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에서 탄생한 단어 ‘제5열’. 현재 유럽 상황을 보면 서유럽, 북유럽,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을 각각 1, 2, 3, 4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5열에 해당하는 국가는 어떤 나라일까.


노벨상 수상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적 상상력과 소재는 많은 부분 스페인에서 나왔다. 헤밍웨이 자신이 스페인의 투우에 열광한 사람이었고 신문사 기자 시절 직접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도 있다. 그런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면서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장군의 주도 하에 있던 반란군을 바라보면서 쓴 헤밍웨이의 유일한 희곡 작품이 있다.

‘제5열’이 그것인데 사실 희곡 자체로는 실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5열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 한국 현대 추리소설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소설가 김성종의 동명의 추리소설로 더 익숙하다. 당시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는데 제5열이라는 집단이 우리나라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국제 스파이 조직을 운영한다는 내용으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추리소설로는 한국 최초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5열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스페인 내전에서 탄생했다. 내전 중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장군이 라디오 방송의 연설 중에 처음 사용한 단어인데 몰라 장군의 군대가 마드리드로 공격을 감행할 때 마드리드 외곽의 4개 부대가 마드리드 내부에 제5의 부대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했다.

그 이후로 제5열은 내부인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외부 세력을 정치·군사적으로 원조해 주는 집단이라는 의미로서 일종의 스파이라는 의미로 통용됐다. 좀 더 자세한 어원은 군대의 행진 형태가 4열종대임을 감안해 행진에 포함돼 있지 않은 5번째 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연루된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은 1930년대에 인민전선 정부가 성립되자 구 교회 및 왕권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한 내란이다. 당시 유럽은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등으로 혼란한 상태였고 그러한 전체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좌파세력들은 코민테른(comintern·국제공산당)의 결성을 통해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공산당, 사회당이 연합한 인민전선을 구성한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한 후에 스페인에도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해 자유주의적 공화파가 출범했는데 그들은 중산계급과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교회와 지주세력, 왕당파 우익정권은 프랑코 장군의 총지휘 아래 모로코의 주둔군을 활용해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 독일, 이탈리아 등은 노골적으로 프랑코 반란군을 지원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무기 수출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반란군을 지원한 반면 구소련은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했다. 내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집권당인 인민전선 정부는 내분으로 내부에 무력 충돌이 생기고 그 와중에 프랑코 장군이 리드하는 반란군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점령하면서 인민전선 연합은 붕괴하고 프랑코 체제가 성립됐다.

스페인 내전은 많은 시사점을 부여하는 유럽 대륙 내의 지역적 내전이었다. 스페인은 이사벨라 여왕 이후 가톨릭 전통이 강한 가운데 교회, 대지주, 군부 등의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중앙집권적인 군사정권이 득세해 왔다.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중앙집권에 반발하고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지방세력들이 동시에 존재해 항상 갈등과 긴장 관계가 유지돼 왔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스페인 내부 바스크족의 분리 독립 요구 등이 그러한 예다.

이러한 내부 갈등에서 비롯된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은 새로운 집권세력인 인민전선 공화진영이 반란군인 프랑코 군대에 패배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싸움에서 내부의 적인 ‘제5열’의 역할이 컸고 또한 인민전선 내부의 분열이 붕괴를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는 부패로 인해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인해 몰락한다는 말이 적용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유럽 남쪽의 한 나라에서 일어난 내전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구소련 등 모든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거나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유럽은 한 국가의 문제가 비단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의 많은 국가가 서로 연결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차원 방정식의 대륙이다.
유럽은 한 국가의 문제가 비단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의 많은 국가가 서로 연결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차원 방정식의 대륙이다.
유럽은 한 국가의 문제가 비단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의 많은 국가가 서로 연결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차원 방정식의 대륙이다.
현재 EU를 구성하는 4개 지역과 제5열 국가

내전의 상처를 가진 스페인이 지금 또 한 번 진통을 겪고 있다. 물론 이 진통은 비단 스페인뿐만 아니라 이웃국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다. 최근 유로 2012의 우승으로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었겠으나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스페인 국채 금리 상승 현상은 유럽연합(EU)과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선도국가들과 당사국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필자는 현재의 EU를 ‘제5열’의 기준으로 구분을 해보고자 한다. 전통 군대의 행진 방식이 4열이라고 하면 지금의 EU도 4열의 행진 방식의 틀에 잡혀 있다고 보인다.

먼저 1열은 유럽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서유럽의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아닐까 싶다. 이들 국가는 EU 탄생의 아이디어에서 실행, 그리고 전반적인 관리에 있어서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EU의 탄생으로 미국을 포함한 북미, 러시아를 포함한 동부 유럽,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 지역과의 경쟁관계에서 규모의 경제와 협상의 파워를 쥘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열은 북유럽 국가들이 아닐까 싶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과 함께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다. 그들은 이미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부국이지만 동시에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은 소수인구 국가이기도 하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유럽의 맹주 역할을 한 사례가 별로 없지만 쌓아놓은 부로 인해 재정이나 금융 경쟁에서 여타 유럽 국가에 뒤지지 않는 존재들이다.

3열은 현재 유럽 위기의 진앙지인 남유럽 국가들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그들이다. 아름다운 관광지를 보유함과 동시에 풍부한 농수산물로 인해서 생활에 그다지 곤궁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서 국가를 장기적 성장기조로 이끌어갈 제조업 등 캐시카우(cash cow·수익 창출원)를 근간으로 한 산업기반은 약한 국가들이다.

어떻게 보면 태생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서유럽 국가들의 관광객이 없이는 관광산업을 유지할 수 없고 또한 부동산 등의 고정자산도 서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의 투자자에 의해 많은 부분 소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4열은 EU의 제조업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동유럽 국가들이다.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면 우크라이나, 발틱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과거 유고연방 국가들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 경제규모나 서유럽과의 근접성, 교류의 활발함을 감안할 때 폴란드 등의 국가들이 EU 내에서의 입지나 기여도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서유럽의 고임금 구조를 견디기 어려운 제조업체들이 옮겨가는 유럽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화학, 자동차, 전자 등의 산업들이 이미 이전한 상태이고 지금은 제조기지가 더 동쪽으로 이동해 과거 유고연방 국가들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지금 EU의 모양새는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형태와 EU 가입국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지방분권이 섞여 있는 형태라고 생각된다. 물론 서유럽 국가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유럽의 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서유럽 국가들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핵심인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이미 1, 2, 3차 산업이 남유럽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에 상당히 이전돼 퍼져 있는 상황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편의에 의해 쉽게 어느 한 국가를 EU에서 탈퇴시킨다거나 제외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매일 매일 개최되는 EU의 경제장관 회의나 여러 지도자 그룹 국가들의 모임에서 이렇다 할 해결책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각 열에 있는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섞여 있는 게 현실이다. 그야말로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내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EU에 가입은 했으나 유로화는 사용하지 않는 영국과 스위스 등의 국가는 또 다른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영국은 올림픽을 치르면서 위기의 유럽 상황과는 무관하게 축제를 벌였다. 1800년대에 영국이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초강국으로 부상한 것처럼 어쩌면 영국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유럽 재정 위기 속에 차별화된 파운드의 힘을 강화시켜 가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EU 내에서 힘을 빼고 새로운 유럽의 종주국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혹시 제5열은 영국과 스위스는 아닐지 의심을 해보게 된다.


일러스트 추덕영
이동훈 동아제약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