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시작한 유로존의 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를 반영해 유로화는 연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로화 가치의 급락은 비유럽인들에겐 유럽 여행에 드는 비용이 그만큼 가벼워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중국을 비롯한 비유럽 국가 여행자들의 유럽 여행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원화에 대한 유로화 가치 또한 급락한 요즘, 유럽을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스, 로마 등지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유럽 재정 위기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보너스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Greece Athens
유럽 재정 위기의 발원지이자 유럽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
유럽 재정 위기의 출발점인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유럽의 고대문명이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 고전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을 손으로 빚듯 다듬어낸 정교한 조각상 등은 전 세계 여행자들의 로망이 됐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재 덕분에 근대 이후 관광업은 그리스의 중심 산업이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재정 위기도 그리스의 역사와 관광업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2001년 유로존 가입 이후 그리스 통화는 이전의 드라크마화에서 유로화로 바뀌었다. 유로화는 그리스의 경제력에 비해 가치가 높았고, 그리스 내 물가와 사람들의 구매력이 동시에 뛰었다.
그리하여 ‘저렴한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사라지고, 대신 그리스인들은 그전까지 그림의 떡이었던 독일이나 프랑스의 제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었으니, 당연히 결과는 재정건전성 악화로 나타난 것이다.
찬란했던 고대 이후의 역사 또한 그리스 금융 위기의 배경이 된다.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성기를 맞았던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당한 이후 로마와 비잔티움,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립을 했지만 외세의 개입에 의한 내전이 3차에 걸쳐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한다. 세금은 피할수록 좋은 것이며 뇌물은 챙길수록 좋은 것이 됐다. 지금 그리스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탈세와 부정부패의 전통(?)은 뿌리 깊은 것이다. 만약 지금 아테네를 찾는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볼 것. 정부의 요금 인상 정책에 반대하는 개표원이 무임승차를 권유할지도 모른다. 외국 관광객의 지갑에서 한 푼이라도 더 끌어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유명 관광지들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일에 문을 닫았다. 오후 2시면 업무를 마치는 공무원들에게 관광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서 유럽 재정 위기의 일단을 체험했다면, 이제는 유럽의 찬란한 고대문명을 증언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을 둘러볼 차례. 아테네의 핵심 볼거리들은 아크로폴리스 주변에 모두 모여 있어 둘러보기 편하다. 대부분 평지인 아테네에서 불쑥 솟아있는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에 디오니소스 극장을 만난다. 기원전 4세기에 돌로 지었다는 이곳에서 그리스의 비극이 태어났다.
해발 150m의 언덕인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그 유명한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이 조형미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는 이곳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신 곳이다. 찬란한 고대 이후 숱한 고난의 역사를 이겨온 그리스인들이 다시 한 번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금융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아크로폴리스를 보았다면 차로 10분 거리인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50개가 넘는 전시실에 그리스 문명의 정수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역사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포세이돈상은 신이 아니라 인간 신체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리석 비너스상의 풍성한 옷 주름에도, 소년의 나체가 정밀하게 묘사된 청동 그릇의 손잡이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테네 관광의 마무리는 리카비토스 언덕에서 하는 것이 좋다. 아테네 최고 높이의 언덕(해발 277m)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아테네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망대 망원경을 통해 야간 조명을 받은 파르테논 신전을 감상할 수도 있다.
Meteora
하늘 아래 첫 수도원, 그리스 메테오라
금융 위기로 뒤숭숭한 아테네 관광을 마쳤다면, 이번엔 속세를 벗어나 천상의 마을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테네에서 차로 5시간, 1박 2일의 익스커션(excursion·단체로 하는 짧은 여행)으로 딱 알맞은 거리에 하늘 아래 첫 수도원, 메테오라가 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매달린’이란 뜻. 중국의 황산, 혹은 우리나라 마이산처럼 뜬금없이 솟아오른 깎아지른 절벽 산 위에 수도원들이 들어서 있다. 쉽게 굴을 팔 수 있는 메테오라의 사암 산에 중세의 수도사들이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이들은 최고 550m에 달하는 절벽 산꼭대기 동굴에 자리를 잡고 세상과 격리된 수행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4세기에 첫 수도원을 짓기 시작해 전성기에는 절벽 꼭대기에 들어선 수도원이 모두 20개 남짓이나 됐단다. 현재 남아 있는 수도원은 모두 6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폭격으로 대부분의 수도원이 파괴된 것이다. 그나마 지금 있는 수도원들도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란다. 그래도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바위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수도원들은 존재 자체가 신비롭다. 어떤 수도원은 올라가는 길이 없어 밧줄에 그물을 달아 사람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신앙 때문에 혹은 그림 같은 수도원의 모습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하나 둘 길이 생기고, 1980년에는 이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방문객들은 더욱 늘어나게 됐다. 지금은 남아 있는 수도원 전체가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에게 개방되고, 이곳에서 수행하던 수사와 수녀들은 다른 수도원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속세의 기운이 범접하기 힘든 위치이기 때문일까. 수도자들은 떠났지만 수도원은 그 옛날의 경건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절벽에 굴을 파고 수도원을 세웠던 중세 사람들의 믿음이 벽과 천장의 성화뿐 아니라 소박한 부엌 살림살이에도 남아 있었다. 6개의 수도원 중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큰 규모로 자리 잡은 ‘메갈로 메테오로’에는 한 수도자가 14년에 걸쳐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다는 십자가 조각상이 있었다. 수사들이 정성껏 옮겨 쓴 필사본들과 아름다운 성화들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곳에서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먼저 생을 마감한 수사들의 유골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납골당이다. 속세를 떠나 신앙으로 평생을 수행에 전념한 수도승의 해골은 낯선 여행자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주는 듯도 했다. 지금까지 세상에는 숱한 시련이 있었고, 지금의 금융 위기도 결국은 지나가게 될 거라는. 아니, 결국은 이렇게 백골로 남을 인간들의 욕심이 이런 위기를 불러왔다는 질책일지도 모른다.
