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ufacture de Haute Horlogerie Piaget
7월 초순, 스위스 제네바는 여름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였다. 138년 전통의 스위스 워치메이커이자 주얼리 브랜드인 피아제(Piaget)의 전설적인 매뉴팩처를 방문한 날 역시 그랬다. 100% 자체 제작과 100% 통합 제작이라는 기술적 노하우로 스위스 5대 워치메이커의 하나로 자존심을 지켜온 피아제의 매뉴팩처를 찾았다. Part.1최고급 시계의 산실 피아제 라코토페 & 플랑레와트(MHHP) 매뉴팩처
피아제는 무브먼트에서 케이스, 브레이슬릿 등 시계 제작을 위한 부품과 수많은 부품들을 만드는 툴(tool)까지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매뉴팩처 워치 브랜드다. 브랜드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DNA는 지난 138년간 진화와 발전을 거듭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얇은(ultra-thin) 시계와 무브먼트, 창의적인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주얼리 워치 등 명실 공히 스위스 시계산업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던 걸작(傑作)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
무브먼트가 시계의 ‘심장’에 비유된다면, 스위스의 시계 매뉴팩처들은 국가 대표 산업을 이끄는 국가의 ‘심장’에 비유될 수 있다. 말로만 듣던 제네바 소재 피아제의 양대 매뉴팩처를 찾던 날의 감회는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오직 시계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6주 이상 무브먼트 하나의 조립에 매달리는 시계 장인들의 손끝은 매섭고도 예리했다. 32개의 무브먼트 가운데 무려 20개를 울트라-씬 무브먼트로 확보하고 있는 피아제의 양대 매뉴팩처를 소개한다. 라코토페 매뉴팩처 La Cote-aux-Fees Manufacture
스위스 라 쥐라(La Jura) 산 해발 1000m 지점에 위치한 그림 같은 피아제의 매뉴팩처이다. 여름에 찾은 쥐라 산맥은 다크 그린의 녹음에 눈이 부셨고, 시계 장인들의 작업실에는 더없이 따뜻한 햇살이 들어왔다. 라코토페 매뉴팩처는 피아제 전통적 시계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곳으로 부속품 생산과 장식, 무브먼트 조립, 조정, 폴리싱 등 40여 가지와 워치메이킹 공정만을 진행하고 있다. 연간 2만여 개의 무브먼트만을 생산하며 생산량에 제한을 두고 있는 라코토페 매뉴팩처는 최상의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조립에 스위스 최고의 시계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시계 장인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조명인 자연광에서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새벽 4시에 출근해 해가 지는 오후면 일찍이 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시계전문학교 출신들로 워치메이킹에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 이곳에서 만난 장인들은 생각보다 젊었다.
Manufacture de haute horlogerie piaget(MHHP)
칸톤 제네바(Canton Geneva) 지역에 위치한 MHHP(플랑레와트 매뉴팩처)는 라코토페에 비해 규모가 크며 현대적 시설을 완비한 매뉴팩처로 무브먼트를 제외한 모든 공정과 하이 주얼리 제작이 이뤄지는 곳이다. 무브먼트만큼은 라코토페 매뉴팩처에서 전통적 제작 방식에 따라 생산하고 있기 때문.
라코토페 매뉴팩처에서 제작된 무브먼트는 완벽한 진공상태로 매일 MHHP로 배송된 후 이곳에서 케이싱(casing) 작업이 이뤄진다. 100% 통합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이곳은 연구·개발(R&D) 센터에 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12명의 시계 디자이너의 컴퓨터 그래픽 스케치에서 출발하는 시계 제작은 실용성과 미학적인 부분의 검증을 통해 실제 시계로 변모해 가기 시작하는데 각 공정은 분리돼 있지 않고 완벽한 통합(integrated)을 이루고 있다. Part.2
울트라-씬 워치메이킹을 가능하게 한 피아제 워치 매뉴팩처의 비결 5
울트라-씬 무브먼트,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든 피아제 매뉴팩처의 비결은 무엇일까. 피아제의 심장을 뛰게 하는 비결을 분석해 본다. 1. 부속품 생산 장비까지 100% 자체 제작
피아제는 모든 무브먼트를 자체적으로 개발, 제작하는 매뉴팩처 브랜드로 무브먼트에 관한 모든 작업은 3400㎡ 규모의 라코토페 매뉴팩처에서 이뤄진다. 피아제는 무브먼트에 필요한 부속품 일체를 자체 생산하는데, 메인 플레이트, 브리지, 스크루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속품까지도 포함한다. 전 세계 시계산업에서 극소수의 100% 통합 매뉴팩처 브랜드 중 하나로 피아제는 무브먼트 부속뿐 아니라 무브먼트를 제작하기 위한 스크루 드라이버, 브리지 및 메인 플레이트 지지대 등 모든 도구와 장비까지도 ‘장비 공방’에서 자체 개발 후 제작한다. 이러한 제조 도구들은 모두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어 피아제 고유의 특성과 고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피아제가 울트라-씬 영역의 한계에 도전해 두께에 관한 한 세계 기록을 써나갈 수 있었던 것은 무브먼트를 위한 특화된 도구와 장비, 부속품 일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울트라-씬 무브먼트 매뉴팩처
라코토페 매뉴팩처에는 크로노그래프 공방, 컴플리케이션 공방과 더불어 전문화된 울트라-씬 공방이 따로 있다. 피아제에 있어 울트라-씬 무브먼트는 컴플리케이션으로 간주되는데 그 이유는 기능상의 분류에 있어 울트라-씬 무브먼트가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가 아닐지라도 초박형 무브먼트는 조립하는 공정이 일반 무브먼트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워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만큼 높은 기술력과 정교함을 요하기 때문. 일반 부속품보다 훨씬 얇고 작은 부속품으로 이뤄진 울트라-씬 무브먼트는 부속과 부속 간의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속품 간의 균형을 완벽히 맞춰 수공으로 조립해내는 작업은 극도로 숙련된 기술력을 요구한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울트라-씬 무브먼트 제조의 노하우와 전통을 전수받은 울트라-씬 공방 시계 장인들은 피아제를 상징하는 초박형 시계 라인, 알티플라노 컬렉션의 10가지 무브먼트를 생산하고 있다.
