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던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 못 나눴던 얘기를 나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후배는 증권업을 접고 알래스카에서 3년 정도 선교 활동을 하다가 로스앤젤레스(LA)로 돌아와 몇 달 전에 상업용 부동산융자 회사를 세웠다. 파트너들이 은행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회사를 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업계에선 벌써 상위권에 진입해 있다고 한다.

이 친구 말이 지난 5년 동안 번 돈보다 몇 달 동안 더 많이 벌었다고 한다. 얼마나 바쁜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그의 사업 계획에는 내년쯤 작은 은행을 하나 인수할 것이 포함돼 있다고 하니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융자는 보통 5년마다 재융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정점이었던 2007년에 구입한 매물이 지금 재융자에 들어가고 있을 텐데 가격 하락으로 아마 융자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인 상황은 아닐 수 있겠지만 후배 말로는 건물 소유주가 사용하고 있는 빌딩일 경우 건물 감정가의 90%까지도 융자가 가능하다고 한다.

보통 빌딩 가격의 25∼40% 정도 자기자본이 필요한 것이 상식인데 후배의 말은 뜻밖이었다. 후배는 또 융자 이자율이 가장 낮은 곳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라고 하며 그쪽은 아마 이익을 거의 남기지 않는 융자를 하고 있을 것이라 했다.

2006년에서 2008년 사이에 매매됐던 상업용 부동산의 재융자 시기가 가치 하락으로 시한폭탄이라고 예견했던 시장 전망이 금융권이 융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로 바뀌었다면, 재융자 시기가 대량 차압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수정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현재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현황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봤다.

2007년 상업용 부동산 담보 채권 중 61% 정도가 아직 대출 상환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반 정도는 상환이 연기됐거나 조정됐으며 10% 정도가 연체돼 있는 상태라고 한다. 2007년 초에 연체율이 0.4%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상당히 악화돼 있는 것이지만 상업용 부동산 리서치 업체인 코스타그룹(CoStar Group)이 최근 발표한 상업용 부동산 현황에 의하면 소매업 쪽을 제외한 공실률 감소율이 계속 가속화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임대료도 지역에 따라 증가세에 있는 것으로 보여 고용률 회복이 사무실, 공업용 부동산 회복세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과 부동산 소유주들의 노력도 좋은 결실만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이후에 이자율을 내려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시켜 주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 조정해준 대출 중 반 이상이 또다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고, 이미 이 중 9% 이상이 다시 대출 상환이 연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2007년 최고치에서 34.5%나 하락해 있어 잘못하면 원금 자체를 삭감해 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후배가 얘기한 10%의 자기자본으로 매입 가능한 대출을 SBA 504론(loan)이라고 하는데, 금융권에서 이 같은 대출에 대해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대출 금액의 40%를 정부에서 부담해 주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경우 비교적 적은 금액의 투자로 사업에 필요한 공간을 임대하지 않고 직접 매입해서 경우에 따라 임대보다 소유하는 것이 지출을 줄일 수도 있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면 좋은 투자도 될 수 있어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런 종류의 대출은 2011년에 23%나 증가했고 2012년에는 1분기에만 16%가 증가했다.

물론 대출을 받기 위해선 충족해야 할 다른 조건도 있지만, 대출 기간이 일반 상업용 부동산 대출보다 긴 20년이어서 소규모 사업체에 상환 부담도 훨씬 덜어주고 있다. 이같이 다양한 정책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시장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결론적으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부분적 회복, 지역적 회복은 보이나 본격적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불확실한 요소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김세주 _ 김앤정 웰스매니지먼트 대표(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