Spain Madrid
투우장을 가득 메운 열정, 스페인 마드리드
그리스가 유럽 재정 위기의 깃털이라면 스페인은 몸통이라 불릴 만하다. 스페인은 그리스보다 5배 이상의 경제규모를 가진 유로존 4위의 경제대국이다. 유럽연합(EU)에 요청한 구제금융의 규모 또한 그리스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리스와 공통점이 있다면 관광업이 가장 큰 산업이라는 것과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럽 같지 않은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와 수백 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은 다른 유럽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 북아프리카인들의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일까.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사람들의 모습은 인종적으로도 다른 서유럽 국가 사람들과 달라 보였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인보다 피부가 덜 희고, 금발도 더 적은 듯했다.
그리스와의 또 다른 공통점이자 차이점은 영광스런 과거사를 지녔다는 사실. 그리스가 고대국가 시절의 영광이라면, 스페인은 중세 말기 세계를 주름잡으며 유럽의 영광을 이끌었던 역사가 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발견했고, 그렇게 흘러 들어온 막대한 귀금속은 무적함대의 제국 스페인을 만들었다. 제국의 영광은 마드리드 왕궁과 프라도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800여 개의 방으로 서유럽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마드리드 왕궁은 보물과 작품으로 가득하다. 화려함의 끝을 보는 듯한 가스파리니 홀과 황금빛 비단으로 장식한 ‘황금의 방’, 베르사유궁의 거울의 방을 본떠 만들었다는 ‘왕조의 방’ 등이 필수 코스. 규모와 작품 수준으로 ‘세계 3대 미술관’ 혹은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히는 프라도 미술관도 제국의 옛 영광을 보여준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 3rd May, 1808)’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지만, 금융 위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오늘날의 스페인 상황과 겹쳐지기도 한다. 물론 이곳에 스페인 화가들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페테르 루벤스의 ‘미의 세 여신(The Three Graces)’이나 기괴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왕궁과 미술관에서 제국의 영광을 확인했다면 투우장에 한번 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에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 혹은 에너지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를 잔인하게 죽이는 내용 때문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스페인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투우장에서 그들의 힘과 열정이 느껴진다. 메인 투우사(마타도르)는 어느 정도 힘이 빠진 황소 바로 앞에서 빨간 망토를 흔들며 마지막 쇼 타임을 갖는데, 잘하는 마타도르는 마치 황소와 한판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한 대목의 정렬적인 대결 뒤 투우사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동안 소도 숨을 고르며 쉴 정도로. 이건 정말 투우사와 황소, 2인 1조의 목숨을 건 환상 댄스처럼 보인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휘파람 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 옛날 콜로세움이 이랬을까. 평일 경기장을 가득 메운 2만5000여 명의 관중들, 5만 개의 눈동자가 투우사의 칼날과 소의 뿔 끝에 집중, 그 미묘한 움직임에 ‘올레’ 하는 감탄사를 쏟아낸다. 만약 스페인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옛날의 영광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면 그 힘과 에너지는 왕궁과 미술관이 아니라 투우장의 함성 소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Toledo
서로 다른 것의 평화로운 공존, 스페인 톨레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스패니시의 열정과 에너지를 느꼈다면 이번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도시를 찾아보자. 마드리드에서 1시간쯤, 끝없는 들판 길을 따라 달려 도착한 톨레도는 작은 성이었다.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는 성벽 안에는 스페인 가톨릭의 총 본산이라는 큰 성당, 화가 엘 그레코의 집,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금은 세공품이며 기념품 가게들이 몰려 있었다. 중세 유럽의 성이 딱 이런 모양이었을까. 톨레도가 속한 지방 이름이 ‘카스티야 라 만차’여서 그런지 곳곳에 돈키호테와 로시난테, 산초의 인형과 여러 가지 칼과 방패, 갑옷과 투구들이 눈에 띈다. 성 뒤편으로 야트막한 야산과 그 앞을 휘감아 흐르는 작은 강 또한 아름다웠다. 이런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톨레도는 지난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톨레도는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에 서고트 왕국이 들어섰을 때부터 왕국의 수도가 됐다. 이후 8세기에 들어선 이슬람 왕국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는 무슬림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무슬림들의 종교관용정책과 상업주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과는 달리 이슬람 세력들은 처음부터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부과한 것은 칼이나 코란이 아니라 세금이었다. 사막의 유목민으로 일찍부터 무역에 눈을 뜬 무슬림들이(무함마드 자신이 큰 상단을 이끌던 상인이었다) 포교보다 세금을 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세금을 면제해 주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는 바람에 세수가 줄어 한동안은 개종을 금지할 정도였다. 