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어디서 살까. 지금 살고 있는 정든 내 집에서 노후를 보낼까. 한적한 전원 주택으로 옮겨 볼까. 편리한 시설을 갖춘 실버타운에 들어갈까. 노후의 주거 문제도 미리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한다. 은퇴가 임박한 베이비부머라면 특히 그렇다.


은퇴하면 거주지를 바꾸려는 사람이 많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해 서울 및 광역시 거주자 2000명(은퇴자 200명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은퇴준비지수 조사에 따르면, 비은퇴자의 68.4%가 은퇴 후 거주지를 옮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거주지는 ‘현재 거주지 근처의 중소도시’(44.2%)였다. 이어‘현재 거주지 근처의 농어촌’(22.1%), ‘현재 거주지와 먼 농어촌’(11.4%),‘현재 거주지와 먼 중소도시’(7.7%) 등의 순이었다. 은퇴 전엔 대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은퇴한 뒤에는 중소도시나 농어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도시를 떠나 중소도시나 농어촌으로 거주지를 옮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도시의 비싼 집값 부담을 덜어내고 그렇게 해서 생긴 여윳돈을 노후 생활비의 재원으로 활용하려는 게 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직장 출퇴근과 자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도시에 살았지만, 더 이상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은퇴 후엔 좀 더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첫 번째 이유와 관련해서 삼성생명 은퇴준비지수 조사 결과, 자가 거주 가구의 48.1%가 보유하고 있는 집을 은퇴 후 생활비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 사람들의 43.9%는 집값이 싼 지역으로 이사해서, 27.9%는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집 규모를 줄여서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을 은퇴 후 생활비에 보탤 생각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통해 노후 생활 자금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편중돼 있고, 부동산 중에서도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런 생각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WEALTH CARE] 노후 주거 계획, 이렇게 세워라!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베이비부머

두 번째 이유인 쾌적한 자연환경을 선호하는 경향은 베이비부머에게서 두드러진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0년 조사(베이비부머의 생활 실태 및 복지 욕구)에서 조사 대상인 전국 베이비부머 3000여 명이 은퇴 후 거주지 선택 시 중요한 조건을 묻는 질문에 ‘자연환경’(47.3%)을 첫손에 꼽았다. 친구 집단, 사회 참여기반 등 사회적 소통(16.0%), 보건의료시설(15.9%), 문화여가시설(10.5%), 자녀와의 거리(10.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 베이비부머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여가소비문화 활성화 방안)에서도 같은 질문에 대해 ‘자연환경’(46.0%)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주거 및 생활비용’(20.8%),‘여가문화 활동 용이성’(13.3%),‘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10.5%),‘마트 등 일상생활 서비스 접근성’(8.3%) 등의 순이었다.



의료시설 접근성을 중요한 변수로 삼아라

이렇게 자연환경 선호 경향이 뚜렷하더라도 자연환경만으로 은퇴 후 거주지를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은퇴 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젊었을 때와 달리 노후엔 거주지를 바꾸는 게 힘든 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연환경 외에도 여러 요인을 꼼꼼하게 따져 노후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앞의 두 가지 베이비부머 대상 조사들에서 나타난 항목들이 함께 고려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료시설을 중요한 변수로 삼아야 한다. 한 연구(보건사회연구원, 생애의료비 추정을 통한 의료비 분석, 2011)에 따르면 남성은 64세, 여성은 66세 이후에 평생 의료비의 절반을 사용한다.

그만큼 노후엔 의료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노후 거주지를 선택할 때 주변에 편하게 갈 수 있는 의료시설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좋다. 자연환경을 과도하게 중요시해서 외딴 곳에 거주지를 정하는 바람에 노후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게 어려워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은퇴 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젊었을 때와 달리 노후엔 거주지를 바꾸는 게 힘든 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연환경 외에도 여러 요인을 꼼꼼하게 따져 노후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한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은퇴 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젊었을 때와 달리 노후엔 거주지를 바꾸는 게 힘든 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연환경 외에도 여러 요인을 꼼꼼하게 따져 노후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회적 관계망 유지에 도움되는 곳으로

노후 생활 기간은 활동기, 회고기, 간병기, 배우자 홀로 생존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활동기는 은퇴 후 70대 초·중반 정도까지의 시기로 근로 기간 중 하고 싶었던 여러 활동을 하게 된다. 등산, 여행 등 일하느라 미뤄 둔 활동에 많은 시간을 쓴다.

회고기는 70대 후반부터 활동력이 떨어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때다. 활동기에 비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노출된다. 일본에선 사회적 고립이 외로운 죽음, 고독사(孤獨死)라는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고립을 피하려면 사회적 관계망을 탄탄하게 유지해야 한다. 친구, 친척, 동호회, 지역주민, 봉사단체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계속해서 교류할 수 있는 곳에 노후 거주지를 정해야 한다. 탄탄한 사회적 관계망이 활동기 때 넘치는 자유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데도 필수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자녀와의 거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노후에 자녀와 따로 살겠다는 베이비부머가 많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베이비붐 세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거리와 상관없이 따로 살겠다’는 응답이 47.0%에 달했다. 이어‘가까운 거리에 따로 살겠다’가 35.2%였고, ‘같이 살겠다’는 응답은 12.0%에 불과했다. 자녀에게 부모 부양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보내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욕구도 노후에 건강이 악화되거나,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상황을 가정하면 변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되면 자녀와 같이 살거나 가까이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및 서초구 거주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연구(황선혜 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주거 이동 계획 패턴 연구, 2010)에서 응답자들은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살 경우엔 은퇴 후 주거 선택에서 ‘자녀와의 근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거나,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다면 자녀와의 근접성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꼽았다. 노후 생활에서 자녀와의 거리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후 주거 계획을 세울 때는 노후 생활의 특성을 감안해서 자연환경 외에도 의료시설, 사회적 관계망, 자녀와의 거리 등 여러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노후 주거 계획을 수립해 풍요롭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를 기대한다.


장경영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