로 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작년 10월 롯데주류비지와 합병했고, 롯데제과는 작년 10월 롯데제약과 한 회사가 됐다. 시장에선 앞으로도 계열사 간 합병 작업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크고 작은 회사들이 하나 둘씩 뭉쳐질 경우 오너 2세들의 경영권 승계 구도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로 구성된 롯데는 현재 차남인 신동빈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작년 2월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규모가 10배 정도 더 큰 한국 롯데 소유권을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호텔롯데가 여전히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어 언제든 이런 구도가 수정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 롯데건설, 롯데제과 등 32개사 투자주식 5조5000억 원 규모를 보유해 지배구조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회사다. 주요 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 일본 롯데물류, 일본 롯데데이터센터 등으로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100% 소유하고 있다.
[주식투자] 롯데그룹, 성장 스토리에 ‘쉼표’ 찍는 롯데,지배구조 실타래 풀린다
합병에 따른 지배구조 변화와 맞물려 가장 최근에 이목을 끌기 시작한 회사는 롯데삼강이다. 롯데그룹이 힘을 실어줄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면서 롯데삼강 주가는 올 들어 9월 말 사이 41만500원에서 57만1000원으로 39%나 뛰었다.


투자지분 활용 압력 커져

공격적인 성장 전략에 이은 재무 부담 확대는 계열사 간 합병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비영업 자산 매각 물꼬를 틀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롯데는 다른 그룹사와 비교해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많아 불필요한 지분 정리만으로도 대규모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롯데에 정통한 한 금융권 법인고객관리(RM) 담당자는 “비상경영 선언 이후 다수의 계열사들이 현금 보유비중 확대를 추진 중”이라며 “투자은행(IB)업계에선 기존에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때보다도 많은 자금 조달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하락 압력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현금 유동성 확보를 서두르게 만드는 배경 중 하나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롯데쇼핑의 하이마트 인수 계약 부담을 이유로 기존 신용등급(A3)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롯데그룹 비금융 계열사 부채가 작년 말 현재 31조5890억 원으로 5년간 144% 급증한 점도 부정적 평가 요인으로 반영됐다. 앞으로 롯데가 쓸 수 있는 카드 중에는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수직으로 재편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순환출자 금지’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들은 총 19개의 순환출자 고리로 이어져 있어 10대 그룹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취하고 있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롯데 총수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특정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지주회사 신주를 받아가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총수 일가는 80% 이상의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경영권 유지에 불필요한 지주회사와 계열사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 경우 10조 원 넘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롯데건설과 호텔롯데 같은 대형사 기업공개(IPO)도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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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는 롯데쇼핑, 롯데건설, 롯데제과 등 32개사 투자주식 5조5000억 원 규모를 보유해 지배구조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회사다.


롯데삼강·롯데제과 등 주목해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롯데삼강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회사는 시장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처럼 전체 자산에서 계열사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회사들도 주요 관심 대상이다. 무수익 비영업 자산으로 분류되던 자산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미래 투자재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배구조 담당 연구원은 롯데가 두 개 이상으로 쪼개질 것으로 예상하고 롯데제과와 호텔롯데의 핵심 축 부상을 점쳤다. 롯데제과 중심의 식품·유통, 호텔롯데 중심의 석유화학·건설, 그리고 일본 롯데로 나누는 방안이 경영 효율성과 기업 가치 제고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에서다.

그룹이 어떤 방식으로 쪼개지든 핵심 축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부회장이 나눠가져 갈 가능성이 높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지분 역시 형(14.58%)과 아우(14.59%)가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도 일부 몫을 챙길 수 있다.

2007년 롯데우유의 계열 분리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다른 회사들도 롯데 울타리에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한 증권사 지배구조 담당 연구원은 “롯데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기업 인수에 뛰어든 배경에는 지배구조 변화를 염두에 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며 “오너 친인척들이 계열사 곳곳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나눠줄 회사도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