이러한 무슬림들이었기에 당시 이 지역의 상권을 쥐고 있던 유대인들을 종교적 이유로 박해하는 대신 이들과는 상업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무슬림 통치하에서는 기독교도들 또한 왕국의 보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 지역은 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중세 기독교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카테드랄(성당), 둥근 돔과 뾰족한 첨탑의 모스크, 독특한 스타일의 유대교회당이 어울려 중세 도시의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따로 또 같이 평화를 이룬 것이 문화적 시너지를 냈기 때문일까. 톨레도는 그레코를 비롯한 대표적인 스페인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이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 힘은 마드리드 투우장에서 보았던 열정과 톨레도가 보여준 서로 다른 것을 포용하는 문화적 역량 덕분인지도 모른다.
Italy Venezia
바다 위 도시 세계 무역을 주무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최근 신용평가기관 무디스(Moody’s)가 국가신용등급을 두 단계 내리면서 이탈리아는 카자흐스탄과 같은 신용도를 갖게 됐다. 이는 정크본드 수준보다 딱 두 단계 위이며 전 세계는 이탈리아가 ‘제2의 스페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스페인의 1.5배, 그리스의 8배에 가까운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금융 위기의 원인은 스페인이나 그리스와는 조금 다르다.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부동산 버블도, 은행의 부실도, 개인 채무도 크게 심각하지 않다. 그 대신 남북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재정 지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면서 재정 위기를 불러온 측면이 크다. 이와 더불어 유로존에 무리하게 가입하면서 펼친 긴축정책으로 인해 지속적인 저성장이 이어진 것도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됐다.
근대 금융제도가 탄생했던 이탈리아가 금융 위기의 당사국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원래 ‘뱅크(bank)’란 단어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은행가들이 돈을 빌려주기 위해 앉았던 긴 의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방카(banca)’에서 유래했다. 세계 최초로 복식부기를 쓰고 담보대출과 합자회사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여러 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고, 이것은 동서양을 잇는 돈줄을 쥐고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 전 세계를 누비며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도시의 대명사는 베네치아(베니스)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 오늘날 베네치아는 문화와 관광의 도시다. 세계적인 영화제와 비엔날레, 가면축제를 통해 전 세계인을 불러들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118개의 섬, 177개의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풍광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온 이탈리아인들이 나무 기둥 위에 건설한 도시. 지금도 조금씩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베네치아의 뒷골목에는 1000년을 훌쩍 넘긴 역사가 남겨놓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니 베네치아 여행의 핵심은 미로처럼 이어진 물의 골목을 탐험하는 것이고, 그 시작점은 산마르코 광장이다.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진 산마르코 성당과 베네치아 스타일의 독특한 고딕 양식이 눈길을 끄는 두칼레 궁전,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종루 중앙에 자리 잡은 광장은 수많은 비둘기와 그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1년 열두 달 북적이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1720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카페 플로리안이 있고, 그곳에는 괴테와 바이런, 바그너 등이 다녀간 흔적과 함께 베네치아가 낳은 세계적 유명인사(?) 카사노바가 감옥에서 탈출한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1202년 시작된 제4차 십자군이 집결한 곳 또한 베네치아였다. 이곳에서 배를 빌려 동방의 무슬림들을 쳐부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십자군들은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 베네치아 시 정부는 가난한 십자군에게 매혹적인(?) 제안을 했다. “무슬림 대신 이스탄불의 기독교도들을 정복하라. 그러면 배와 무기를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당시 서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해 부와 보물이 넘쳐났던 이스탄불은 무슬림이 아니라 십자군의 손에 철저히 파괴됐다. 그리하여 막대한 부가 베네치아로 넘어왔고, 그 결과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강력한 도시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산마르코 성당이 재건되고 두칼레 궁전이 지어졌으며, 베네치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Rome