3. 한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고정밀 퀄리티 컨트롤
피아제에서는 하나의 공정을 마칠 때마다 규격에 맞게 완성됐는지를 일일이 사람이 검사하는데,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재작업 또는 폐기 처분한다. 모든 조립 공정을 마친 무브먼트는 정확성을 테스트하고 조정하는 고정밀 타이밍 및 컨트롤 과정을 거치는데, 시계의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속도를 위해서는 그 어떤 제작상의 오류도 없어야 하므로 이 단계에서는 상당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전문 인력이 요구된다. 시계가 처음으로 움직이는 ‘심장박동’을 시작하면 숙련된 워치메이커가 섬세하게 칼리버를 조정한다. 피아제의 모든 무브먼트는 케이스에 장착되기 이전, 한 주 간격으로 3주 동안 극도로 엄격한 테스팅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통과된 무브먼트만 시계에 장착된다. 이처럼 완벽한 퀄리티 컨트롤 과정이 높은 정확성을 자랑하는 울트라-씬 시계를 탄생시켰다.
4. 하나의 무브먼트를 위해 특화된 하나의 케이스
9300㎡에 달하는 매뉴팩처 드 오트 오를로제리 피아제(MHHP)는 고성능 정밀시계의 가시적인 부속품 제작과 독보적인 창조성이 빛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귀금속만을 이용한 모든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케이스 생산, 보석 세팅 작업, 케이싱 업(casing-up), 품질관리, 마감까지의 무브먼트 관련 작업을 제외한 모든 활동을 이곳에서 진행한다. 통합 매뉴팩처 시스템을 지닌 피아제는 무브먼트와 케이스를 각각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개발된 무브먼트에 최적화된 케이스를 맞춤 제작해낸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케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5. 최상급 오트 오를로제리 마감
피아제의 울트라-씬 시계가 지닌 특별함은 자체 제작 무브먼트 기술력, 케이스 제조 기술력뿐 아니라 완벽한 오트 오를로제리 마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피아제는 눈으로 보이는 시계의 케이스나 브레이슬릿뿐만 아니라 무브먼트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부속품까지도 최상급 마감 공정을 고집한다. ‘언제나 완벽, 그 이상을 추구해라(Always do better than necessary)’라는 브랜드 모토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울트라-씬 모델에 무한한 자긍심 느낀다”
이브 보난드(Yves Bornand) 라코토페 매뉴팩처 책임자 피아제를 어떤 브랜드라고 생각하는가.
“스위스의 5대 최고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1970년대 일본산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시계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직원들을 정리하지 않았을 정도로 시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는 브랜드다. 피아제는 시계이지만 미학적인 부분(보석)도 함께 생산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안해 왔다. 가족경영 덕분에 기업 문화 역시 가족적이다.”
피아제 매뉴팩처가 라코토페에 자리했던 이유가 특별히 있었나.
“스페인에서 온 워치메이커가 있었는데, 나는 그가 이곳에서 못 견딜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2년을 넘기며 해가 뜰 때 일을 시작해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일을 마루리하는 이곳의 자연환경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라코토페는 시계 장인들을 위한 최고의 환경이다. 라 쥐라 산은 알프스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지니고 소나무가 많다. 다크 그린의 신록이 편안한 휴식을 선사한다. 겨울이 10월부터 5월까지 길어 눈이 오므로 농한기에 시계 제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피아제의 매뉴팩처는 최근 100여 명의 임직원을 셋업하며 생산 경쟁력을 정비한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2만3000여 개로 무브먼트 생산량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라면 1년에 2만300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일손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계 장인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술 인력을 어떻게 채용하나.
“지원자를 3주간 일을 시켜보고 기술과 인성을 파악한다. 워치메이커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일의 특성상 보수적이다. 시계전문학교를 졸업한 경우에도 평점 6점 만점에 4.5점 이상을 획득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시계제작자들의 기술교육 등도 진행하는가.
“물론이다. 정기적으로 워치메이킹 학교 교수를 초빙해서 교육을 받는다.”
피아제 무브먼트 가운데 매뉴팩처의 자존심을 가장 높게 세워준 모델이 있다면.
“아무래도 울트라-씬 라인이다.”
매뉴팩처 밖에서 혹은 외국에서 피아제 시계나 주얼리를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나.
“지나가는 사람이 피아제 시계를 착용하고 있을 때나 숍에서 피아제 시계를 보면 가슴이 뛰고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다.”
시계 마니아들을 위해 시계 보관법과 사용법에 대한 팁이 있다면.
“피아제는 얇은 시계이므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피아제는 정원 가꿀 때 찰 수 있는 시계가 아니다. 4~5년마다 워치메이커에게 가져가서 점검을 받고 프레시 오일을 쳐주는 것이 좋다.”
제네바(스위스)=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제공 Piaget(02-3440-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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