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라는 제목의 독일 영화가 있습니다.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의 기수였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1974년 작품입니다.

영화는 60세 미망인 에미와 아랍계 청년 알리의 사랑,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차가운 시선을 통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소외에 대한 불안감’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데 대해 불안감을 느끼며 이로 인해 정작 참된 인간관계에는 실패한다”는 게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였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작품 자체도 좋지만 제목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불안감’이라고 하는 심리 현상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축적이고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느 철학자의 명제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제목은 아랍의 오래된 속담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쓸데없이 불안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계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요즘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감이 마치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제목을 더욱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청년층은 취업에 대한 불안감, 장년층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합니다. 또 기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기 침체에 대해 불안해하고 직장인들은 실직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얼마 전 만난 모 그룹 관계자는 재벌 기업들 역시 경제민주화 같은 대선 이슈에 대해 매우 불안해한다는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이보다 좀 더 거시적인 불안 요인들도 산재합니다.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국내 가계부채 문제, 유럽의 재정 위기, 중국의 경기 둔화 같은 경제적 이슈들과 북한의 핵 문제,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 같은 정치적 문제들까지 불안정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안감이 지나치면 성장의 두 축인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점입니다. 영화 제목에 빗대자면 ‘불안은 경제의 활력을 잠식한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불안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신생아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격리되는 데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불안감이 숙명적인 것이라면 불안 요인이 커졌다고 해서 움츠릴 것이 아니라 달라진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불안에 굴복하지 않고 그런 기회와 희망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불안의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