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한 길진인터내셔널 대표

김양한 대표는 와인수입업체 최고경영자(CEO)만 20년을 넘게 지낸 국내 와인업계의 산증인이다. 지난해 금양인터내셔널을 나온 그는 이용관 대표와 함께 길진인터내셔널 공동대표를 맡았다. 자리를 옮긴 후 상품 포트폴리오를 짜느라 분주한 1년을 보낸 그를 서울 통의동에 있는 유러피언 레스토랑 가스트로 통에서 만났다.

김양한 길진인터내셔널(이하 길진) 대표는 전 해태그룹 재무팀 출신으로 1999년 금양인터내셔널(이하 금양)을 분리시켜 와인수입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프랑스 와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 ‘슈발리에 뒤 타스트뱅’을 포함해 4개의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10년 이상 금양에 몸담았던 김 대표가 길진 공동대표로 취임한 것은 2011년 9월 15일이다. 금양에서 길진으로 자리를 옮긴 지 벌써 1년. 김 대표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직을 정비하고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그러기까지는 금양에서 함께 일했던 임직원들이 힘을 많이 보탰다. 영업의 한진섭 이사, 마케팅 조상덕 이사 등이 그와 함께 길진에 둥지를 틀고, 그를 보좌했다. 그들 덕에 김 대표는 현재 목표의 80% 선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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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와인 문화 정착이 중요

와인은 전체 포트폴리오를 감안해 향후 2~3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으로 선정한다. 포트폴리오를 짜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프랑스만 해도 메도크, 생테밀리옹, 론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길진은 우선 국가를 정하고 길진의 영업 형태와 매치되는 와이너리를 선정했다. 그 결과 칠레의 쿠지노 마쿨·산타 헬레나, 이탈리아 비바·발비 소프라니, 스페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 등이 추가됐다. 기존에 수입하던 곳은 질이나 브랜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한편으로는 유통망 다원화에도 신경을 썼다. 길진은 유통에 강점이 있었는데, 김 대표 취임 후 거래처가 보다 다양해졌다. 이탈리아 비솔이나 제나토 등 고가 와인은 할인점보다는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에 적합한데, 신세계백화점에서만 판매하던 것을 롯데백화점으로 판매망을 확장했다.

“개인적으로 레스토랑용과 할인점용 와인을 구분하지 않았으면 해요. 할인점에서 구입한 와인을 레스토랑에서도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마셔본 와인을 할인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와인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그게 좋습니다.”

그는 와인 애호가들이 많은 와인을 마시기보다 많은 이들이 와인을 즐기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한다. 김 대표는 한 번에 2병, 3병을 마시는 게 아니라 식사와 곁들여 한두 잔 정도 즐기고, 직장 동료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며 와인 한 병 정도 가지고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지나치게 비싼 와인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레스토랑에서 1인분 식사 가격 정도의 와인이면 충분하다. 식사가 아닌 자리에서는 치즈나 견과류 정도에 곁들일 수 있는 와인이면 충분하다.



‘1865’ 앞세워 금양을 1위 업체로 만들어

와인의 대중화는 금양을 이끌던 초기부터 그의 지론이었다. 국내 와인수입업체 1세대인 그가 여태 일본의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을 읽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한때 와인업계에서는 ‘신의 물방울’을 읽지 않으면 대화가 안됐어요. 그때도 저는 안 읽었어요. 순간적인 유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지금은 ‘신의 물방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거기 나오는 와인에 대한 평가가 사실은 너무 가식적이에요. 와인은 그냥 ‘맛있다’는 정도만으로 충분히 느낌을 전달할 수 있거든요.”

그는 금양이 와인업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을 와인 대중화라고 설명했다. 와인 대중화라는 모토 아래 할인점, 백화점, 레스토랑 등 주요 유통 채널을 골고루 공략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와인 붐도 일조를 했다. 사실 1999년 금양이 해태에서 분사해 독립할 때만 해도 매출의 약 90%는 코냑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삼성에서 임원들을 대상으로 와인 교육을 하고, 매스컴에서 와인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와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와인 붐과 함께 금양을 1위 자리에 올린 1등 공신은 칠레 와인 ‘1865’다. 골프장을 중심으로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865는 원래 산 페드로 와이너리의 주력 브랜드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판매가 늘면서 주력 브랜드가 됐다.

김 대표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소식을 칠레에서 들었다. 당시 금양은 와인수입업체 중 3위였다. 선두권 진입을 위해 야심 차게 들여온 와인 중 하나가 1865였다. 1865는 산 페드로 와이너리가 창립 연도를 기념해 만든 와인으로 ‘천팔백육십오’라고 읽는 게 맞았다.

국내에서 보다 쉽게 알아듣도록 김 대표가 ‘일팔육오’로 읽도록 했다. 초기 마케팅은 ‘18세부터 6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와인이었다. 그런데 골퍼들 사이에서 ‘18홀 65타’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고, 이를 마케팅에 도입하게 된 것이다.

“‘18홀 65타’라는 말을 퍼뜨리면서 와인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 덕에 2006년 즈음부터 1위 자리에 오르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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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에서도 그는 칠레 와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가 칠레 와인을 선호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칠레 와인은 빈티지에 상관없이 고른 품질을 유지하는 한편 마시기에 쉽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산타 헬레나다. 산타 헬레나 또한 그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산 페드로 그룹의 일원이다. 현지에서 산타 헬레나는 1865보다 한 단계 높은 와인이지만 오랜 관계를 감안해 산 페드로에서 가격을 맞춰줬다.

김 대표는 와인사업은 합리적인 포트폴리오, 유통 등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간과해서 안되는 게 가격 정책이라고 말한다. 한 번 가격이 떨어지면 회복이 어려운 게 와인이다. 따라서 적정한 가격 선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인 경쟁을 지속하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되기 십상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와인 가격이 현지보다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그건 와인수입업체의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와인이 소비자에게 닿을 때까지 물류비, 인건비, 판촉비 등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마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 할인점 유통은 거의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와인수입업체의 성장 가능성은 있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이다.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 좋은 와인을 소비자들에게 보급한다는 옳은 생각으로 수입한다면 망할 일이 없는 게 와인사업이다.

“저는 테이스팅을 하면서 어떤 품종을 더 넣으라는 조언도 하고 산타 헬레나처럼 경우에 따라 레이블도 바꿉니다. 한국 시장은 우리가 가장 잘 아니까요. 그러다 보니 애초 계획보다 포트폴리오 구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올해 길진은 와인수입업체 중 매출이 증가한 유일한 회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반기에만 판매량이 36% 증가했으니까요.”

김 대표는 2000년대 중반 증류주에서 와인으로 트렌드가 바뀐 것처럼 와인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고 확신한다. 묵직한 와인에서 가볍지만 균형미가 뛰어난 와인을 선호하는 이들이 느는 것이 그 증거다. 김 대표는 길진의 포트폴리오를 그 변화에 맞춰 구성했다. 그는 3년 후면 그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장소 협찬 가스트로 통(www.gastrotong.co.kr)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