고대의 영광·중세의 영화, 이탈리아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유로존 기행의 마지막 기착지도 로마다. 그리스 아테네도, 스페인의 마드리드도 한때 세계 제일의 번영을 자랑했지만 역시 로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고대 세계를 지배한 로마제국의 영광은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5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했던 콜로세움, 1500여 명 이상이 동시에 목욕을 즐길 수 있었던 카라칼라 대욕장,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던 판테온에서도 제국의 영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심 한가운데 폐허로 자리 잡은 포로 로마노를 추천하고 싶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다. 입법과 정치, 상업, 종교의 중심 시설이 반경 1km의 작은 지역 안에 촘촘히 몰려 있었다. 비너스와 함께 로마시 자체를 신으로 모셨던 ‘비너스와 로마 신전’을 지나면 현존하는 로마 개선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티투스의 아치가 나온다. 아치 곳곳에는 군사들의 행진 모습을 담은 대리석 조각들이 선명하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큰 건물인 ‘콘스타누스의 바실리카’는 가로 길이만 100m에 달한다. 그리고 몇 개의 건물을 지나면 로마 최고의 정치기구였던 원로원이 나온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이곳에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언을 남긴 후 살해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개선문과 신전, 무덤 등을 지나 포로 로마노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사도 베드로가 갇혔다는 지하 감옥을 볼 수 있다. 중세 로마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바티칸 시국으로 가야 한다. 인구가 1000여 명이 채 안 되는 초미니 국가. 지금도 100여 명의 스위스 용병이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고 경비를 서는 곳. 중세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음모론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비밀문서의 보고. 이곳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은 천국의 열쇠를 형상화했다는 성 베드로 광장과 성당,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와 작품을 자랑하는 바티칸 박물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시스티나 성당 등이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어지는 긴 회랑 또한 ‘중세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의 천장은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해 마치 클림트의 그림 수백 장을 이어 붙여 놓은 듯하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미켈란젤로의 벽화 앞에서는, 왜 그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인지 절절히 느끼게 된다. 아니, 이렇게 아름답고도 거대한 작품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Euro Information
How to Get There
아테네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은 없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두바이 등을 거쳐서 갈 수 있으며 환승 시간을 제외한 비행시간만 12~15시간 걸린다. 메테오라 수도원들을 돌아볼 것까지 고려한다면 아테네에서 차를 렌트해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현지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마드리드 대한항공이 주 3회 직항 편을 운행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정도. 톨레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작은 도시라 걸어서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베네치아 인천국제공항에서 직항은 없다. 로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로마 대한항공에서 주 3회 직항 편을 운행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3시간 정도. Where to Stay
아테네 가능하면 볼거리가 몰려 있는 아크로폴리스 주변 호텔을 잡는 것이 좋다. 아크로폴리스 바로 근처에 있는 아바 호텔 아테네(AVA Hotel Athens)는 2012년 트레블러스 초이스 어워즈를 수상한 곳. 메테오라 작은 동네라 호텔이 많지 않다. 바위산에 둘러싸인 풍광이 환상적인 디바니 메테오라 호텔(Divani Meteora Hotel)을 추천한다.
마드리드 호텔 그란 멜리아 페닉스(Gran Melia Fenix)가 위치와 객실 상태, 아침 식사 등 여러 면에서 평가가 좋다. 톨레도 마드리드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이고 몇 시간이면 돌아볼 만큼 자그마한 곳이라 당일 여행으로 충분하다.
베네치아 호텔 안티세 피겨(Hotel Antiche Figure)는 역에서 가깝다는 것이 장점.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도 좋다. 로마 판테온 근처의 호텔 알베르고 델 세나토(Albergo del Senato)는 시내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친절한 서비스로 이름이 높다.
Another Site
아테네 아테네 북서쪽으로 178km 떨어져 있는 델피는 아폴로 신전으로 유명한 곳. 한적한 마을에서 하루쯤 머무르는 것도 좋다. 메테오라 아테네와 메테오라 중간에 있는 테르모필라이는 영화 ‘300’의 전투가 벌어진 실제 장소다. 온천으로도 유명하니 아테네에서 렌트를 했다면 한번 둘러볼 만하다.
마드리드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세고비아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거대한 수도교를 보며 지역 명물인 새끼돼지 통구이도 맛보면 좋을 듯. 톨레도 주로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둘러보는 곳이라 근처에 별도로 가볼 곳은 없다.
베네치아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베로나는 또 다른 중세 도시이자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로마 로마시 안의 초미니 국가인 바티칸을 빼 먹지 말고 볼 것.
글·사진 구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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