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차례의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 문제였습니다. 아마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인지 이제는 익숙해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문구가 이곳저곳에서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잘 알려졌듯이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이 슬로건으로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을 공격해 승리했고 이후 이 문구는 주요 선거 때마다 인용되는 명언(?)이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정반대의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생각 말입니다. 클린턴 식으로 표현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 It’s the politics, stupid)!’가 되겠죠. 차이라면 클린턴의 슬로건이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인 데 비해 이 슬로건은 유권자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경제는 정치적 배경에 의해 휘둘리는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럽의 재정 위기도 그 근인(根因)은 정치에 있습니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적 정책의 병폐가 누적돼 결국 곪아터진 것이죠. 이웃 일본이 장기간의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거의 1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정치의 불안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짓눌러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결정들이 이루어졌던 사례는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YS 정부 때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 같은 예가 아마도 대표적일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대거 추진됐던 각종 지역개발사업도 냉철히 따지고 보면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압도했던 사례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특히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각 후보마다 관련 공약들을 쏟아낼 태세입니다. 하지만 무상 보육 등 일련의 포퓰리즘적 정책들은 벌써부터 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근시안적으로 봐서는 달콤한 정책들이 장기적으로는 고통을 안기는 것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의 격언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 유권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선의로 포장된 길’을 가려내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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