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IRA와 IRP의 차이는?
지금까지도 IRP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개인퇴직계좌(IRA) 제도가 있었다. 근로자가 직장을 옮길 경우 이전 근무지에서 받은 퇴직급여를 넣어두면 은퇴 시점까지 관리해주는 계좌였다. 그런데 IRA는 가입이 의무화돼 있지 않았고 퇴직 후 60일 이내에 가입해야 하는 등 가입 절차도 번거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가입에 따른 특별한 혜택도 없어 가입 실적이 미미한 상태가 계속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새로 도입된 IRP는 그동안 지적돼온 IRA의 단점을 보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가입에 제한이 없다. 기존 퇴직연금 가입자는 물론 일반 근로자까지 언제든지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IRA와 IRP의 또 한 가지 차이는 IRA는 근로자 자유의사에 따라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던 데 비해, 기존 퇴직연금 가입자에게는 IRP 가입이 의무화된다는 점이다.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당장은 IRP에 가입할 필요가 없지만, 나중에 퇴직연금을 받으려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이 IRP를 통해서만 지급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직장을 떠날 때 받는 퇴직금은 일단 근로자가 지정한 IRP에 입금이 되고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 여기에서 출금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추가 납입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IRP가 IRA와 다른 점이다. 연간 1200만 원 한도 내에서 추가 납입이 가능할 뿐 아니라 추가로 적립한 금액에서 운용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자금을 인출하기 전까지는 과세이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IRP 도입의 목적
이번에 정책당국이 IRP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목적은, 퇴직금 또는 퇴직연금을 IRP에 묶어둠으로써 노후 자금이 단기간에 소비 자금으로 소진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데 있다. 그런데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목적 이외에도 은퇴 준비 통장으로서 IRP라고 하는 상품 자체의 매력 또한 매우 크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단순히 퇴직금 수령 용도로뿐만 아니라 노후 대비 자산관리 통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IRP를 통해 현재까지 적립된 노후 자금을 한눈에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노후 자산 플랜을 세우기도 용이하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더 노후 자산을 모아야 하는지, 은퇴 후의 생활수준은 어느 정도가 될지 등을 예상하고, 부족하다면 미리 이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유혹에 마음이 흔들린다. 20~30년 뒤에 닥칠 노후를 준비하기보다는 당장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다. IRP는 이러한 심리의 허점을 보완해 준다. 은퇴 후에 쓸 자금이라고 이름표를 붙여둠으로써 이 돈만은 가급적 지켜야 한다는 마음속 안전장치를 채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IRP는 세제 혜택도 주어지는데 크게 두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나는 근로자 본인이 추가로 납부한 금액에 대해 개인연금과 합산해서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확정기여형(DC형) 연금만 추가 납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확정급여형(DB형) 연금 가입자는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IRP에 가입하면 DC형 연금 추가 납입분은 물론 일반 근로자들도 똑같이 퇴직연금의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세금 납부를 연기할 수 있는 과세이연 혜택이다. 즉 IRP를 활용해서 예금이나 펀드 등에 투자해 수익을 얻더라도 이에 대한 이자·배당소득세를 매년 낼 필요 없이 나중에 퇴직연금을 받을 때 계산해서 내면 된다.
과세이연 혜택은 장기 투자로 이어질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매년 납부해야 할 세금을 재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 수익이 커지는 복리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IRP에 모아둔 퇴직연금은 가능하면 늦게 인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과세이연 혜택을 되도록 오래 유지하면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IRP와 연금저축의 차이는?
IRP가 도입되면서 연금저축에 투자했거나 DC형 퇴직연금으로 추가 납입을 해온 투자자에게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 운용 수단이 종전에는 두 가지였다면 이제는 세 가지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세 가지 경로를 통해 납입한 납부 총액에 대해 소득공제 한도가 400만 원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비중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DC형 연금에 가입해 있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IRP와 연금저축 중 어떤 상품을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 될 것이다.
세금 혜택만 고려한다면 IRP를 활용하는 것이 개인연금에 비해 유리하다. 퇴직금을 수령할 때는 6~38%의 퇴직소득세가 원천 징수되는 반면, IRP는 계좌를 해지할 때까지 과세가 이연되는 만큼 세금이 재투자되는 데 따른 복리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공제 면에서도 연금저축보다 IRP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연금저축은 10년 이상 가입해야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55세 이후 5년 이상 나눠 받아야 낮은 연금소득세율(5.5%)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중도에 인출하거나 일시금으로 받으면 그동안 받은 소득공제 원금과 이자수익에 대해 기타소득세(22%)뿐만 아니라 가입 기간에 따라 해지가산세(5년 이내 해지 시 2%)까지 과세된다. 반면 IRP는 퇴직 혹은 이직 후 언제라도 원하는 시점에 해지가 가능하다. 개인연금처럼 중도 해지에 따른 페널티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IRP와 연금저축은 둘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IRP는 가입 기간도 없고 퇴직 후 언제든지 해지가 가능하지만, 리스크가 큰 상품에는 40% 이상 운용할 수 없다. 따라서 공격적인 자산 운용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연금저축의 경우에는, 주식형 펀드를 선택하면 리스크가 큰 상품에 제한 없이 투자를 할 수 있다. 공격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운용 대상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보면 연금저축은 연금보험, 신탁, 펀드 중에서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선택해야 한다. 반면에 IRP는 주가연계증권(ELS), 정기예금 등 운용 대상 상품의 선택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산관리 목표다. IRP 추가 납입과 연금저축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한다면 보다 바람직한 노후 대비 자산 운용이 가능할 것이다.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일러스트 추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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