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노동계에서는 수명 연장에 따라 정년 연령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기업에서는 인건비 부담과 젊은 층의 일자리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년 연장 논의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령 연령은 60세 이후로 미뤄졌는데, 기업의 실질 정년 연령은 53세 전후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추가적인 소득원 없이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벌어놓은 돈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 자녀 교육과 내 집 마련에 빚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정년 연령 연장이 절실하다.

그러나 정년이 몇 년 더 연장된다고 해서 우리의 현실이 어느 날 갑자기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길어진 인생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재무적 체력은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이 재무적 체력을 길러내지 못하면 정년 연장도 임시적인 방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연금제도는 길어진 노후에 대비해 재무적 체력을 배양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회적 도구다. 이는 오래전부터 고령화 문제를 경험해온 선진국에서 검증된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게 유효한 진행형 사실이다.

동양과 서양에는 수많은 고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은 단연 ‘삼국지’가 아닐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장인 민관동 교수는 ‘삼국지’를 일컬어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인생의 교과서로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필독서”라고 주장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논쟁하지 말고,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민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과 전투 이야기는 재미를 넘어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금제도를 잘 활용하는 방법과 관련한 지혜를 살펴보자.



연금은 노후에 받는 월급

먼저 삼고초려(三顧草廬)다. 삼고초려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간 이야기다. 매번 조조에게 혼만 나던 유비는 세 번째 방문에서야 만난 제갈공명으로부터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책을 듣고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게 된다. 삼국의 틀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만나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해 갔다. 지금의 우리에게 미래를 설계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것은 연금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특히 고도로 분업화가 진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이는 노후에도 마찬가지다.

노후에도 현역시절처럼 월급이 필요하다. 노후에 받는 월급이 곧 연금이다. 현역시절에 연금을 갖춰놓아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다. 그것도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의 계책처럼 3개의 연금을 갖춰놔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까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가입을 서두르자. 사적연금인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역시 100세 시대의 필수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적연금 가입 시에는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인이 권유한다고 해서, 기존에 거래 관계가 있다고 해서, 그 금융회사에 가입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진영에 합류한 것을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에 대한 제갈공명의 예의라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조조에게는 곽가, 순욱 등 뛰어난 인재가 즐비했고, 손권에게는 주유와 노숙 등 쟁쟁한 가신그룹이 존재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적었던 반면에 인재가 부족했던 유비에게는 개척의 여지가 많았다는 점을 제갈공명은 계산한 것이다. 게다가 위임형 군주라는 유비의 성격까지 감안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와 제갈공명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 평생지기로까지 발전했다. 마찬가지로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3개의 연금과 평생친구가 돼야 한다. 사회생활 시작과 동시에 3개의 연금에 가입하고, 사적연금의 운영 주체를 신중하게 선택하자.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환계와 괄목상대의 교훈

두 번째는 연환계(連環計)다. 연환계는 적벽대전에서 100만 대군의 조조군을 궤멸로 몰아간 유비와 손권 연합군의 핵심 계책이다. 수전(水戰)에 익숙지 않은 조조군이 심한 뱃멀미로 고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유비의 책사 방통은 조조를 속여 조조군의 배를 쇠사슬로 연결하게 만들었다.

쇠사슬로 연결된 배들이 양쯔강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게 되자 뱃멀미에서 해방된 조조는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이는 방통이 조조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유가 계획하고 있던 화공(火攻)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가벼운 파도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쇠사슬로 연결하자 큰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100세 시대라는 커다란 강 위에서 일엽편주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 모두 심한 뱃멀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강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다. 연환계가 필요한 이유다.

100세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것은 앞서 말한 세 개의 연금이다. 하지만 세 개의 연금을 배에 다 실었다 하더라도 배의 흔들림이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세 개 연금의 무게, 즉 가치를 측정해보고 그 무게에 따라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수령 시점과 금액을 가늠해보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역할을 구체화해야 한다.

정년에서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 소득공백기에 가교연금으로 활용할지, 국민연금의 소득부족분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이용할지, 아니면 노후의 주요 수입원으로 활용할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후 현재 납입하고 있는 금액이 적정 수준인지를 따져보자. 그래야만 100세 시대라는 큰 강을 유람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세 번째는 괄목상대(刮目相對)다. 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로 어떤 사람의 학식이나 재주가 생각보다 크게 발전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오나라의 장수 여몽은 어린 시절 가난했던 탓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무공을 연마해 장군이 된 인물이다.

어느 날 오나라 군주 손권으로부터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에는 게으르다는 질책을 받은 여몽은 그날부터 학문에 매진해 당시 노학자와 전문가들이 탄식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됐다.

괄목상대는 주유의 뒤를 이어 총사령관에 오른 노숙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은 여몽이 “대장부를 사흘간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마땅히 눈을 비비고 자세히 봐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이런 여몽을 얕본 관우가 여몽에 패해 결국 불귀의 객이 되는 부분은 ‘삼국지’의 중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괄목상대는 우리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면 괄목상대 이전의 여몽처럼 배움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은 이런 현실적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하는 현장에서 교육의 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입자 교육을 잘 활용하면 괄목상대하긴 힘들지라도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입자 교육을 잘하는 사업자를 선택하는 것은 퇴직연금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방법의 하나다.


일러스트 김영민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